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은일이를 만나 그가 부어준 술에 취하고 말았다. 

은일이는 제주와 나를 오늘처럼 긴밀하게 이어준 은인이다. 

비록 건강을 잃어 몸이 많이 상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더라. 

좋은 술이었던지 숙취가 없다. 

 

제주 유랑 이틀째,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나..

오후 세시까지 돌아오기로 하고 차를 빌렸다. 

새를 보겠다는 생각에 알뜨르 비행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방산 부근에 이르러 생각한다. 그래 산방산으로 가자. 

그란디 산방산은 입산금지더라.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가겠는데 징역을 살리겠다는 서슬 퍼런 경고판을 한개, 두개, 세개 연달아 지나다 보니 마음이 약해져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래.. 합법적으로 살아야지.   

 

산방산 옆에 괴상한 오름이 하나 있더라. 

사진 외약짝에 있는 산이다. 그래 꿩 대신 닭이다. 

암릉이 꽤 발달한 능선이 길게 누워 있다. 날개 편 박쥐 형상이란다. 

단산(바굼지오름), 굼부리 없는 특이한 오름이다.  

바굼지는 바구니, 소쿠리 단箪자를 써 단산, 그런데 이는 박쥐의 옛말인 '바구미'오름이 와전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설명에 따르자면 이 오름은 박쥐오름이다. 

이 오름은 융기하여 육지가 되기 전 해저에서 분출하여 형성되었으며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지금은 골격만 남은 최고 연령대, 오름 중의 맏형에 속한다 한다. 

날개를 활짝 편 능선의 길이는 2km에 달한다. 

 

 

 

눙선의 전망은 장쾌하다. 한라산이 한눈에 잡히고..

 

바로 옆 산방산은 묵직하고 듬직하다. 

 

 

 

눈을 돌리면 송악산과 가파도, 마라도가 잡힌다. 

가파도 좋고 마라도 좋고..

 

둥산 길 제주 사람들 제주도 블루베리(삼동)라며 따먹길래 나도 따먹었다. 

징금(정금)과 유사하다.  능선길 내내 지천으로 널렸더라.

 

청띠제비나비

 

호랑나비

 

 

 

 

 

바위 타는 사람들.. 훈련 중인 한라산 등산학교 학생들. 

비명소리 섞인 구령 소리가 찌렁찌렁 산을 울린다. 

 

무슨 나무일까?

 

 

오름에서 내려와 알뜨르 비행장으로 간다. 

밭 사이로 난 길들이 몹시 복잡해 길을 잃었다. 

길을 헤매다 백조일손지묘를 지난다. 

1950년 여름 예비검속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이 안장돼 있다. 

4.3 이후의 집단학살,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이 지나서야 유골이 수습되었다. 

132기의 무덤, 그러나 일일이 시신들을 분별해낼 수 없었기에 '백 할아버지에 하나의 자손'이라 하여 백조일손지묘라 이름 지었다. 

이들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또다시 죽임을 당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묘비를 파괴하고 유가족을 협박하여 희생자들의 유골을 강제 이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의 묘비는 1993년에 다시 세웠다.

비석의 머리에 태극기를 크게 새겨 넣은 유족들의 피눈물 나는 심사를 우리는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까?

4.3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고지리 우지진다.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무지무지하게 복잡한 가락으로 우지진다. 

 

초원이 되어버린 알뜨르 비행장 너머 섯알오름 학살터에 세워진 소녀상이 보인다. 

 

하늘 높이 비상하며 우짖는 저 종달새는 어쩌면 그날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잊지 않고 대를 이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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