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까를 고민하다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를 예약해 두었다. 

올해 새로 심은 잔디밭 하나 시기를 놓쳐 풀 매느라 한 이틀 적잖이 고생했다. 

논 둘러보고 스프링클러 옮겨주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러부렀다. 

산 아래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 올라갈 수 없다네..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 멀리서 왔다 하니 다 멀리서 온단다.

이래 저래 고민하다 장계로 가서 방을 잡았다. 

계남 사는 동갑내 불러내 술을 붓는다. 

돼야지 꼬랑지가 아주 맛나다.

역시나 술은 지역 토종과 묵어야 된다. 

밤이 이슥해 술자리 파할 무렵 던져놓은 미끼를 물고 사람 하나 달려왔다. 

술벵이 추가되었을 뿐..

 

 

 

토옥동 골짝에서 서봉으로, 주릉을 타다 월성재에서 다시 토옥동 골짝으로 내려오는 길을 잡았다. 

숲이 짙어 어두컴컴, 서늘하기 짝이 없다. 좋다 좋아..

 

 

오늘은 동무가 있다.

남원 사는 야동 전문가 애벌레 선생, 

날짐승 똥으로 주인을 추리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분석하며, 똥을 뒤적여 똥에 깃든 벌레를 찾는다.

똥과 생태의 상호 연관과 중요성을 설파한다.

영 똥이 안 보일 때는 자기 똥이라도 싸서 벌레를 유인한다는..

 

 

산뽕을 먹고 오두개 똥을 싸놨다. 

길 복판에 보란 듯이 똥을 싸놓은 이 녀석은 누구일까?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족제비, 살쾡이, 오소리, 담비 

이 중 하난데.. 순육식성인 족제비, 살쾡이 빼고 똥돌이 아닌 바닥에 싸놓은 것도 그렇고..

아마도 오소리, 나중에 애벌레 선생한테 물어봐야겄다. 

 

 

바위 그늘에 붙은 나방, 흰그물왕가지나방이라네.

마치 선사시대 암벽화를 보는 듯..

애벌레 선생, 이런 걸 잘 보더라. 

 

 
 

 

폭포, 그리고 사람의 흔적..

 

족제비똥
살쾡이똥
담비똥

잡식성인 담비 똥에는 산벚 씨앗과 새의 깃털이 섞여 있다. 

날짐승 똥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나 태반은 유실되었다.

 

 

이것들 꼭 길 복판에 싸질러 놓는다. 

영역 표시겄지, 여기는 내 땅이라는..
그래 야생의 땅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은 게지.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렇듯 흔적을 남기더라. 

 

다래꽃
나도수정초

암술 색깔이 짙은 푸른색이다. 

 

 

능선에 올랐다.

아직은 가지능선, 삿갓봉, 무룡산 지나 향적봉까지 장중한 덕유 주릉이 눈에 잡힌다. 

 

 

저 뒤 뾰족한 서봉이 보이고..

똥 뒤적거리고, 벌레 쳐다보고, 새, 나비, 꽃 온갖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 

마치 굼벵이 한 가지, 느리게 걷는다. 

유순한 계곡길 지나 능선이 가까워지면서 꽤 가파르던 산길이 능선에서는 아예 곧추서다시피 하니 느리게 걷는 것이 신상에도 이롭겠다. 

 

 

아직 철쭉이 남었다. 높은 곳이니..

 

 

흰참꽃은 한창이긴 한데 다소 저물어가더라. 

 

우리가 오른 능선

 

여기는 서봉, 눈 앞의 남덕유, 저 멀리 향적봉, 덕유 주릉이 내 눈 안에 있소이다. 

서봉은 장수 덕유를 일컫는다. 

참샘을 찾는다.

인터넷을 뒤적뒤적, 지나쳐왔다는 걸 깨닫는다. 

 

 

서봉 아래 참샘, 따로 이정표가 없다. 

하지만 꼭 물이 필요하다면 능히 찾을 수 있다. 

목마른 자 샘을 찾으리라. 

우리가 오르던 산길 주변 주릉(서봉) 턱밑 100여 미터 지점에 있다. 

최근 가뭄에도 이 정도 나오는 걸로 봐서는 어지간해서 물이  끊기는 일은 없을 듯싶다. 

 

 

점심을 먹고 다시 서봉으로..

뒤따라오던 야동 선생이 나를 찍었다.

 

저기 멀리 육십령
저기 멀리 향적봉

 

꽃 귀한 시기, 범의꼬리가 위안을 준다. 

 

남덕유
 
 

 

주릉에는 함박꽃(목란)이 아직 피고 지고..

우리 농사꾼들 보기 힘든 함박꽃을 오랜만에 본다. 

어쩜 이리 희고 고울 수 있을까? 

 

동고비
산호랑나비
아무르장지뱀

 

물매화를 닮았다.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네. 

 

범의꼬리

뭐라 했는데..

 

백당나무
옥잠난초
황세줄나비
 

 

월성재에서 골짝으로 내려선다. 

길은 유순하고 잘 닦여 있다. 

 

 

합수지점, 삿갓봉에서 내려오는 물과 남덕유와 서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류한다. 

이 부근을 6개 도당 회의가 열린 송치골로 추정한다. 

 

 

'송치골 회의'

2010.10.31.11:01 예정 보다 한시간이 더 지났다. 번암에서 지지계곡으로 방향을 잡고 지지골을 넘었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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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골 회의Ⅱ'

2010.11.13. 12:04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토옥동 계곡 12:21 황점마을-월성계곡--바랑골-월성치-삿갓봉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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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봉 방향으로 뚜렷하지 않지만 길이 있다. 

따라 올라가 보는데 시간이 늦어 많이 올라가지 못했다. 

링크한 글들을 정독했더라면 좀 더 치고 올랐을 터인데..

 

 

내려오는 도중 만났던 사람의 흔적, 숯가마터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래된 임도가 부근을 지난다. 

 

 

임도 아래 구축된 견고한 참호, 산을 향하고 있다. 

누구에 의해, 언제.. 왜 방향이 이럴까? 

군경의 것이 아니겠는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잘 모르겠다. 

해가 뉘엿뉘엿, 이내 발길을 돌리고 말았으니 다시 가 볼 일이다. 

언제가 될런지..

 

 

 

발을 닦는 것으로 산행을 마감한다. 

11시간, 야동 전문가와 함께 한 굼벵이 산행이 꽤나 유익하고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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