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아리랑 2017 박홍규 140x40

          김산의 아리랑

 

        떠나는 님은 잡지를 마라

        못보다 다시 보면 달콤하거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에 물새는 못 사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강산만 살아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람객이요

        삼천리 강산도 잃었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라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 구비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으리니.

 

 

판화를 받았다. 그리고 이 판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 책을 샀다. 

<아리랑>, 이 책을 1985년도에 봤더랬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내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소화할 그릇 없이 책을 잡은 탓이다. 

하여 혁명가 김산에 대한 나의 인상은 '참 복잡하고 어지럽게 사셨네'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되고 말았다.  

그 오랜 시간 '불꽃같은 삶'을 '어지러운 삶'으로 폄훼하고 살았다. 

아.. 나의 불민함을 어찌 속죄할 것인가? 

 

책머리에서 리영희 선생의 추천사를 접한다. 

1960년 봄, <아리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을 말씀하신다. 

<아리랑>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해답을 찾던 30대 청년 리영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리영희 선생은 그 날 이후 혁명가 김산에 매료되어 그와 함께 중국 혁명 연구에 빠져들게 되었다 술회하고 있다. 
아리랑은 이렇듯 70~80년대를 각성시킨 위대한 실천적 지성을 탄생케 했다. 

나는 <아리랑>에서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을 읽고 나서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이 책은 나를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심어줬다. 

<우상과 이성>을 읽고 나니 세상 모든 것이 거꾸로 서 있었다. 

아니 지금껏 내 눈이 뒤집혀 있었던 게다. 

<우상과 이성>은 나의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혁명적인 의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무수한 85학번들이 그랬듯 나는 이 책을 읽고 손에 짱돌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이 길로 걸어왔다. 

리영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굳이 우기자면 <아리랑>과 나 사이에는 리영희라는 가교, 탁월한 의식화 교사가 계셨던 것이다.

나는 30년이 훌쩍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아리랑>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고개라는데 우리는 지금 몇 번째 고개를 넘고 있을까? 

파란 많은 우리 민족은 아리랑 열두 고개를 열두 번도 더 넘었을 터, 

최후의 승리를 가져올 마지막 아리랑 고개,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리랑>에는 혁명가 김산이 걸어온 곡절 많은 인생과 파란의 아리랑 고개, 끊임없는 혁명활동과 투쟁 속에서 달궈진 그의 혁명관,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산은 말한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는 단 하나, 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나에게는 환상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일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폭력을 뒤엎지 않으면 안 되는 피억압자뿐이다.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중은 깊고 어두우며 행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을, 35년 만에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과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게 해 준 홍규 형께 감사드린다. 

혁명가 김산은 사진 속에서나, 판화 속에서나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온화한 그의 얼굴에 서린 파란과 역경, 생사의 열두 구비를 넘나들며 체화된 혁명적 낙관과 미래에 대한 예지가 시대와 세월을 넘어 나의 가슴을 높뛰게 한다. 

 

1937년 옌안에서의 김산

 

'농민화가 박홍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산의 아리랑  (0) 2019.11.02
어찌 나를 죄인이라 이르느냐?  (0) 2018.02.22
판화로 되살아난 최제우 '검결'  (1) 2017.09.21
백남기 농민, 쇠를 잡다.  (0) 2016.10.12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0) 2016.02.13
압수수색 당하던 날  (0) 201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