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는 말 먼저 꺼낸 사람은 바쁘다 자빠지고 먹은 마음 그대로 나 혼자 간다. 

겁나 싸다.  왕복 비행기 삯이 서울 가는 KTX 차비.

비상구 자리 달라해서 앉으니 무르팍이 무지하게 편하다. 

석양 깃든 구름바다 헤치고 비행기 달린다.  

조짐이 좋다. 

 

사람 맛으로 술을 마신다. 밤사이 적잖이 달렸다. 

나는 밀가리 것으로 속을 푼다.

수두리 보말 칼국수, 수두리가 어딘가 했더니 지명이 아니다. 

곶자왈에 속고, 수두리에 속고.. 

수두리나 보말이나 그것이 그것, 나의 무지를 탓할 일이다. 

제주 갯 가상 사람들이야 어찌 구분하겠지만 나한테는 내나 갯고동일 따름이다. 

엄밀히 하자면 수두리도 넣고 보말도 넣어 끓였다는 말이겠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속 풀렸으니 되얐다. 

 

제주 토종 사람한테 좋은 곳 데려가 주시라 부탁했다. 

법정사로 오라 한다. 그런 데가 있나 싶었는데 1,100도로 오름길 서귀포 휴양림 못 미쳐 진입로가 있다. 

제법 지나다녔는데도 어째 단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모르는 자에겐 뻔한 길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다. 

잠시 기다려 안내자를 만나 다짜고짜 길을 나선다. 

 

 

몇 발짝 떼지 않아 한라산 밀림, 깊은 가을 속으로 접어든다. 

붉은 단풍잎이 마치 동백꽃 한 가지다. 

이건 필시 핏빛, 말해보라..

피어린 항쟁의 원혼 깃들었다 말하지 않을 재간 있는가?

 

 

법정사 터, 항쟁 당시 일본 놈들은 절을 불태웠다. 

백 년 묵은 무쇠솥이 뒹굴고 있다.  

무오(1918)년 10월 전개된 무장 항일투쟁, 30여 명의 치밀한 거사에 700여 지역주민이 가세하여 일본 경찰과 거류민들을 응징하고 중문 순사 주재소를 불태웠다. 

상세 내용은 아래 걸어둔 링크를 참고하시라. 

 

고영철의 역사교실

도순동 법정사(무오항일운동발상지)터 05-23 | VIEW : 12,579 ◆ 도순동_법정사터(디서문).jpg (750.8 KB), Down : 7 ◆ 도순동_법정사터(1212)3.jpg(582.1 KB), Down : 5 제주도 기념물 제61-1호(2003년 11월 12일 지정) 위치 ; 서귀포시 도순동 산 1번지(1100로 740-168)(하원동에서 1100도로를 따라 제주시 방향으로 1Km쯤 가면 법정사 진입로가 나온다. 여기서 2Km쯤 들어가면 법

jejuhistory.co.kr

 

 
 
 

물 없는 내를 여러 차례 건너 숲 속 깊숙이 들어간다. 
내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강정천과 악근천으로 합류한다. 

일제가 닦아놓은 식민지 수탈 길(하치 마끼 도로)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옛사람들 흔적 역력한 마을터를 지난다. 
화전을 일궈 마을을 이뤘던 밭담, 집담, 목축의 흔적인 잣담..

제주 사람들 평생 돌담 쌓는 게 일이었겠다.  

4.3 이전까지 이런 마을과 생활공간이 한라산 깊숙이 산재해 있었다고 말한다. 

길을 안내해주신 송기남 조천 농민회장님은 제주의 자연, 생활, 문화, 역사, 투쟁을 폭넓게 아우르는 훌륭한 해설을 해주셨다. 

 

 

경외감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세월의 힘

 

 

자연과 함께 했던 선인들의 날짐승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밭담, 잣담 할 것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날짐승들이 드나드는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무장대 혹은 피난민들의 임시 거처가 되었을법한..

 

 

토벌대 주둔소, 외성과 내성을 쌓고 보초 초소를 쌓아 단단히 경계한 흔적이 역력하다. 

올봄 가봤던 수악 주둔소에 비해 규모가 작다. 

누가 쌓았을까? 토벌대? 아니다.

놈들은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주민들은 강제노역에 더하여 술과 음식까지 제공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한라산 깊숙히 들어앉은 표고버섯 농장
 
 
 

늦가을 한라산 둘레길,

피어린 항쟁, 투쟁의 역사 오롯한..

이것은 둘레길이 아니라 차라리 순례길, 

시간 넉넉히 잡아 느리게 걸어보시길..

훌륭한 해설사 선생은 가급적 필수. 

좋은 길 함께 해주신 송기남 조천 농민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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