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집에서 멀어져 가는 백두대간, 차갓재에서 죽령까지 이틀 일정을 잡았다. 

저수령에 차를 두고 지난 구간 이용했던 동로 개인택시를 불러 안생달 마을로 이동, 택시요금 3만 원. 

오후 1시, 안생달 마을 최상단에서 작은 차갓재를 향해 출발..

많이 늦었다.

 

 

30여 분 오르니 첫 조망이 터진다. 

안생달 마을과 지나온 대간길이 보인다. 

한 주만에 다시 찾은 백두대간, 가을색이 깊어졌다. 

날은 흐려도 단풍은 빛난다. 

 

 

고도가 올라가니 지나온 길이 좀 더 선명해진다. 

대간길은 늘 갈 지자 혹은 말발굽 형태..

월악산이 아스라하다. 

 

 

바위 투성이 도락산, 땡겨보고 밀어보고..

 

사진 복판 벌재 올라오는 길, 오른짝 끝 저수령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고갯길 너머 황정산, 그 너머 산들은 아마도 내일 걷게 될 다음 구간의 흰봉산과 도솔봉 일대일 듯, 그 너머 맨 뒤 소백산 주릉인 것으로..

 

황정산 줄기 너머 묘적령, 묘적봉, 도솔봉, 흰봉산, 죽령으로 내려가는 완만한 하강 능선, 외약짝 맨 뒤 소백 연봉. 

아마도..

 

 
14시 15분

묏등 바위를 지나 황장산 정상, 역시 조망이 없다. 

황장산 정상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비탐 구간으로 들어선다. 

 

비탈길 올라 능선을 넘어서니 새로운 산군이 눈 앞에 펼쳐진다. 

단연 돋보이는 산 하나, 벌재 넘어 문복대에 이르기까지 내내 저 산이 유독 눈길을 잡아 끈다. 

 

천주산 혹은 천주봉

땡겨보고 밀어보고.. 보고 또 보고..

기운 특별한 산, 하늘 기둥 천주산만 자꾸 보게 되더란 말이다. 

 

대간 남쪽 미지의 산들, 조선 팔도에 산 없는 동네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 동네 참으로 산 많다. 

동서남북 다 돌아봐도 맨 산이다. 피룬허고..

 

진행 방향, 펑퍼짐한 능선 너머 벌재가 있다. 

 

그래 점점 확신이 간다. 저기 멀리 소백 주릉..

 

저기 멀리 천주산 말고 여기 기둥 하나 더 있다. 

 

화산 터져 용암 막 분출하고, 공룡 뛰어놀고, 원시인 돌도끼 들고 공룡 몰고 다닐 듯한 분위기.

 

자 이제 조망 없는 가을 숲 속으로..

갑자기 벌재가 나타나고 고민하고 말고 할 새도 없이 생태통로 타고 벌재를 넘어버렸다. 

 

17시 05분

벌재를 넘는 생태통로 지나 다시 한번 샛길을 넘는 나무다리, 비합에서 합법으로 삽시간에 신분이 바뀌었다. 

 

문복대를 향한 3.5km가량의 지난한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벌재를 넘는 찻소리가 흡사 붕붕거리는 장수말벌 소리, 혹은 벌벌거리며 힘겹게 오르는 찻소리도 들린다. 

오름길이 하도 지난하여 내 비탐구간을 지나온 벌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하여 벌재가 아닐까 하는 헛된 생각들을 하며 한 발 한 발 산길을 축낸다. 

 

여섯 시를 갓 넘긴 조망 없는 팍팍한 오름길에서 어둠을 맞는다. 

 

잠깐 트인 어둠 속 조망터에서 저녁 삼아 김밥 한 줄, 천주산을 마지막으로 본다. 

 

19시 05분

잡목에 휩싸인 문복대, 벌재에서 두 시간 꽤나 힘들게 올랐다. 

나머지 저수령까지는 완만하고 지속적인 흙길 위주의 하강..

 

커다란 나방 한 마리 렌턴 불빛을 향해 날아들었다. 

전문가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답이 왔다. 

유리산누에나방 수컷이라네. 오~ 그렇단 말이지. 

연두색 고치 집은 여러 차례 봤지만 나방을 보는 건 처음이다. 

반가웠네..

 

20시 05분

막판에 잠깐 길을 잘못 들었다. 

전화기에서 갑자기 노래가 흘러나오더라.

'길이여 길이여 너의 끝은 그 어디
한생을 걸어도 못 다 걸을 길이여~'

깜짝 놀랐다. 

경로 이탈 경고음을 노래로 바꿔둔 것을 잊었던 것이다. 

다시 복귀, 무사히 저수령에 도착했다. 

 

여기는 예천 땅, 오늘로 문경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40도짜리 소주 문경바람, 도수에 걸맞지 않게 너무 부드럽더라. 

 

 
 

한 잔, 또 한 잔, 이 안주, 저 안주.. 

 

그렇게 저수령의 밤이 깊어갔던 것이다. 

 

20201016작은차갓재-저수령.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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