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은 주말, 나의 발길은 호남정맥으로 향한다. 

산으로 가기에 앞서 진안 부귀에 있는 녹두장군의 큰따님 전옥례 여사의 묘소에 들렀다. 

한 번은 헛걸음, 좀 더 정밀한 탐색 끝에 다시 찾았다. 

 

장군의 큰따님은 동학농민혁명이 농민군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뒤 사람을 피해 산으로 도피했다.

산길만 골라 내달린 발걸음은 마이산에 와서야 겨우 멎었다.

그이의 나이 15세, 김옥련이라 이름을 바꾸고 금당사 공양주로 숨어 지내다 진안 사람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뤘으나 자신의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평생을 함구하고 살았다. 

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손자를 통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이의 묘소는 모래재 아래 호남정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이가 걸었을 태인(산외면)에서 마이산에 이르는 산길은 상당 부분 정맥 길과 겹치거나 그 자락을 지나는 것이었을 터, 나는 그 길을 거꾸로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이가 겪었을 생의 고초와 평생의 한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상석에 못생긴 진안 사과 하나 놔드리고 발길을 돌렸다. 

 

11시 사자봉

부귀에서 마령 지나 임실 성수, 관촌..

무슨 온천 개발한다고 뒤적거려놓은 어수선한 길(회봉손촌로)을 타고 산 아래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간다. 

회봉송촌로와 상월로가 만나는 지점에 차를 두고 산으로 오른다. 

지난번 내려섰던 지점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다다른 곳, 사자봉 되겠다. 

지도상에는 사자산이라 표기돼 있으나 산꾼들은 사자봉이라 부르는 모양이더라. 

별도의 산 이름을 부여하기가 좀 어색하긴 하다. 

 

조망 없는 산길에서 얻는 귀한 조망, 제법 풍채 우람한 고덕산 뒤로 전주 시내가 보인다. 

 

살짝 외약짝으로 방향을 트니 모악산이 보이고..

 

한 살이 채 안돼 보이는 동고비 한 마리 발치에서 포로롱 날아가 근처를 맴돈다. 

배 고픈가? 눈도 내리지 않았는데 살갑게 군다. 

 

펑퍼짐한 산봉우리에 이런 돌무더기가 서너 개 산재해 있다. 

도무지 그 기원을 짐작할 수 없어 답답한..

 

능선에 차가? 각종 조경수 심어진 나무 농장을 지난다. 

이번 구간 유난히 사람 손을 많이 탔더라. 

능선상에 커다란 밭, 군데군데 벌목 지대, 발길을 부여잡는 가시덤불..

겨울에 오기를 다행이라 몇 번을 생각했다. 

산이 스스로 제공하는 조망 지점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모든 조망 사진들은 죄다 벌목 지대에서 얻은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쑥부쟁이

능선 너머 고래 뿔, 오른짝 한오봉, 그 너머 모악산이 살짝 보인다. 

정맥 길은 외약짝 산줄기를 타고 한오봉 지나 경각산에 이른다. 

 

고래 한 마리 더 있는 듯.. 무슨 산일까? 

가봐야 알겠다. 

 

관촌면 상월리 일대, 산이 높지 않으나 깊다. 

첩첩산중..

 

외약짝 경각산, 오른짝 고덕산

훨씬 외약짝 알 수 없는 산, 만덕산에서부터 궁금했다. 

아직 알 수 없다. 궁금하면 빨리 가자. 

 

임도 하나 산허리를 휘감아 돌고 멀리 모악산은 이제 경각산 외약짝에 있다. 

 

남원 방면, 외약짝 고덕산(전주 쪽 고덕산 말고) 오른짝 끝 만행산 천황봉. 

아닐 수도 있다. 

 

아스라히 지리산, 복판에 우뚝한 반야봉.

전라도에서는 반야봉이 주봉이다. 

 

무슨 구름인가 했더랬는데 덕유 주릉이 하얗다. 

아.. 덕유산으로 갔어야 했어. ㅎㅎ

 

할미봉, 남덕유, 장수덕유, 삿갓봉, 삿갓골재가 선명히 가늠된다. 

 

다시 한번 덕유 주릉, 향적봉 일대..

 

만덕산

슬치가 가까워지면서 산길은 이제 완전히 동네 뒷동산, 멀리 우람한 지리산. 

 

정맥 길은 이제 시멘트 포장길이 되었다. 

이런 길이 밭 사이, 무덤 사이로 꽤 길게 이어진다. 

 

길도 흐르고, 산도 흐르고, 물도 흐르고..

 

15시 40분, 박이뫼산

박이뫼산, 산 이름도 특이하지만 이 정도 산이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특이하다. 

 

15시 55분

다 왔다. 

혼잡스런 전주 남원 간 국도를 건너니 슬치 마을.

백두대간 고기리 지나 노치 마을에 들어선 기분이 살짝 나네. 

고개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된 건지, 마을 이름이 고개 이름이 된 건지.. 

고개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차용됐겄지.

 

물을 찾는데 물이 없다. 

음 가지고 오지 않았군.. 그러고 보니 오늘 산길에서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 

엊그제 제주도 가면서는 렌즈만 챙기고 사진기를 놓고 갔더랬는데..

갈수락 큰일이다. 

다음부터는 겨울 모자에 장갑도 챙겨야겠는데 지금부터 걱정된다. 

 

택시 타고 원점으로, 택시요금 14,000원. 

 

 
20201128 사자봉~슬치.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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