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참 쏜살같다 탓하기만 했지 흐르는 세월 속에서 때가 바뀌고 있음을 잊고 살았다. 
엊그제만 해도 분명 겨울이었다. 눈이 내리고 수도가 얼어붙었으니.. 
그런데 어느 결에 봄이 와 있었던 것이다.
귓전을 스치는 봄소식에 소스라쳐 낮술 한 잔에 나른해지는 몸을 추슬러 세운다. 
다시 찾은 선운사 골짝, 불과 이틀 사이 산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온 산을 뒤덮고 있던 흰 눈은 봄 눈 녹 듯 사라져 눈을 씻고 찾으래야 찾을 길이 없다.  

분명 고인돌이다. 
옛사람들은 어쩌다 이런 큰 돌을 다룰 생각을 다 했을까?
하지만 한 번 써 놓은 힘 수천 년 세월을 떠받치고 있다. 

 

고인돌을 지나 복수초 군락지로 들어선다. 
꽃은 이미 피고 지고 있다.
내 지금이 그때라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면 엊그제 눈 나리는 날 예 왔어야 했다. 
잊고 살았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시절이 바뀌고 있음을..
바야흐로 봄이다. 복수초 흐드러진.. 
지동으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복수에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
마침내 올려질 승리의 깃발 힘차게 펄럭여다오~

그 복수 이 복수 다를지언정 너만 보면 나는 이 노래가 나온다. 

 

색감 참 오묘하고 신비롭다. 

내 한때 산과 들판을 누비며 들꽃을 찾아다닌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른 데 있는 꽃이 고창에는 없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무던히 뒤지고 다녔더랬다. 
그러다 찾은 곳, 여기는 내가 아는 고창 유일의 복수초 군락지다. 

복수초는 일본인들이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다만 한자 말고 순 우리말로 눈색이꽃 혹은 얼음새꽃이라 불렀다 하니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보도록 해야겠다. 
그중에서도 눈색이꽃(눈을 삭이며 올라오는 꽃)이라는 이름이 퍽 마음에 든다. 
그런데 야가 정말로 눈과 얼음을 뚫고 꽃대를 올릴까?
그럴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꽃을 시샘하는 때늦은 눈이나 추위에 의한 착시현상일 게다. 

꽃밭을 떠나 산을 오른다. 
꽃 본 김에 해도 보자는 것이다.
여기는 수리봉, 해가 뉘엿뉘엿 칠산바다를 넘보고 있다.
때는 잘 맞촤 왔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해는 분명 바닷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해가 넘어가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어둠이 깃드는 능선길, 이 시각의 산은 참으로 아름답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갈라지자 그 사이에 산이 솟고 물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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