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자기 전에 세워둔 계획을 아침에 일어나 쉽게 포기해 버리곤 한다.  
산에 올라 해 뜨는 것을 보겠다 다짐해놓고 그냥 잤다.
산에 가겠다는 계획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할까 고민 중에 동행키로 한 사람으로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 
하여 산으로 갔다. 그러니 흑산도에서의 산행은 순전히 그 냥반 덕이다. 
마리재에서 올라 큰재 거쳐 샘골, 약 5km 능선 산행길이다.  

얼마간 산을 오르니 조망이 툭툭 터진다. 
눈 아래 진리 마을의 두 팽나무, 새 잡는 렌즈로 당긴다.
위쪽 가지가 붙은 연리목이라는데 실상은 붙었다 떨어졌다 비바람에 상처가 심하다고..
좌우튼 두 나무, 자세는 참 사랑스럽다. 

능선에서는 새를 보기가 어렵다. 
다만 공중 높이 나는 맹금이 이따금 스쳐 지날 따름이다. 
이 녀석의 정체는 시원스레 밝히지 못했다. 
사진이 좋지 않은 탓이다. 
다만 칼깃이 네 장인 것으로 봐서 붉은배새매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러모로 검토해 보니 그게 맞는 듯하다. 
그냥 맞다 해 두자,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

 

두 사진은 동일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
다섯 장의 칼깃, 꼬리의 모양새, 전체적인 외형상 조롱이.
첫 대면이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본격적인 탐조에 들어간다. 
산 이야기는 따로 푸는 것으로..
어제 돌았던 곳을 다시 돈다.  

흰눈썹긴발톱할미새
붉은배지빠귀

물 마시는 직박구리, 작은 옹달샘에 이러저러한 새들이 다녀간다. 
적당히 몸 숨기고 차분히 앉아 있으면 많은 새들을 볼 수 있겠다. 

 

하늘의 적정..
새매가 나타나 선회하더니 급강하, 뭔가를 물고 산 너머로 사라졌다. 

힝둥새

그러니  이리 살피는 것이다. 
자연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유리딱새
쇠붉은뺨멧새
노랑눈썹멧새

흑산도의 묵은 밭은 잔디밭이 되었다. 
마치 누군가 심어 가꾼 것처럼.. 
잔디밭 제초는 소가 하더라. 

고향 생각하는 힝둥새

꼬까참새
노랑눈썹멧새

새들의 앞모습은 고약하다.
고개만 살짝 틀어도 이리 이쁜 것을..

검은이마직박구리

탐조 끝 무렵 검은이마직박구리를 만난다. 
단 한 개체, 연사 한 번 누르고 나니 홀연히 날아가 버렸다. 
나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이 녀석을 보고 싶어 했다. 
봤으니 이제 되얐다. 

흰배멧새
 
 

고약한 앞모습만 찍혔던 흰배멧새가 길을 막고 갖은 자세를 잡는다. 
나 원래 이쁜 놈이라고 한 바탕 시위하다 길을 내주고 사라졌다. 

 
 

많은 힝둥새를 찍었다. 
같은 듯 다른 듯 다양한 분위기와 모양새의 힝둥새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는 모두가 힝둥새, 같은 종을 다르게 구분하려 했으니 답이 안 나왔던 것이다. 
희망하는 것이 다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갑툭튀 흰눈썹붉은배지삐귀, 나도 찍어달라고..
갈 때가 되니 새들이 갑자기 착해졌다. 

황금새도 날아와 자세를 잡는다. 

진짜로 뭘 먹고 주댕이를 닦는 것인지, 애실력 없어 먹은 척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애실력 없다는 말은 순전히 고창 말인 듯, 그나마 요즘에는 통 쓰지 않는..

마지막으로 찍힌 새는 힝둥새, 그것도 정면 사진.
이별을 직감한 듯 좀 슬퍼 보이네. 

어제 도착하자마자 흑산 토박이와 탐조에 나섰다.   
무심코 "참새다!" 했더니 그 냥반 깜짝 놀라 "참새요?" 하더라.  
흑산에서는 참새 보기 힘들다고.. 
대처 참새를 보지 못했다. 
다시 오게 되면 참새를 찾아야겠다. 

흑산의 새들이여, 안녕~
하긴 너나 나나 나그네, 다시 볼 날 있을까? 
인연이면 다시 보게 되겠지. 
너와 나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후손들이라도..

 

 

'새, 나비, 풀, 꽃 > 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 처음 흑산 탐조  (0) 2021.05.15
검은이마직박구리  (0) 2021.05.13
흑산 탐조 1  (0) 2021.05.05
탐조  (0) 2021.04.30
갯벌 나그네  (0) 202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