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화가 박홍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광주 구 도청 옆 오월 미술관, 장소가 꽤 상징적이다. 
갑오에서 오월, 오월에서..
파란과 곡절 끝에 돌아온 작가의 창작 구상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 창작된 작품들은 혁명의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역사 속으로 스며드는 농민군들을 그리고 있다.  
장흥과 대둔산, 퇴각하는 농민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바람 부는 보리밭처럼 내 인생에 이런 출렁거림이 언제 있었던가..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보리밭, 이 시기는 농민군이 전주성에서 물러나와 각 고을을 접수하고 집강소 통치를 시작할 무렵이다. 
총각 농민군들은 전장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
그러니 팽나무 아래 청춘 남녀는 이별이 아닌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동지들의 환호와 격려, 부러운 야유가 쏟아진다. 
아리 아리 아라리~


 

동학농민혁명군 장흥 석대 혈전을 치르고 예양강을 건너 자울재를 넘다.

예양강은 탐진강의 옛 이름이다. 
'예안강'은 술 자신 작가의 실수, 수정할 것이라 했다. 
석대들 혈전을 치르고 예양강을 건너 퇴각하는 농민군들을 형상한 것이다. 

탐진강 - 한담
탐진강의 밤
밤에 내리는 눈송이

누군가 물었다. 
뒤돌아선 저 농민군은 뭘 바라보고 있는 거냐고..
시체가 산을 이룬 싸움터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이라 했다. 
그러니 동지들의 시체와 이별하고 있는 것이다. 
퇴각하는 농민군, 그러나 누구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총이면 총, 죽창이면 죽창..
농민군들의 표정에도 불안과 초조 따윈 없다.
그래 이들은 살 길을 찾아 달아나는 길이 아니다. 
새로운 투쟁의 길로 떠나가는 것이다. 

전사의 길

천리길 끝난 곳에 만리길 또 있어라
가고 가다 쓰러져도..

장흥부 덕도 탈출도

"한 번 크게 패배하여라
그리하여 영원히 승리하라"

2015년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즈음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동학농민혁명군 장흥부 덕도 탈출도

장흥 석대들 전투는 혈전이었다. 농민군들은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내고 자울재를 넘어 남쪽으로 퇴각하며 옥산촌 전투와 월정 전투를 치른다. 장흥 전투는 1주일간의 승리에 뒤이은 일본군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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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실마을 탕건바위 감오년 십사영웅도

멸문의 화를 피해 장흥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던 박팽년의  후손들. 모든 식솔이 혁명에 참여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들어봐야겠다. 

동백꽃 대님, 

여인네에게 업힌 시신은 목이 없다.
버선 대님 동백꽃만 붉다.
1894년 갑오년 동짓달 장흥 탐진강과 석대들에서는 몇 만의 동학군과 민보군이 싸웠다.
동학군은 민보군에 이겼으나 왜병에 졌다.
동학군이나 민보군이나 전쟁에 나간 아버지, 아들, 연인에게 여인들은 자신들만의 바느질로 수를 놓아 만든 버선 대님을 묶어 주었다.
목이 잘리고 불에 타더라도 버선 대님으로 아버지, 아들, 연인을 찾았다.
장흥 석대들 전투에 대해 조사하던 작가는 촌로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죽음 후 거둬들인 버선 대님이 몇 가마니였다’며 통곡이 남쪽 바다를 덮었다는 것이다.
바라볼수록 눈물이 솟는다. 심지어 붉은 동백 대님을 들쳐업은 여인의 표정은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평화롭고 깊다.
이 여인이 바라고 붉은 동백 대님이 죽음과 바꾼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 작품 해설(오월 미술관)

관산접주 김학삼

동백꽃 대님의 주인이시다. 

장흥 벽사역에서 화형을 당하셨지요. 유지기를 씌워서..
그 시신을 증조모님께서 어떻게 찾았느냐 하면, 옛날에는 버선발 하지 않습니까?
버선 대님을 잇는데, 대님가에 수가 놓아져 있었는데, 그것이 안 타졌나 봅니다.
자기가 손수 놓은 수니까 그걸 보고서 남편인 줄 알고, 자울재를 넘어서 송산이니까 삼십 리 길이지요.
그 삼십 리 길을 머리에 이고 오셨어요. 그러니까 증조모님께서도 여장부셨나 봐요.
증조부님께서 칠 척 장신이셨다는데 그걸 이고 오셨다니.
그래서 길가에 남의 산에다가 모셔드렸는데, 지금도 그 자리에 봉분만 키워서 조그마한 돌이라도 하나 세워놓았습니다.
- 혀 잘린 농민군 접주 김학삼, 증손 병운의 증언(http://db.history.go.kr/id/prw_029)

 

대둔산의 아침

실제로 이 곳에서 아침을 맞아본 사람이라면 작품 속 농민군들의 심사를 조금은 더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든 조선의 산하를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속에서 펄떡였을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
목숨으로 지키고자 했던..

 

대둔산 해돋이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리.. 병신년 새해를 어디서 맞을 것인가를 두고 여러 생각이 많았는데 발길은 결국 대둔산으로 향했다. 일본군 기록에 남아 있는 마지막 농민군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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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눈길을 헤쳐 산으로 들어가는 농민군, 
120년을 넘게 이어오는 우리 민족의 비원,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화신, 조선 빨치산의 원형을 본다. 
저이의 걸음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다. 

전봉준 배들평야를 가다

이 작품은 비현실적이다. 
혹 피노리에서 피체되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
작가는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혁명은 순정이다?
"순정이니께 몸도 마음도 다 바치는 것 아니겠슈?"
맞네, 그래서 혁명은 순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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