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다녀온 우리는 오징어 내장탕으로 속을 구슬렸다. 
탕이라기보다는 국이라 할 만한데 이걸 우리 동네 사람들이 끓였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울릉도 사람들은 오징어 내장탕과 꽁치 물회로 속을 푼다 했다. 
내일은 꽁치 물회를 먹어보자 다짐한다. 

 

행남 해안길을 걸어 도동으로 가려 했으나 비가 내린다.
비야 무릅쓰면 되겠지만 지난해 태풍으로 끊긴 길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울릉도 해안지대는 너덜너덜하다.
해안도로는 사면팔방 곳곳이 공사 중이며 사동, 남양, 태하 등 서쪽 지역 포구들에는 지난해 태풍 피해의 처참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울릉도는 한탄한다.
태풍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고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때 울릉도는 비로소 태풍 맞을 준비를 한다고..
울릉도는 그저 독도를 생각할 때나 덩달아 떠올리는 잊힌 섬이라고..
울릉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우리는 그저 관광객일 뿐.. 파도와 놀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비는 내리고.. 파도에 맞은 내 전화기는 하루 점드락 혼절하고 말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한기를 떨쳐내는 급술을 마시고 숙소가 있는 태하로 곧장 이동한다. 

 
 
 
이건 뭔 그림인 건지.. 그래도 시선은 잡아끌더라.

태하에 당도하였다. 태하의 옛 이름은 '대황토구미'다. 
'구미'는 해안이 쑥 들어간 곳을 일컫는 전라도 남해안 지역 방언이다. 포구가 들어서기 좋은 자리가 되겠다. 
하니 황토구미는 황토가 나오는 포구가 되겠다. 
어찌하여 울릉도 지명에 전라도 방언이 토착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야기보따리가 필요하다.  
해안 절벽 아래에 있는 황토굴은 태풍으로 길이 끊겨 갈 수 없었다. 

태하는 매우 한적하였다. 이짝저짝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구공사와 그 인부들이 아니면 더욱 고적하겠다. 
하나로 마트는 빈약한 상품으로 진열대만 덩그랗던 쿠바의 상점들을 연상케 했다. 
쇄락한 골목길에 벽화를 발라놓으니 왠지 쿠바 느낌이 나더라는..
그냥 그랬다. 

성하신당

원통하게 죽은 동남동녀의 전설이 전한다.
울릉도 어민들은 새 배를 장만하면 누구할 것 없이 여기 와서 제를 지낸다 한다. 포항에서 울릉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관계자도 그리 했다 한다.
성난 바다를 잠재운 분들이니..

오삼 불고기

울릉도 음식값은 꽤 비싸다. 여행 경비의 대부분이 먹는데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안주를 아끼면서 술을 많이 먹어야 한다. 

태하는 한때 군청 소재지였다.
1900년 대한제국은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바꾸며, 군청은 태하리에 둔다'는 요지의 칙령을 반포하였다. 
또한 태하는 울릉도에서 논이 가장 많았던 지역이다.
1786년(정조 10년) 강원감사 이치중은 울릉도 방문(수토) 보고서에 "황토구미에 이르자 산이 중첩되어 있었고 계곡물이 내를 이뤄 30여 석의 논농사를 지을 만하고 수십여 석의 밭을 갈 수 있었습니다"라고 태하를 언급했다. 하지만 실제 이 지역에서 논농사가 이뤄진 것은 섬을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주민의 이주와 개척을 명한 1883년 이후의 일일 것이다. 
태하천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지금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계단식 논의 흔적이 보이고 가장 논이 많았을 법한 곳에는 공설운동장이 조성돼 있다. 
태하천의 길이가 10리쯤 되고 그 길을 따라 산촌 가옥과 농경지가 펼쳐지며 그 끝에 폭포가 있다 하니 내 다시 울릉도에 가게 된다면 이 길을 거슬러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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