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홍규 형을 만났다. 
아뿔싸 작업 중이었네, 홍규 형이 차려준 술상을 받고 무척이나 미안했다.  
창작활동을 방해한 꼴이 되었으니..

12월 4일, 나는 부여로 달렸다. 
잠깐이지만 완성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전시를 위해 막 걸고 있는..
여러모로 시간이 꼬여 종일 운전만 디지게 하고 다녔네. 

잠시 칼을 거두고..
한 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우금티 전투를 형상한 커다란 작품,
판화 속 인물이 80여 명에 이른다 했다. 
이렇게 큰 종이도 있나 싶었다. 

묘하게 생긴 짐승 한 마리,
고라니를 새긴 것이라 했다. 

삼례 가는 길

"나락 익기만 기다렸다."
9월 봉기에 나서는 농민군들이 삼례로 모여들고 있다. 

내 청춘의 비망록

바람 부는 보리밭,
내 인생에 이런 출렁거림이 언제 있었던가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 신동엽 <서둘고 싶지 않다>에서 -

 

금강

영원의 강물이 우릴
손짓한다.

진아는 
금강가에 서 있었다,
조그만 
보자기 끼고 나룻배
기다리는 진아의 머리, 목덜미
앞가슴, 허리 아래를 
강물은 흘러내린다.

살아있을까, 하늬는
아직, 그리고 나 생각하고 있을까,

진아는
눈을 감았다,

다시 태어나진 
못하겠죠, 하늬?
한 번 더 걷고 싶어요
강 언덕길, 손길
마주잡고,

그럼
안녕,
안녕.

논길, 
서해안으로 뻗은 저녁노을의 
들길, 소담스럽게 결실한
붉은 수수밭 사잇길에서
우리의 입김은 혹
해후할 지도
몰라.

- 신동엽 <금강>에서 -

 

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
청년 신동엽

언젠가 부우연 호밀이 팰 무렵 나는 사범학교 교복 교모로 금강 줄기 거슬러 올라가는 조그만 발동선 갑판 위에 서 있는 적이 있었다.  그때 배 옆을 지나가는 넓은 벌판과 먼 산을 바라보며 '시'와 '사랑'과 '혁명'을 생각했다.
- 신동엽 <서둘고 싶지 않다>에서 -

전시회는 부여 신동엽 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다. 
곧 황토현 기념관에도 작품이 걸리게 된다 한다. 
언제 하루 날 받아서 농민들 초대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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