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동학농민혁명, 판화로 읽다'에 한 달에 한 번, 1년간 글을 보내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고심하여 썼는데 너무 쥐어짠 느낌이..

1년이 금방 지나가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박홍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2021, 200X100cm, 목판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정읍 황토현 기념관, 나는 커다란 판화 앞에 오래도록 서 있다. 
판화 속 농민군, 그들의 부릅뜬 눈을 본다. 내지르는 함성을 듣는다. 
콩 볶듯 울리는 총소리, 지축을 흔드는 포성, 찢어진 깃폭, 총 맞은 까마귀,
진군의 함성과 쓰러진 이들의 통곡소리 뒤엉킨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는 내가 되어 흐른다.
판화는 우금티 전투를 형상한 것이다. 갑오년이 저물고 있었다. 

새해 벽두 고부 농민봉기로부터 촉발된 갑오년의 농민항쟁은 3월 봉기와 집강소 시기를 지나 조선의 명운을 건 반제 반봉건 농민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조선 왕조의 봉건 착취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전 조선이 궐기했으니 우리는 이를 일러 갑오농민전쟁, 혹은 동학농민혁명이라 부른다. 
농민군은 우금티를 넘지 못했다. 우금티 전투 이후에도 농민군은 항전을 거듭하였으되 급속히 소멸되어갔다. 
조선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갑오년으로부터 불과 십수 년,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외적을 끌어들여 자기 나라 백성을 유린하여 스스로 진기를 훼손하고도 온전할 나라는 세상에 없다. 

죽창 들고 나섰던 이들 갑오년 농민군, 그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은 하늘을 보았을까? 갑오년의 하늘은 어땠을까? 그들은 진정 토멸되어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돌아보건대 갑오년은 결코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8.15 해방으로부터 51년, 4.19 혁명으로부터 66년, 5월 광주로부터 86년, 6월 항쟁으로부터 93년, 촛불항쟁으로부터 122년, 현재로부터 128년이니 이제 겨우 2 갑자를 갓 넘긴 가까운 과거이다. 
쓸쓸하고도 허전한 250년 전의 사랑 이야기 '옷소매 붉은 끝동'에 비하면 손 뻗으면 닿을 지근거리에 갑오년이 있다. 

갑오년의 농민군이 있었기에

단언컨대 갑오년의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들은 싸우고 또 싸우다 산과 들에서 죽고 논과 밭에서 썩어 흙이 되고 거름이 되었으나 그 위대한 발걸음, 숭고한 넋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역사의 가장 불행했던 순간을 가장 빛나게 싸웠으며, 가장 처절하게 패배함으로써 시대가 되고 역사가 되어 뒤따르는 이들의 등불이 되고 길이 되었다.
갑오년 우금티의 농민군과 80년 전남도청의 시민군, 죽어 역사가 된 사람들을 생각한다.
87년 6월의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람들, 엄동설한 강추위를 물리친 춧불군중, 그들 속에도 죽어 역사가 된 이들이 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백남기 농민열사를 비롯한 무수한 민중해방 통일애국 열사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을 살며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소설가 이광재는 이렇게 말했다.
"
갑오년에 총알이 지금도 날아다니고 있다 시절은 오늘의 첫 번째 단추가 틀림없다"(소설 [나라 없는 나라], 저자 서문)
오늘도 우리는 산과 들, 논과 밭에서 공장과 거리에서 무수한 우리 시대의 농민군들과 마주한다. 
갑오년에 발사된 그 총알이 장차 누구의 심장을 관통하여 과녁에 박힐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시대의 농민군,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하기에 우리 시대의 첫 번째 단추가 되었던 이들 갑오년 농민군들은 어떻게 싸웠는지, 그들의 투쟁과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복원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