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우듯 봄이 지나간다. 세월이라는 것이 이토록 빠르게 흐르는 것이었더란 말인가? 삭막했던 교정에 연둣빛 새싹이 돋고 온갖 꽃들이 피고 질 때면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학동 시절의 나른한 봄날, 그 더디게 흐르던 시간은 어디로 가버렸나? 연둣빛 산천이 초록 초록해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울긋불긋해지는 것이다. 백설이 만건곤하던 기나긴 겨울은 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봄날이 간다, 쏘아놓은 화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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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꽃들이 앞다퉈 피고 지는 봄이면 나는 으레 봄바람이 드는 것이다. 먼 길 가고 싶고, 가서는 다시 오지 않는 꿈을 꾸며.. 바람꽃은 바람처럼 피고 진다. 애써 기억하고 힘들여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바람꽃, 회문산 남바람꽃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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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바람꽃이 남바람꽃으로 개명된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게지.. 회문산 남바람꽃은 철창에 갇혀 있다. 자생지의 위태로운 삶을 철창이 보호하고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의 성화 때문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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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창 밖으로 탈출한 개체들을 정성스레 바라본다. 철창 밖 개체들이 더 싱싱하고 건강해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더 많은 개체들이 철창을 벗어나 번성하길 바란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그것은 철창의 의미이기도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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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열기 충만했을 그 시절의 회문산, 젊디 젊은 청춘 시절의 남녀 빨치산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고결한 삶과 죽음을 가슴에 새긴다. 회문산 남바람꽃은 하여 더 곱고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