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우듯 봄이 지나간다. 
세월이라는 것이 이토록 빠르게 흐르는 것이었더란 말인가?
삭막했던 교정에 연둣빛 새싹이 돋고 온갖 꽃들이 피고 질 때면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학동 시절의 나른한 봄날, 그 더디게 흐르던 시간은 어디로 가버렸나?
연둣빛 산천이 초록 초록해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울긋불긋해지는 것이다. 
백설이 만건곤하던 기나긴 겨울은 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봄날이 간다, 쏘아놓은 화살처럼..

.

온갖 꽃들이 앞다퉈 피고 지는 봄이면 나는 으레 봄바람이 드는 것이다. 
먼 길 가고 싶고, 가서는 다시 오지 않는 꿈을 꾸며..
바람꽃은 바람처럼 피고 진다. 
애써 기억하고 힘들여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바람꽃, 
회문산 남바람꽃을 찾아간다. 

.

남방바람꽃이 남바람꽃으로 개명된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게지.. 
회문산 남바람꽃은 철창에 갇혀 있다. 
자생지의 위태로운 삶을 철창이 보호하고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의 성화 때문인 게다. 

.

나는 철창 밖으로 탈출한 개체들을 정성스레 바라본다. 
철창 밖 개체들이 더 싱싱하고 건강해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더 많은 개체들이 철창을 벗어나 번성하길 바란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그것은 철창의 의미이기도 할지니..

.

혁명적 열기 충만했을 그 시절의 회문산, 젊디 젊은 청춘 시절의 남녀 빨치산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고결한 삶과 죽음을 가슴에 새긴다. 
회문산 남바람꽃은 하여 더 곱고 애처롭다. 

 

'새, 나비, 풀, 꽃 > 풀,꽃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0) 2023.05.14
봄나들이  (0) 2022.03.26
만주바람꽃  (0) 2022.03.19
봄의 전령 변산바람꽃  (0) 2022.03.11
만주바람꽃  (0) 2021.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