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겠으나 그 중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오름'이라 할 것이다.
수많은 오름들은 저마다 간직한 독특한 면면이 있다.
다만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멀리 서서 보기 좋은 오름, 직접 올라 좋은 오름. 오름에서 보는 풍광이 좋은 오름 정도로 구분해볼 수 있겠다.
다랑쉬오름은 그 셋을 다 충족시키는 그런 오름이다.
거기에 더하여 4.3항쟁 도중 토벌대에 의해 사라진 다랑쉬마을, 학살의 현장이 고스란히 간직된 다랑쉬굴 등으로 하여 제주사람들의 피맺힌 역사의 기록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으니 오름 중의 오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끈하게 솟은 사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커다란 굼부리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오름나그네의 저자 김종철 선생은 이를 '빼어난 균제미(均齊美)'라 하였다.
높지 않아 보인다고 쉽게 덤볐다간 큰코 다친다.
탐방로를 찾지 못하고 가장 높은 지점으로 직등하는 옛날 길로 올라가다 거의 죽다 살아난 사람이 있다.

오름 능선에 오르자마자 굼부리의 깊이에 놀라게 된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통제하고 있으나 굳이 통제하지 않아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는 깊이이다.
오름 자체 높이인 200m에서 절반 이상인 115m가 패여 있고 이는 백록담의 깊이와 같다.
그 옛날 설문대할망이 흙 한주먹 놓고 보니 너무 도드라져 주먹으로 탁 친 것이 오늘날 다랑쉬오름이 되었다 한다.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본 다람쉬

다람쉬마을이 있던 마을터 근처에 나락밭이 있다.
아마도 산두찰벼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에서 나락밭을 본 유일한 곳이다.

다람쉬오름은 자신을 닮은 새끼 오름까지 달고 있으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아끈다람쉬오름이다.
'아끈'은 둘째, 버금가는 것 등의 의미를 지닌 제주 방언이다.
아끈다랑쉬 너머로 우도와 성산일출봉 등이 보인다.
다람쉬오름에 오르면 산지사방으로 막힘 없이 펼쳐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한라산이 넉넉한 품으로 오름들을 감싸고 있고 수많은 오름들이 한라산 품으로 모여드는 듯 하다.
그 한라산 너머로 해가 들어간다.
오름왕국에 밤이 오고 있다.

세상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이 바빠질 무렵 성산 앞바다에는 불이 들어온다.
제주 농민들이 일궈놓은 오름 주변의 밭뙈기들은 땀과 노동으로 빚어낸 제주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