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는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만 볼 수 있는 새로 알았다.
선운사 동백숲에도 가보고 꽃 피는 봄날 매화가지도 살펴보았으나 허사였다. 
남도의 바닷가나 제주도에서 먼 발치로 한두번 본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동박새가 우리집에 왔다.
집을 나서는 길 들릴 듯 말 듯 낯선 새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니 동박새 두마리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금평할매네 동백나무에 앉았다.
미처 촛점 맞출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뾰로롱 날아가버린다.
행방이 묘연하다.
찾기를 포기할 즈음 어디 갔었냐는 듯 다시 날아온다.
탱자울타리 밑 감이 탐난 모양이다. 

한참 감을 파먹던 녀석 울타리 옆에 선 산수유나무를 올려다보더니 나무에 올라앉는다.
내년에 필 꽃봉오리를 미리 파먹는다.
두마리가 함께 다닌다.
이 녀석들도 가시버시일까?

갑자기 눈에 띈 동박새가 혹 따뜻해진 날씨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으나 그렇지 않다.
40여년전 부안 사는 시인의 눈에 뜨인 동박새가 이미 었었던 것을 보면 동박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었다.
시인의 눈은 역시 다르다.
동박새를 보고 이렇듯 감동적인 시를 남겨놓다니..
동박새도 보고, 동박새를 노래한 시인도 만나게 되니 일석이조가 이 아닌가.


동박새 오던 날

                      신석정

보슬비가 나리고 있었다.
동박새가 새낄 데불고 찾아왔다.
가시버시에 딸린 다섯 마리 새끼가
퍽은 예쁘다.

백목련 가지에 모여 앉아서
오랜 동안 이야길 하고 있었다.
새끼들은 자꾸만 날갤 떨며
어리광을 일쑤 떨고 있었다.

가시버시 동박새는 가지에 매달려
벌렐 쪼아 가지고 와선
어리광 부리며 날갤 떨고 있는
새끼들의 주둥이에 번갈아 넣어주었다.

다시 낙우송으로 호랑가시로 옮아와서도
가시버시 동박새는 분주히 벌렐 잡아서
찌찌찌 찌 찌 찌 새낄 부르고 있었다.

동박새 새끼 같은 어린것들을 데불고
끼닐 설치던 아득한 옛날
우리 가시버시의 지쳐 겨운 얼굴이
문득 저 동박새 소리에 묻어왔다.

치켜보는
오월 하늘은 바다보다 짙푸르다.


―《시문학》 1973. 9.


* 신석정 유고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2007. 9. 창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