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직불금 부당수령 규탄 농민대회에 참가하고 홍규형과 함께 서울에 잔류하였다.
이튿날 홍규형은 국립 중앙박물관에 꼭 봐야 할 작품이 있다며 오랫만에 문화생활 좀 하자 한다.
박물관에서는 '유물 속 가을이야기'라는 특별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형이 보고자 하는 건 거기에 전시된 '강산무진도'. 길이가 9m에 달하는 대작으로 김홍도와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 이인문의 작품이라 한다.
그림에는 산수와 더불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야 뭐 그림보는 안목이 있는것도 아니고 홍규형의 감탄에 그저 열심히 호응할 따름이다.

강산무진도 시작부분.

타작하는 농민들의 흐뭇한 미소를 보라. 술한잔 자시고 낯바닥 볼그데데해진 양반의 늘어진 팔자를 보며 조선시대 내가 태어났다면 분명 저랬을거라고 지금 생겨나기를 잘했노라고 상상하던 중 유인촌 일행에 의해 더 이상의 감상을 저지당하였다.


전시장의 많은 작품들을 지나 타작하는 농민들을 그린 김홍도의 그림 앞에 서 있을 무렵 갑자기 전시장이 소란스러워진다. 
후레쉬가 연신 터지고 대단히 급한 듯한 구둣발 소리가 고요하고 느릿한 전시장 분위기를 어지럽힌다.  
연이어 시커먼 양복입은 건장한 놈들이 오더니 비켜달란다. 
작품 감상중이라 했더니 다짜고짜 팔짱을 끼고 끌어낸다. 
그 사이 많은 수행무리를 이끈 유인촌이 지나간다. 
삽시간의 일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장관은 작품을 감상하는 듯 하다. 
누군가 "김홍도, 김홍도" 하자 장관은 "그래 그래" 하고 화답한다. 
"니미 씨벌놈들이고마이" 하고 소심하게 항변해 보았지만 장관 무리는 금새 우리 앞을 스쳐 벌써 전시장을 빠져나간 뒤끝이다.
 하! 이거 기분이 몹시 잡치고 만다. 
문화 무슨 장관이라는 사람이 실로 오랫만에 영위하는 촌놈들의 '문화생활'을 이다지도 무참히 짓밟고 지나가다니..
두고두고 입에 욕이 붙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 기자들한테 한바탕 해대는 유인촌의 표독스런 얼굴이 잡힌 동영상을 보니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스런 국감장도 아닌 어두침침한 전시장에서..
우리는 뼈도 못추릴 뻔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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