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경환 기자 kkh@vop.co.kr

"허허허…. 아직 모르지요. 결혼기념일에 일정이 없으면 내려가서 같이 식사라도 해야 할 텐데. 일정이 주어지면…."
오는 2월23일이 결혼기념일인데, 가족과 떨어져서 보낼것 같다고 했더니 쑥쓰러운듯 웃어버린다. 수십년 동안 농민운동하느라 불만도 많을 법한데 남편에게 한결같은 믿음을 주는 아내에 대한 마음만은 애틋해보였다. 같은 성당에서 만나 결혼해 40년 가까이 살아온 아내더러 '친구'라고 했다.

"아내도 같은 신앙인이에요. 여지껏 해왔던 과정을 지켜보고 같이 살아가면서 '당신 하나는 희생되더라도 농민을 위한 길이라면 해야 할 길'이라는 얘기를 해주는데 굉장히 고맙더라구요. 신앙 정신으로 버텨주는 안식구가 고맙죠. 정말 고맙고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어요."

이광석(59)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을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있는 전농 사무실에서 만났다. 생활한복을 차려입은 품새하며 말투 하나하나가 '푸근하고 단아하다'는 말을 절로 떠오르게 했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 민중의 소리


"그때만 해도 농민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1973년 결혼하고 1979년 '오원춘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벼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경작하는 논이 1만여평가량 됐으니 유지 비슷한 대접도 받으며 아쉬움 없이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오원춘 사건'을 접하면서 그는 농민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오원춘 사건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경북 영양군 청기면 농민들은 군과 농협에서 알선한 감자씨를 심었지만 싹도 나지 않는 바람에 감자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함평 고구마 사건이 해결됐다는 소식을 접했던 카톨릭농민회 청기분회는 즉각 피해농민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피해상황을 조사해 당국에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농민회원이 아닌 농민들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농민회원들의 끈질긴 활동과 안동교구 사제단의 지원으로 피해에 대해 전액 보상 받으면서 사건은 마무리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 앞장섰던 농민회원 오원춘씨가 1979년 5월 버스 정류장에서 정체불명의 두 사람으로부터 납치당해 울릉도까지 끌려가 15일 동안 강제 격리된 사건이 벌어졌다. 정체불명의 괴한은 '체제에 반항하는 놈은 그냥 둘 수 없다'며 오씨를 폭행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천주교 안동교구는 '짓밟히는 농민운동'이라는 문건을 제작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직을 통해 7월17일 전국에 일제히 폭로했다. 물론, 정부당국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카톨릭농민회와 농민회 간부들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천주교 신자인 이 의장은 당시 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

"그 사건을 접하고 농민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었는데, 농민운동이 뭐하는 것인가하는 호기심이 들고,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해서. 농민운동 시작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운동했습니다."

카톨릭농민회를 찾아간 그는 교육을 받으면서 농민들의 사회적 지위와 처지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 어려움도 많았을 터.

"당시가 군사독재정권시절이었기 때문에 모든 민중조직들이 전부다 없어지고 했을 땐데, 유일하게 남은 조직이 가톨릭 농민회였어요. 그 운동속에서 면역력도 많이 키웠고, 압박을 당하는 상황만큼 우리가 질기고 강인하게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민주화 운동과 접목이 되면서 농민운동은 곧 민주화운동이라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심장에 남는 사람

이 의장은 농민운동을 하면서 동지들을 만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한 명을 꼽아달라고 했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 민중의 소리

"익산에 사시는 소영호라는 선배님이 계세요. 그 선배님이 저하고 자주 얘기를 나눴습니다. 지금 농민운동 하는 활동가들이 배워야할 부분을 그분한테서 발견했습니다. 동지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시기였는데, 올 때는 꼭 책 한 권을 갖다 주시고 다음에 책에 대해 얘기하자고 하셨습니다. 하룻밤 같이 자고 식사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방 하나 들고 가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활동가 하나하나를 저렇게 만들었던 분이에요. 운동의 대부로 저한테는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존경해마지 않는 선배는 뜻하지 않은 일로 활동을 접게 됐다. 농민회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도중 당한 불의의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때문이다. 그 말을 꺼내는 이 의장의 눈빛이 순간 흐려졌다.

카톨릭농민회 활동하던 시절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도 알게됐다. 카톨릭농민회는 지역간에 사안이 있을 때면 항상 모여서 역할을 함께 했다. 고추싸움, 소싸움을 비롯해 이러저러한 싸움을 같이 했다.

"저희 지역(군산)에는 분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산재회원으로 지역대표성만 갖고 군산지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총회에 가면 강기갑 의원을 보곤 했죠.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대책위 하는 것도 봤고. 허허…. 강 의원이 경남쪽에서 두드러진 활동가로 활동했었습니다."

화제를 농업현안으로 돌렸다. 작년 농민들은 쌀값폭락 해결을 촉구하면서 그 해법으로 대북쌀지원을 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때 전국에서 모인 '통일쌀'이 아직도 전농 사무실 인근도로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이날 순찰차 한 대가 곁에서 '노숙농성'하는 '통일쌀'을 감시하고 있었다.

"지금 통일문제도 통일문제지만 그 이상으로서 통일농사를 짓는데 크게 일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작년 쌀대란 속에서 농민들이 얻은 교훈이 있습니다. 통일농사를 지어서 쌀을 북녘 동포들에게 나눠서 수급조절을 하면 남쪽 농민들도 제대로 쌀값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은 농민들이 했습니다. 정부는 사실 작년에 60만 톤이 남네 80만 톤이 남네 했는데, 금년에는 100만 톤이 남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남는 물량과 수요를 같이 시장에 내놓으면 쌀값이 '똥값' 된다는 건 명확한 겁니다. 더더구나 금년에는 더욱 큰 대란이 올 것이라고 보고 농민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북쌀지원을 해야한다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학계나 정치권에서도 그게 해법이라고 인지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그건 제끼고 농민을 위해 해소하려는 의지 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가져가려고 하고 오히려 그런 부분을 통해서 정부나 기업이 어떻게하면 자기들의 부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냐는 데에 관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대북쌀지원법제화 요구하면서 전체 농민들이 통일농사를 다시 지으면서 대북지원하는 데에 우리가 통일 앞당기는 데에 역할 하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후 몇차례에 걸쳐 남아도는 쌀을 해소하기 위해 쌀가공업체에 싼값에 묵은쌀을 공급해야한다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는 재고미를 밀가루가격으로 쌀가공업체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쌀 소비량이 줄고 있는데 싸게 줄테니까 많이 먹으라고 한다고 세끼 먹던 사람이 다섯끼 먹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을 반값으로 공급하면 기업에게 큰 이익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고, 가공용쌀이 반값으로 풀렸을 때 시장에서 농민들의 쌀값을 결정하는데는 아주 악순환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엇가는 얘기입니다."

다시 물었다. "그런 비판을 우려해서 그런지 몰라도 '쌀가루'로 가공해서 공급하겠다고 했는데요?"

"밥쌀용 쌀을 여지껏 가공용쌀로 사용했던 건데, 가공용을 반값으로 제공한다는 건 밥쌀용 쌀도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얘기입니다. 농민들 고혈을 뽑아서 기업에게 이익을 몰아주는게 이명박 정권이 주장하는 선진화위원회 지론이라고 저희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탄압은 강도짓"

갈수록 농민의 처지는 어려워지고 있다. 농민운동가 이전에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의장의 걱정도 컸다.

"농업이 어렵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이 제대로 보장이 안된다는 것이 제일 첫째입니다. 제대로 생산비가 보장되지 않으니 결국 점차 삶에 고통을 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떠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예전에 1천만 농민 이야기를 하다가 20년전에 전농 세워질 때는 7백만 농민이 됐고, 지금은 320만 정도로 줄었습니다. 농업을 점차적으로 회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는게 제일 우려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이 의장은 '식량자급률 법제화'를 꼭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G20 운운하는데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식량을,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 정책의 첫번째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자급률을 올려가고 있는데 우리는 쌀을 빼면 7% 정도 되요. 그런 정도 자급률로 향후 우리 먹을거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서 갈 수 있겠어요? 이래선 안되죠."

전농은 민주노총과 더불어 민주노동당을 떠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 중에 하나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동당이 탄압을 받고 있다. 이 의장은 전날인 10일에도 민주노동당 당사를 찾아 검경의 탄압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정부가) 반MB전선을 구축하려고 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곱지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MB 가는 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말을 하는 단체나 정당에 들이댔던 혹독한 칼날들을 지금 민주노동당에 겨누고 있는데,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라는 격'입니다. 많은 일하는 사람들, 농민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엄호해주는 민주노동당의 도덕성을 믿고 있습니다.
자기네들끼리는 강도 얘기 해가면서 강도처럼 돌변해서 남의 제일 은밀한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정말 강도짓이죠. 결코 대중들에게 설득력을 못얻을 것이라고 봅니다."

전농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1백여개 시군에서 후보를 내고, 적어도 50명을 당선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아직 중앙위원회가 열리기 전이라 사업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후보전술을 할 수 있도록 준비중"이라고 했다.

궁금했다. 전농은 지난 2003년 민주노동당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이루기로 결의한 바 있다. 그 결정에 따라 많은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선거철이면 일선에서 마찰이 일기도 한다. 호남지역에서는 농민회원이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꽤 있다.

"민주당 텃밭인데…. 텃밭을 가로질러야 할 텐데 많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욕심을 내서 치르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 지지가)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일부 지역도 좀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토론해서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힘을 가지고서 농민세력의 정책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토론과 결의를 내오려고 합니다."

그래도 껄끄럽지 않을까? 자칫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런 갈등이 물론 존재합니다. 그러나, 한 조직체가 제대로 조직진용을 갖춰서 힘있게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단위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 부분은 같이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조직이 제대로 된 조직이겠는가 생각합니다. 조직이 2003년에 결정했고, 7년여가 지나면서 이미 많은 것들이 보여지는 사례들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과도기는 지났다, 이제는 정진해나가는 것만이 힘을 얻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매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이 60에 다시 군대온 느낌"

임기 2년의 의장직. 마침 올해는 전농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향후 20년의 전망을 세워야 하는 역할도 이 의장에게 주어진 책무다. 전농은 최근 20년사 출판사업과 함께 조직진단사업, 기념사업, 조직전망을 세우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깨가 더욱 무겁다고 했다.

"전농 20주년인데 지나온 20년을 갈음하고 앞으로 20년의 전망을 내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단한 하중입니다. 국민과 같이 하는 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되요. 국민운동 관점에서 전개하려면 국민들은 전농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묻고, 20년에 대한 평가도 같이 하는게 필요하죠. 이후 전망도 같이 내와야 하는 중차대한 상황입니다. 난제들이 많죠."

전북도연맹 의장을 하던 이 의장은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최근에야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고 있다. 2주쯤 됐단다. 서울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다. "나이 60에 군대에 다시 온 느낌"이라고 했다. 숙소에서 일어나면 출근하고, 낮시간에는 주로 기자회견이나 집회현장을 찾아다니다가 저녁에 다시 숙소로 들어가고. 빡빡하게 짜여진 생활이 시골생활과 달리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서울에 와서 있다보니까 빌딩 숲이 사람을 전투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장에서 있을 때는 좀 마음도 느긋하게, 뭔가 사고하는 것들이 체질에 맞았는데 와서 보니까 정신이 없어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부분들이 감을 못잡을 정도로. 지금 뭐랄까. 해야 할 일은 많고, 조직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제대로 추스려야 한다는 열의는 대단히 많은데 갈 길은 멀고 그렇습니다."

인터뷰 말미 이 의장은 "지역에서 고생하는 농민들 생각하면 뭐든지 해야겠다는 열의가 타오른다"고 했다. 그 말이 꼭 그의 '신앙고백'처럼 들렸다.

<김경환 기자 kkh@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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