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직불금 농성중인 최형권 민노당 최고위원

정인미 기자 / naiad--@hanmail.net


'쌀직불금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 농성장' ⓒ 민중의소리 김미정 기자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에 접어들었지만 농민들은 수확의 기쁨이 아닌 박탈감과 분노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달 초부터 시작된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불법 수령 의혹 때문이다. 매년 허리가 휘도록 농사를 짓고 있지만 쌓이는 것은 빚뿐이다. 그래도 자식 같은 땅을 버릴 수 없어 굳은 허리를 두드려가며 힘들게 버티고 있다.

농업 개방 확대로 인해 적자를 보고 있는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보상금을 지불해주는 '직불금'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가짜 농민'에게 이마저 도둑맞았다. 도둑맞은 진짜 농민들의 직불금을 찾아 돌려주자는 국민 여론이 들끓자 여야는 서둘러 국정조사권 발동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증인 채택과 불법·부당 수령자 명단 공개를 어디까지로 할지 등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결국 농민들의 분노를 대신 감싸안은 민주노동당은 차디찬 국회 대리석 바닥에 자리를 깔았다.

"다른데서 농성하던 것에 비하면 좋다. 나가라고도 안하고, 전망도 탁 트인게 땅값이 비싸서 그런지 좋다"라고 말하는 민주노동당 최형권 최고위원. 한숨 섞인 넋두리를 늘어놓는 그는 민주노동당의 농민부문 대표다.

본청 앞에 자리 잡은 '쌀직불금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 농성장' 앞에는 유난히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다. 의원회관부터 국회 본청 앞까지 '높으신 분'들을 모시고 온 차량들이다. 국회에서 본청까지 불과 100여 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한 여야 국회의원들은 본청 계단에서 불과 10여미터 앞에 있는 농성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싸늘한 가을 날씨만큼이나 야박한 모습이다.

최형권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 민중의소리 김미정 기자

"우리 지역 의원도 있는데, 여기 있다 보면 다들 건물 밑으로 지나가는지 잘 안보인다. 국회의원만 사람으로 보이는지 문 앞에 있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쌀직불금 부당수령자 명단공개는)전 국민이 공감하는 일인데 '애쓴다'는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라도 썩고, 사람도 썩어가는 것 같다"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직불금 부당수령 의혹으로 불거진 이번 논란에 대해 최 위원은 "터질 것이 터졌다"고 말했다. 흙과 함께 숨 쉬며 살아왔지만, 그는 요즘 땅만 봐도 숨이 '턱'하고 막힌다. 그는 "다들 문제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남의 땅 붙여먹고 살아야 하는 소작농 입장에서는 농사를 못 짓게 할까봐 '(직불금은)나한테 줘야 한다'고 말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대규모로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그런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부재지주가 60%나 되는 상황에서 소작농이 없을 수 있겠나. 주인한테 (직불금을)달라고 하고 싶지만 돈 자체에 욕심을 내는 사람도 있고, 또 달라고 요구하는 순간 다른 사람한테 농사지을 땅이 넘어간다"

눈앞에서 자기 밥그릇을 뺏기고도 신고조차 쉽지 않다. 불법이 밝혀지면 정부에서 3년 동안 직불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할 뿐 대부분의 피해는 농민들에게 돌아온다.

"불법이 드러나면 시장 군수들이 땅을 팔도록 강제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결국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더 웃기는 것은 지주가 농촌공사라는 곳에 땅을 위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에 돈을 맡기듯이 내 땅을 맡기면 (다른 사람에게)빌려준다. '경자유전의 법칙'에 위배되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직불금이 농민들을 살려주는 '생명줄'도 아니다. 사실상 농민을 '안락사' 시키는 제도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부가 시장 개방을 앞두고 농업이 갑작스레 망할까봐 브레이크 장치를 한 것일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업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쥐꼬리만한' 직불금으로는 농민들의 생활이 보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값, 비료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이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고, 이에 지쳐 농업을 포기하려는 농민들이 늘고 있다. 정부가 의도하는 일이다."

직불금이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농사를 그만둘 수 없는 농민들은 그것만이라도 온전히 받게 되길 바란다. 그런데 몇십억, 몇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높으신 양반네'들은 '쥐꼬리만한' 직불금을 받기 위해 "주말마다 내려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다"고 빤한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는 "농사는 소꿉놀이같이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고하는 웃기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작은 평수는 취미로 할 수 있겠지만, 직불금이 나오는 규모는 그렇게 못한다. 농사라는 것이 날씨에 따라서 일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하고, 며칠만 안돌봐도 풀이 엄청 자라나는데 그걸 어쩌나. 농사는 주말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최형권 최고위원 ⓒ 민중의소리 김미정 기자


더 답답한 것은 부자들의 '투기'의 수단일 뿐인 '땅'에 농민들은 '생존'을 걸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는 "건설부지는 (농지보다)비싸다. 헐값에 사서 개발소문을 타고 땅값이 오르면 그 시세차액을 노리는 것이다. 거기다 농지는 8년간 농사를 짓게 되면 양도소득세를 면제받게 된다. 양도소득세를 탈루하기 위해 농민인 척 하는 것"이라며 가슴을 쳤다.

"사회적 관심이 낮아질 때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할 것이다. 명단을 축소하고 대충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못하게 하기 위해 지금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 위원은 28만명의 직불금 수령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부당하게 농민 돈을 가로채간 '탐관오리'들의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칫 전·현 정권의 책임 공방만 주고받다 끝날 공산도 없지 않아 걱정이 앞선다.

"정치권에서는 농민을 사람으로 안본다. '기타국민'이라고 한다.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다. 농민들이 생존을 요구하면 귀담아 듣는 것이 아니라 경찰 시켜서 패죽이기까지 한다. 일년에 1000명 이상이 자살한다. 그래도 사회적 관심이 없다."

최 위원은 만에 하나라도 조사활동이 전·현 정권이나 여야 정당 간 책임공방 등의 정쟁으로 흐지부지 끝난다면 여느 때와는 달리 멍든 농심은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 이상의 태풍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고했다. "탐관오리가 판을 치고 정치가 썩으면 농민들이 일어난다"고.
  • 기사입력: 2008-10-27 19:06:57
  • 최종편집: 2008-10-28 19:5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