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트집이라도 잡히기만 하면 간다.
내가 제주도를 기를 쓰고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라산, 오름, 사람, 바람, 바다..  다 좋다.
무엇보다도 어딘가 떠나왔다는 느낌, 당면한 세상사를 순간순간 내려놓을 수 있는 동떨어진 느낌이 좋다.
유배당하고 싶다.
다시 찾은 제주, 언제나 그렇지만 바람이 겁나게 분다.
이제는 제주도 길들이 너무나 익숙하다.
바람을 뚫고 먼저 찾아간 곳은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일제가 최후 거점으로 건설해놓은 군사시설 중의 하나다.
여러 가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지역이겠지만 이번에는 새를 보기 위해 알뜨르 비행장을 찾았다.

머나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 
단 번에 수천 키로, 심지어 1만 키로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나그네새들에게 있어 지친 날개를 잠시 접고 다시 날기 위한 힘을 비축하는 중간 기착지는 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장소가 된다.
월동하거나 번식하지 않으며 우리나라를 잠시 들러가는 새들을 우리는 나그네새라 부른다.
지금은 그런 나그네새들이 집중적으로 우리나라를 통과하고 있는 이동시기다.
알뜨르 비행장과 그 주변 밭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쇠부리도요와 제비물떼새는 좀처럼 대면하기 어려운 귀한 녀석들이라 하니 예까지 와서 그냥 말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이 녀석들과 만나는 것이 이번 제주행의 속에 품은 뜻이기도 하다.

알뜨르 비행장은 산방산과 송악산 등을 목표로 하여 찾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바라본 한라산이 산방산을 앞세우고 구름 속에 정수리를 숨기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반긴 것은 제비물떼새.

제비물떼새
 

반겼다고 하는 건 내 생각일 뿐 녀석은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여긴 내 땅이라는 듯 버팅긴 다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잘 다듬은 구레나룻과 위엄이 서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검은가슴물떼새

아직 작물이 들어가지 않은 빈 밭에서 검은가슴물떼새가 뛰어다니고 있다.

종다리

종다리(노고지리)도 보인다.

비행장 활주로 안을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차에서 내려 비행장 안으로 들어간다.
하! 몸도 가누기 힘든 엄청난 바람이 분다.

풀밭 속에서 종다리들이 튀어나와 모진 바람을 가슴으로 튕겨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쉴 새 없이 지저귀는 것은 물론이다.
옛 고전에서 글로만 접해온 광경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없다.

큰뒷부리도요

쇠부리도요에 앞서 큰뒷부리도요를 만났다.
긴 부리가 위로 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린 새일 리는 없고 아직 여름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겨울옷을 입고 있다.
큰뒷부리도요는 1만여 키로를 쉬지 않고 나는 초장거리 논스톱 비행으로 이름난 녀석이다.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월동하고 시베리아, 알래스카 등지에서 번식한다고 한다.
중간 기착지에서 쉬는 것을 빼고는 한 번 날면 몇 날 며칠이고 단번에 날아 목적지까지 가는 대단한 녀석이다.

쇠부리도요
 
 

드디어 만났다, 쇠부리도요.
그 귀하다는 녀석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거리를 주지 않는다.
날아와 앉아 풀밭에 몸을 낮추면 좀처럼 찾기조차 힘들다.
바람은 디지게 불고 까칠한 녀석들 따라다니다 보니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