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도요의 번식을 관찰하기 위한 탐조객들의 발길이 한바탕 휘몰아친 개천에 풀들이 자라나 관찰이 어려워지면서 탐조객들의 발길도 잦아들었다.
둥지 짓기와 산란을 거듭하며 번식을 위해 애쓰던 호사도요들도 계속되는 실패에 어디론가 떠나버린 듯했다. 
나는 나대로 농번기가 시작되어 10여 일 가까이 발길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모나 심어놓고 인근의 논을 살펴봐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조차 희미해질 무렵 새끼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하! 용한 녀석 어디에 숨어서 알을 품고 있었을까?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녀석들, 네 개의 알을 낳는다더니 정확히 네 마리의 새끼를 품에 안고 있다. 
꺼병이를 닮은 똘망똘망한 새끼들이 천진스럽기 짝이 없다.

 

그놈들이 다 들어가네. 아빠 품은 넓기도 하다.
위험을 감지하고 품기도 하지만 이따금 정기적으로 품어주는 듯하다.
어린 새끼들 체온 유지를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새끼를 거느렸다 하여 특별히 경계를 강화하거나 민감해하지 않는다.
새끼를 거느린 아비의 자태에 자상함과 여유로움이 넘친다.
열심히 먹여주고 먹어가며 먹이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새끼들은 새끼들대로 물새답게 나름대로 부리질도 해가며 민첩하고 활기차게 움직인다.
긴 다리, 커다란 발이 인상적이다.
새끼를 거느린 호사도요 수컷을 보고 있노라니 영락없는 수더분한 아줌마 인상이다.
자꾸 암컷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둥지를 만들 때 다소 거들기는 하나 알을 낳아주고는 또다시 다른 수컷을 찾아 떠나버리는 비정한(?) 암컷보다는 알 품기와 새끼 키우기를 도맡아 하는 엄마 같은 아빠, 수컷에게 정이 더 간다.

이튿날 다시 찾은 그곳, 하룻밤 사이 새끼들은 더욱 활발해진 듯하다.
"이렇게 풀이 없고 트인 곳에서는 뛰는 거야" 훈련 중이다. 

해찰하는 녀석 꼭 하나씩 있고.. 

한 녀석은 왕건이를 건져 올렸다. 

아비가 성큼성큼 개울을 건넌다.
수영은 생존을 위한 필수 항목인 듯 새끼들 부지런히 헤엄쳐 아비를 따른다.

"나도 날개가 있다고.. 으랏챠챠"

이렇게 연 이틀 새끼를 거느린 호사도요를 관찰했다.
그날 밤 비가 내리고 물이 불었다.
그리곤 어찌 되었을까? 영 보이질 않는다.
깃털조차, 배설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피신하기 충분한 둔덕이 있고 따스한 아빠 품이 있는데 어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어본다.
다만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건강하게 자라 다시 나타날 새끼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