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드나든지 3년이 되었으나 경기전을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다.
제주에서 올라온 경록이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경기전과 한옥마을, 남부시장 일대의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가장 낫지 않겠는가 생각되었다. 
마침 홍규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전주 나들이에 나서니 오후 2시가 되었다.
홍규형은 남부시장에서 우선 막걸리를 한잔 하고 경기전과 한옥마을을 둘러본 다음 베테랑 칼국수로 마무리하자고 한다.

남부시장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은 개국 이후 모든 시장을 없애고 오로지 '관영시장'만을 허용하였으나 성종임금(1460년~1494년) 시절 대기근에 굶주린 백성들이 성 밖에서 좌판을 벌이고 식량 교환에 나섰다 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금하고 억압하였으나 40여 년만인 1525년경에는 결국 난전을 허용하게 되고 이것이 조선시대 상설시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주 남문시장이 그 효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호남의 중심은 전주였으니 호남 제일의 시장이 바로 이 남부시장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남부시장이 오늘은 한산하다. 쇠락해가는 재래시장의 운명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문시장 먹을거리 하면 콩나물국밥과 순대국이 유명한 모양이다.
오늘은 순대에 막걸리다. 즐비한 순대국집 중 유독 한집만이 사람이 넘쳐난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순대에 막걸리로 한상 차려놓으니 그럴듯하다. 순대맛은 좋기는 하나 이토록 사람이 몰릴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한병 두병 비우던 막걸리병이 꽤 쌓이고 나서야 자리를 파하고 경기전으로 향한다.
지나는 길에 성심여고와 베테랑 칼국수집을 눈여겨 보아둔다.
성심여고생들의 고풍스런 교복이 눈에 띈다.


경기전에 도달하니 가을색이 완연하다. 은행나무 밑에 장기두는 노인양반들 한가하고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발걸음이 여유롭게 늘어진다.

경기전 앞의 하마비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오늘날 태조어진이 이 자리를 지키지까지 무수한 역사적 곡절이 있었겠는데  최근에는 3년전 서울 나들이를 떠난 어진이 관리소홀과 훼손을 이유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지난달에야 다시 귀환하였다 한다.

전주이가인 나에게는 '끌틍 하나씨'인 셈인데.. 무신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전 옆에는 경기전을 관리하던 역할을 하던 부속 건물들이 보인다.
새로 복원한 것이라 하는데 튀지도 않으면서 초라하지도 않으면서 경기전과 잘 어울린다. 

경기전에서 바라본 전동성당. 홍규형은 전동성당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기전이라고 거듭 거듭 강조한다.


경기전을 나와 오목대로 향한다.
한옥마을을 가슬러 오르다 구멍가게에 들러 막걸리를 주문하니 안주를 몇가지 쟃겨주는데 이 맛이 보통이 아니다.
토란국도 아니고 탕도 아니고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  고사리무침 그리고 무우생채. 
하나하나에 전주사람이 아니면 성취할 수 없는 깊은 내공이 스며 있다.  

 
구멍가게를 나와 오목대에 오르니 해가 떨어진다.
오목대는 왜구를 무찌른 이성계가 잠시 머무르며 자신의 5대조 할아버지인 목조의 숨결을 느낀 곳이라 한다.
나에게는 끌틍 중의 끌틍 하나씨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베테랑 칼국수. 홍규형이 쫄면과 만두, 칼국수를 시킨다.
맛이 좋다. 특히 칼국수는 들깨를 갈아넣어 오묘한 맛과 향을 낸다.
제주에서 올라온 경록이도 '맛있다'를 연발하며 칼국수를 깨끗이 비워낸다.
성심여고생들이 천리타향으로 시집을 가도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 집이라는 홍규형의 부연설명이 과히 과장되지 않게 들린다.
 맛에 취하여 사진을 남기지 못하였다.
든든해진 배를 두들기며 칼국수집을 나서니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오늘 한옥마을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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