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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구비 흐르는 아름다운 강
섬진강 쌀밥 같은 백사장은
이 놈 저놈 다 파먹어
자갈밭이 되었고 야속한
강바람만 철교 탑에
부딪혀 어두운 식민지
굴 속을 지나 텅 빈
대가리 들녘을 지나네.
사람들아 지발 좀
섬진강을
꽃내음 풀내음
싣고 유구 장창
흐르게 냅두게

  - 향가에서 홍규

다섯 번째 열리는 순창 섬진 문화제 중 판화 찍기 행사를 위해 창작된 박홍규 화백의 최근작.
섬진 문화제는 섬진강 적성댐 반대 싸움 과정에서 열리기 시작한 순창 사람들의 행사이다.
능수버들 늘어진 강가에서 다슬기 잡는 사람들, 낚시질하는 태공, 삿대질하는 사공, 강줄기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강변의 곡선..
나무랄 데 없는 강변 풍경 속 흉물스러운 직각 기둥은 무엇인가?
일제가 만들어놓은 식민의 잔재, 기찻길을 놓기 위한 다릿발이다.
송정리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전남선 철로를 놓으려던 일제가 패망하면서 공사가 중단되고 다릿발과 터널만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일제에 의한 조선 수탈의 상징이라 하겠다.
'다릿발'이라는 이 지역 순창 사람들의 표현을 알지 못하여 판화에는 '철교탑'이라 새겨놓았는데 현장성을 중시하는 홍규형은 이를 못내 아쉬워했다.
또 하나 '야속한 강바람'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여 며칠을 고민하였으나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여 그대로 새겼다 한다.
'무심한 강바람'이라 했으면 좀 나았을까?

 

늘 술만 같이 먹었지 작업하는 홍규형은 처음 보았다.
초저녁에 시작한 새김질이 날을 꼬박 새워 이튿날 오전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만화보다 자다..
현장 답사와 작품 구상, 밑그림 그리기 등까지 포함하면 훨씬 긴 시간이 투여되었을 것이다. 

완성된 목판
실제 풍경
아빠는 지푸락 묶느라 바빠서 못왔으니 지들이 받아가겠다고 반시간을 넘게 기다려 판화를 받아간 꼬마둥이들.

섬진강은 4대 강이 아니라서 그나마 일제가 남겨놓은 콘크리트 다릿발만을 보듬고 오늘도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일제보다도 훨씬 잔혹하게 강을 파괴하고 콘크리트를 들이붓는 행위가 있으니..
저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이 말하고 있는 바를 모르겠는가?
"대통령 아자씨 지발 좀 우리 강을 그냥 흐르게 냅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