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 들고 새 보러 다닐 새가 없다.
고창 지역신문에 연재하는 '고창의 자연'이라는 나에게 할애된 지면을 위해 주말에라도 사진기 들고 나가보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하는 수 없다. 지난 사진이라도 들춰가며 소재를 찾는 수밖에..

호사도요를 아시나요?

새나 짐승이나 보통의 경우 암컷보다는 수컷이 크고 화려하다.
자연계에서 다만 사람만이 좀 다르다 한다.
그런데 종종 예외는 있는 법, 바로 호사도요가 그러하다.
호사도요는 수컷보다 암컷이 화려하고 더 클 뿐만 아니라 암컷이 수컷을 유혹하는 특이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암컷은 알만 낳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곧 다른 수컷을 찾아 떠나며 일정한 영역 안에 여러 마리의 수컷을 거느리는 일처다부를 유지한다.
수컷은 암컷이 낳아준 알을 품어 부화시키고 새끼를 키우는 모든 일을 도맡아한다.
호사도요라는 이름은 이처럼 호사를 누리는 암컷의 습성에서 따온 것이다.
이 녀석들은 매우 귀할 뿐 아니라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신하는 재주가 절묘하여 사람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다. 한번 숨으면 그 자리에서 딸싹도 하지 않고 서너시간은 보통 버틴다.
때문에 이들의 습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철새인지, 텃새인지에 대해서조차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화려한 암컷, 수수한 수컷 천연기념물 449호. 목덜미의 붉은 깃이 암컷의 번식깃이며 겨울깃은 수컷과 구분하기 어렵다.

고창에서 호사도요를 처음 본 것은 2008년 봄, 물잡아놓은 논에서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총 4곳에서 약간의 무리를 이룬 녀석들을 관찰하였다. 새가 많기로 유명한 서산 간척지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되던 호사도요가 고창에는 꽤 폭넓게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고창읍에서 발견된 녀석들은 꼬박 1년간 번식과 육추, 겨울나기 등 호사도요의 서식 전반을 관찰하여 철새가 아닌 텃새로 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작년 이맘때 녀석들을 보기 위한 탐조객들이 전국에서 도래하여 천변에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지금 시기는 겨울을 난 암컷이 화려한 번식깃으로 옷을 갈아입고 수컷을 부르는 깊은 울음을 토해낼 때이다. 수컷은 이에 호응하여 열심히 둥지를 틀어 알 받을 준비를 하고 암컷과 교미한다. 암컷은 배 속에서 알이 성장하는 기간 동안만 수컷과 함께 생활하며 알을 낳고는 곧 떠나고 만다. 그 이후의 모든 일은 오로지 수컷 혼자서 감당한다. 짠하기 그지없다.

새끼를 거느린 호사도요 수컷.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런데 물가에 집을 짓는 습성과 주위의 천적 탓에 번식이 쉽게 성공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알을 품고 있는 동안에 큰 비가 내려 둥지가 파괴되고 까치가 알을 먹어 치워버리는 불상사가 발생되기도 하였다. 작년 꽤 많은 시도 중에 단 한번의 번식 성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정사정없는 자연 생태계의 무수한 역경을 딛고 번식에 성공하여 갓 태어난 어린 호사도요들과 녀석들을 품고 있는 수컷을 보는 순간 느꼈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