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 총장님이 민중의 소리 만민보의 309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기사 제목 그대로의 '천상 농사꾼'. 
천상의 농사꾼이 아닌 천상 농사꾼이다. 
농사꾼 말고는 갈 데가 없는.. ㅎㅎ
내가 받들어모시고 있는 직속 상관, 나는 총장 밑이 처장이다. 
이 냥반의 평소 성품과 지론을 별반 왜곡 없이 기사에 잘 담아내었다. 
단 하나, 아직 장가 안간 총각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안타깝다. 가장 중요한 건데..
둘리띠, 아기공룡. 마음은 아직 팔팔한 이팔청춘이다. 
여성들은 몰라, 이 냥반이 얼마나 진국인지.. 
땡 잡는거인디.. 것도 38 광땡으로다가.


여의도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위두환 전농 사무총장의 첫 마디는 쓴 소리였다. “민중의소리 만민보 보면 진짜 밑에서 고생하시는 사람들이 현장에 많은데, 잘 나타나지 않는다. 겨우 중앙에서 총장이나 하는 나같은 사람을 취재한다니 아쉽다.”

위두환(48) 사무총장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가 의외였다.

하나는 농사를 짓고 싶어 집안 몰래 농고를 지원해서 다녔다는 것이다. 전남 장흥의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집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짓고 싶었으나 부모님은 7남매의 막내인 그라도 대학 가기를 원했다. 그는 부모님 눈을 피해 농고를 지원했는데 광주로 가려면 부모님 동의가 필요해 이웃의 강진농고를 택했다. 

위 총장은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마흔 다섯 살까지 농사지어 큰 돈을 벌어서 말을 타고 다니겠다”는 꿈을 자랑했다고 한다. 요즘 식으로 돈을 벌어 외제차를 몰고 다니겠다는 꿈 정도 되겠다.

또 하나 의외는, ‘겉보기에는 전혀 안 그런’ 그가 실제 큰 돈을 벌기도 했다는 것이다. 위 총장은 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집안 농사를 이어받았다. 89년에 당시 시험재배만 성공했던 버섯농사를 지어 당시 돈으로 7천만원을 벌었다. 그 뒤 농사지으며 택시 운전도 했고 개인택시까지 인수하기도 했다.

위두환 전농 사무총장

위두환 사무총장이 36개 농민단체가 함께하는 한미FTA 비준 반대 여의도 농성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마흔 다섯까지 농사를 짓지도 않고 말을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은 그가 굳이 농민운동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둘째 형님이 민통련이라는 재야단체에서 활동을 해 약간이지만 영향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형님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마을마다 농민회를 건설하며 새롭게 움트고 있던 농민운동의 흐름이다. 

가톨릭농민회로 대표되던 앞 세대 농민운동을 이어 각 지역마다 대중적 농민회를 건설하고 이를 토대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1990년에 건설됐다. 그가 1987년 군에서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한창 농민회가 준비되던 시기였다. 1990년 12월 발족을 앞두고 장흥군농민회를 준비하던 선배들은 당연히 성품 좋고, 수완도 좋은 그를 ‘꼬셨다’.

이후 그는 2006년 전농 광주전남연맹 사무처장으로 옮길 때까지 장흥군을 지켰고, 2008년 한미FTA투쟁으로 구속이 돼 1년6개월 ‘빵생활’을 하기도 했다.

‘중앙 간부’ 소문에 ‘절대 안 된다’ 반발했던 이유

위 총장이 광주전남연맹에서 얼마 활동하지도 않은 2009년 7월부터 ‘중앙 간부로 올라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렸다. 그 소식을 듣고 그는 보성에 사는 문경식 전 전농 의장(현 민주노동당 전남도당 위원장)을 찾아가 ‘절대 안 된다’고 떼를 썼다. 

‘벼슬’에 초연하기 쉽지 않은 운동 풍토에서 그는 왜 그렇게 중앙 간부가 되지 않으려고 했을까? 그의 답은 “운동의 미아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2009년 감옥에서 나온 그는 이장도 맡을 준비를 하며 아래로, 현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대책 없이 위로 올라가 버리면 돌아올 곳이 없어지고, 운동판이나 기웃거리는 미아가 돼 버린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억지로 막아놓은 이야기는 그해 12월에 다시 나왔고, 모셔야 할 어머니도 10월 돌아가셔서 안 가겠다고 버틸 ‘명분’도 없어져 버렸다. 결국 그가 속한 장흥군농민회는 그가 중앙 간부로 가도록 결정했고, 그는 조직적 결정에 승복해 서울행 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2010년 초부터 시작한 전농 사무총장직도 어느덧 임기 2년을 채워간다. 그 사이 어떤 것이 변했을까?

위두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위두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민중의소리

위 총장은 유난히 실천과 현장을 강조했다. 그는 “농민회 사업은 모내기 같이 하고 수확철에 포대 잡아주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 활동가가 있을 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논두렁 밭고랑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중 속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장흥군농민회에서의 ‘군청 앞 나락 적재 투쟁’을 실례로 들었다. 수매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군청이나 농협 앞에 나락을 쌓아두고 옆에 천막을 쳐 농민회원들이 조를 짜서 돌아가며 지키는 것은 가을이며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투쟁 모습이다.

처음에는 결의높게 시작됐는데 며칠 지나자 면별로 서로 ‘왜 제때 안 바꿔주고 늦게 나오냐’ ‘왜 청소도 안 해놓고 가냐’며 남 탓을 하고 불평을 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마을에 들어가 농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농민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마을별로 하루씩 주민들이 다 나와서 같이 지키자.” 농민회 활동가끼리 하느라 재미없던 농성이 어느 새 마을잔치가 되어 처음에는 닭을 잡다 나중에는 마을별로 경쟁하듯 돼지까지 잡았다고 그는 전했다.

‘현장과 실천 중심으로 중앙부터 솔선수범하자’는 기풍은 얼마 전 한미FTA 반대 국회 기자회견에서 전농 간부들이 몸 사리지 않고 투쟁하다 이광석 의장까지 ‘닭장차’에 태워져 연행당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또 그는 “임원진이 전국 시·군 농민회의 40%를 돌아본 순회방문 때는 의장님이 직접 운전을 하며 찾아가기도 했다”며 “남은 기간 동안 투쟁으로 바쁘겠지만 못 가본 시·군을 더 가봐야 겠다”고 말했다.

중앙에서의 이런 변화와 함께 농촌 현장에서는 농민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농민총회 개최와 마을별 순회좌담회가 최근 불이 붙고 있다. 10월 6일에는 바쁜 농번기에도 2만여명의 농민이 서울 여의도에 모여 ‘농산물 가격 보장’과 ‘한미FTA 비준 반대’를 주장하며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동지하자는 데 내치는 것이 무슨 진보인가”

지난 25일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을 비롯한 광범위한 진보세력과의 통합이 부결된 것을 두고 위 총장은 “통합에 대한 진보의 관점은 ‘동지를 얻겠다’는 것이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중앙 간부로 올라온다고 했을 때 울며불며 말리던 동생이 있다. 전에는 군 농민회 사무국장으로, 지금은 당 지역위 사무국장으로 묵묵히 헌신하는 참일꾼이다. 이 동생이 올해 농사를 다 짓고 내년 봄의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 여름에 일을 시작하는 종목으로 작물도 바꿨다. 그런데 사실 이 동생이 농민회 하기 전까지는 보수적인 사고로 여당 지지하며 사사건건 농민회 반대하던 친구였다.”

위 총장은 “한번 과오가 있다고 함께 하자는 사람을 배척한다면 진보가 아니다”라며 “자유주의든, 중도든, 그 할애비라도 동지로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 진짜 진보”라고 강조했다.

위 총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진보정당의 ‘농촌 성적표’에 대해 낙관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민노당’이라고 하지만 농민들끼리는 ‘농민당’이라고 한다”며 “강기갑 의원뿐만 아니라 전남북과 경남 등에서 배출된 농민 지방의원들에 대해 기대와 지지가 뜨겁다”고 전했다. ‘영남은 1번, 호남은 2번’이라거나 ‘농촌표는 여당표’라는 공식도 “이미 옛말이 됐다”고 말한 그는 “전농이 2003년 민노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결정한 이후 기울인 10년의 노력이 내년 총선에서 결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위 총장을 만난 곳은 한미FTA 비준 반대를 주장하며 36개 농민단체가 함께 하는 여의도 국민은행 앞 농성장이었다. 이미 한미FTA 반대 투쟁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 그에게 “정부여당이 이번만큼은 통과시키겠다고 나오는데 비준을 막아낼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한 번도 한미FTA가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거침없이 말한 그는 “끝끝내 정권이 통과시킨다면 더 큰 저항을 불러 정권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두환 전농 사무총장

위두환 사무총장이 36개 농민단체가 함께하는 한미FTA 비준 반대 여의도 농성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고희철 기자 khc@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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