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국민 눈높이 아니라 땀흘려 일하는 사람의 눈높이”

[인터뷰]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2-06-19 19:51:07 l 수정 2012-06-20 00:15:36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과의 인터뷰는 애초 약속이 잡힌 지 열흘이 지나 이뤄졌다. 그만큼 요즘 ‘당 문제’를 이야기하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오는 29일까지 치러지는 통합진보당 지도부 선거에 전농 출신인 강기갑, 강병기 후보가 나란히 입후보하면서 부담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19일 만난 이광석 의장은 종북 논란부터 당 쇄신의 방향에 대해 비교적 뚜렷하고 일관된 입장을 밝혔다. 다만 당직 선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의장은 전농이 배타적 지지를 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당에 더 많이 개입하고 역할해서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농민은 논밭을 탓하지 않는다. 홍수 태풍으로 논밭 망가져 속이 뒤집어져도 논밭 버리는 농민 없다. 빨리 고쳐서 다른 작물이라도 심는 것이 농심이다.”

당 쇄신과 관련, 이 의장은 “쇄신을 몰려가면서 쫓기듯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릇된 관행이나 부족한 정치력은 내부에서 토론하고 외부의 조언도 구해야 하지만, 당내 갈등을 그대로 언론에 드러내거나 외부의 입김이 당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밝혔다.

아울러 이 의장은 보수진영의 대선 기획인 공안프레임에 맞서 진보세력이 함께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의 역사는 형제간끼리 싸워도 탄압하면 같이 달려들어 싸운 역사”라며 “이런 것이 진정 당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그렇지 않은 이들의 말은 다 궤변”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종북 논란으로 민주노총의 통일교재까지 문제가 됐다. 전농은 대북 지원협력사업을 수년째 해왔다. 계속 할 것인가?

=왜 지금 다시 종북인가? 남북 상생과 교류협력을 국민 모두 기대하고 있는데 이를 흩트리고 정적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농은 지역별로 공동경작을 하거나 쌀을 모아 보내는 통일쌀사업을 올해도 한다. 한창 통일쌀 모내기를 하고 있다. 가을에 이고지고라도 임진각 가서 북녘 동포를 만나 통일쌀을 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애국가 안 부르면 종북세력이라고 한다. 민주노총, 전농에서도 애국가 안 부르지 않나. 

=국가행사에서 애국가 부르는 게 무슨 문제겠나. 그러나 가족행사나 장례 치르면서도 애국가 불러야 하나. 조금 전에 농민 행사하는데도 애국가 얘기 나왔다. 농민 행사에서는 농민가 부르면 된다. 이런 논란 자체가 다 마녀사냥이다.

-종북 논란이 보수진영의 대선 기획이고, 이미 대선을 향한 쟁투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에서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의 성과와 희망을 절망으로 여기는 이들과 진보당 내부를 흔들려는 의도가 맞물려 지금의 상황이 됐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보수진영의 대선기획과 공안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공안프레임에 맞서 당이, 진보세력 모두가 끌어안고 싸워야 한다. 진보의 역사는 형제간끼리 싸워도 탄압하면 같이 달려들어 싸운 역사다. 그런 것이 진정 당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그런 모습 아닌 말은 다 궤변이다.

-중요한 당직 선거 치른다. 전농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03년 전농이 농민 정치세력화 결의하고 10년째다. 그 전에는 놉(머슴) 얻어서 ‘정치농사’ 지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직접 짓자고 당시 결심했다. 법과 제도 안 바꾸고 거리투쟁만 하니 과실은 다른 세력이 가져갔다.
진보정당이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된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결국 이 길로 가야 한다. 진보당을 고쳐나가고 보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당에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당에 더 많이 개입하고 지원하며 책임지겠다. 
농민은 논밭을 탓하지 않는다. 홍수와 태풍으로 논밭이 망가져 속이 뒤집어져도 논밭 버리는 농민 없다. 빨리 고쳐서 다른 작물이라도 심는 것이 농심이다. 이것이 당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본분이고 자세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빨리 당이 정비되도록 전농은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쇄신의 방향으로 ‘국민의 눈높이’가 기준처럼 얘기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진보당의 정치력 부재했고 어설펐다. 문제가 많았다. 그런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 눈높이’는 맘에 들지 않는다. 국민의 눈높이가 언제 민중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용했나.
농민이 국민이었나. ‘국민’에 노동자, 농민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국민이라면 국가권력이 목소리를 들어줘야 하는데, FTA에서 농민 요구는 찾을 길이 없고 그냥 강행, 강행이었다. 
노동자 농민도 국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진보세력이 얘기해온 것이다. 10대 90이니 1%대 99% 하는 인식이 다 진보운동의 소중한 성과다.

-당 쇄신을 두고 노동자, 농민 지반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낡은 것과 결별하고 현대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혼재한다. 당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제3당이 되고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는 명제가 있고 정체성이 좀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논의를 차분하게 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매를 들고 죽인다고 사퇴시킨다고 하는데, 상황에 밀려가듯 쇄신한다고 하면 토론도 더 안 된다.
통진당 자원들 출중한 분들이다. 현장에서 10년, 20년씩 어렵게 지켜내고 세우느라고 고생한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무 자르듯 잘라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치유하고 화합하고 토론하면 지혜가 생긴다.

-당내의 갈등 해결과 외부의 조언 수렴을 어떻게 융합할지도 고민거리다.

=논의의 시기나 순서, 의제를 잘 정해야 한다. 지금은 잘못된 관습이나 행태를 내부에서 차분하게 이야기할 때다. 외부의 조언도 필요하지만 내부 갈등은 먼저 안에서 풀어야 한다. 내부 송사를 바깥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변의 요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부에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오늘 한중FTA저지 비대위 꾸렸다. 타격은 엄청날 것으로 보이는데 투쟁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진보진영의 집결이 긴요하다.

=맞다. 아프면 같이 아프게 된다. 이걸 정치권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제 대중투쟁으로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7월 3일 시청광장 3만명 모이는 대회를 상정하고, 3~5일에는 한중FTA 2차 협상 저지하러 제주도에 간다. 삶의 현장에서, 고단하지만 몸으로 돌파하자는 심정이다.

-이번 대선은 국가정책이 달려 있어 농민들에게도 중요하다. 정권교체 어둡게 전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안타깝다. 그러나 승리한다고 믿는다. 도저히 새누리당에 줄 수 없다. 상상하기 힘들다. 이겨내야 한다. 이번 선거 지면 역사에 죄인이 되고 죽을 때까지 진보운동에 주홍글씨가 될 것이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