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돌라를 타고 올랐다. 

향적봉까지 함께 간 일행들과 헤어져 남덕유 거쳐 육십령까지 먼 길을 나선 시각은 오후 1시경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하룻 저녁을 묵을 계획이다. 

총 산행거리 24km가량. 

꽃도 보고 새도 보고 풍경도 담고 할 욕심으로 챙겨 넣은 렌즈가 3개.

300mm 망원으로 인한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대신 싸드락싸드락 천천히 가기로 작정한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컵라면 하나 사 묵고 자유시간 세 개 사 넣었다. 

등산로 주변의 숱한 들꽃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기대했던 두견이 소리는 들리지 않고 휘파람새 소리만 낭자하다. 

 

 

낮게 드리운 구름 밑으로 보이는 남덕유와 장수덕유가 아스라하다. 

삿갓골재 대피소는 어드메쯤일까?

 

 

6시 무룡산 정상. 

향적봉 8.4km, 대피소 2.1km 꽤 걸어왔고 얼마 안 남았다. 

 

 

 

 

등산로 양 옆으로 들꽃 정원이 펼쳐져 있다. 

남덕유는 구름 속에 숨어부렀다. 

7시경 작은 풍력발전기 열심히 돌아가는 삿갓골재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배가 몹시 고프나 저녁은 건너뛰기로 하고 땀에 젖은 옷 갈아입고 일찍 누웠다. 

 

 

 

일출이라도 보려는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며 일찍 나선다. 

대피소 직원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비어 가는 대피소에서 뒹굴거리다 라면하고 햇반 자유시간 네 개를 샀다. 

끼니 때우는 사이 일순 안개가 걷힌다. 

멀리 천왕봉과 지리산의 주릉이 한눈에 잡힌다. 

아침 6시. 

 

 

 

햇빛으로 샤워하는 기분, 시원하고 상쾌하다. 

 

 

저 너머 향적봉이 듬직하다. 

 

 

 

해가 꽤 솟아부렀다. 일출이 좋았겠다. 

멀리 솟은 봉우리는 가야산쯤으로 보인다. 

 

 

 

삿갓봉. 남덕유와 장수덕유가 손에 잡힐 듯하다. 

저 멀리 천왕봉.

7시

 

 

50mm 렌즈를 달았다. 

반야봉에서 천왕봉, 지리주릉이 장엄하다. 

 

 

 

대피소 옆자리에서 주무신 분, 대간 종주 중이라 하신다. 

38일째라 했던가? 목적지 천왕봉을 배경으로 섰다. 

지리산까지 열흘쯤 잡았었는데 종주를 마쳤겠다. 

사진 보내줘야겠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브로켄 현상과 만났다. 

둥근 무지개, 그 안에 내가 있다.

 

 

남덕유가 목전이다. 

남덕유가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들리지 않던 두견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다. 

망원 달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소리만 들릴 뿐 새를 볼 수가 없다. 

바로 눈앞의 키 낮은 나무에서 울고 있음에도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이번 산행 내내 소리만 들었을 뿐 휘파람새도 두견이도 보지 못하였다. 

 

 

남덕유에 섰다. 

지금껏 지나온 중에 가장 조망이 좋다. 향적봉보다 낫다. 

남덕유에서 바라본 장수덕유

 

장수덕유는 서봉이라고도 한다. 

남덕유 서쪽 봉우리라는 것이겠다. 

한데 함양군에서 세운 서봉이라는 표지석이 땅바닥에 패대기 쳐진 채 뒹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장수 사람들의 소행인 듯.. ㅎㅎ

 

9시

 

 

저기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이고 나머지는 구름 속에 들었다. 

 

 

지나온 덕유주릉. 

 

 

 

 

장수덕유를 지나 육십령으로 가는 능선에 섰다. 

저 멀리산을 깎아내 맨 살이 보이는 곳이 육십령이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산행 종료 지점으로 육십령을 선택한 것은 국립공원에서 만든 국립공원 산행정보라는 앱의 안내에 따른 것이다. 

거기에는 육십령~남덕유산 구간을 거리 3.67km에 1시간 48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영각사로 내려가느니 이게 낫겠다 싶었으나 자세히 들여아보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야들은 국립공원으로 관리하는 울타리 안의 거리만을 계산한 듯하다. 

아무튼 많이 잘못되었다. 실제로는 8km가 넘는 거리. 

자유시간 두 개는 이미 묵어부렀고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해찰하면서 걸어도 2시간 반이면 넉넉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그에 맞춰 물과 식량을 소비한 까닭이다. 

다행인 것은 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할미봉을 오르면서 탈진할 뻔하였다. 

급경사에 밧줄과 사다리로 이어지는 난코스. 

할미봉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자유시간, 물 다 묵어버리고 출발하였으나 허기와 갈증을 달래기는 어려웠다. 

몇 걸음 떼고 쉬다를 반복하면서 간신히 올랐다. 

뜨거운 날씨 무거운 짐이 사람 잡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턱 없이 늘어나버린 산행거리가 문제다. 

남덕유에서 할미봉까지 4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그래도 할미봉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나니 다시 원기가 충전된다. 

그 힘으로 육십령까지의 마지막 구간을 내려왔다.  

 

 

육십령 휴게소

2시 반

삿갓골재 대피소를 출발하여 총 8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새 본다 꽃 본다 해찰도 많이 했지만 되게 오래 걸렸다. 

나중에는 예상치 못한 거리를 축내느라 지쳐버린 탓이 크다. 

깡맥주로 갈증을 해소하였다. 

미리 가져다 놓은 차를 끌고 장계로 내려와 내장국밥에 막걸리 한통 먹는 것으로 덕유산 종주를 마무리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