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 농민 정치세력화 10년의 평가

 

2003년 11월 전농은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여 ‘정치방침’을 결정했다.
전농 정치방침은 두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농민 정치세력화!”

농업농민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농민이 정치와 권력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진보정당(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농민 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실현된다. 대중적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함께 결정했다.

 

2003년 전농 임시대대 결정사항


 1. 농민의 정치세력화는 급진전되는 정세의 변화와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농민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농민들이 정치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즉 농민의 손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정권을 세우자는 것이다.

 2. 전농은 농업농민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우리 사회의 자주, 민주, 통일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되는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과 이에 따른 활동이 보수정권을 바꾸고 우리 정부를 세우는 한 방편임을 결의한다.

 3. 전농은 민주노동당과의 합의를 기초로 해서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의 현실로 인정하고 농민 정치세력화를 하는 데 있어 민주노동당과 함께 할 것을 결의한다.

 4. 이 결정은 시군 농민회의 지역현실과 조건과 역량을 감안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다. 

 

이에 따라 전농, 전여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당원 입당사업과 농촌지역 당 조직 건설 운동이 전개되어 민주노동당의 지역기반과 계급기반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듬해 2004년 총선에서 강기갑, 현애자 두 의원이 원내로 진출했으며, 2006년 지방 선거에는 총 101명의 농민후보가 출마하여 11명이 당선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전농 정치세력화 10년, 어떤 일이 있었으며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정치세력화 10년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아 본 평가서를 제출한다.

 

 

▢ 2003년 정치방침과 그 이후

 

1. 전농 정치방침 결정의 배경

 

전농 정치방침은 1990년 전농 창립 이전, 이후 수십년에 걸친 농민 대중투쟁 총화의 산물이다. 무릇 대중투쟁은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발전한다. 
농민의 사소한 생존권적 요구조차 정치적 영역에서 판가름 나고, 농민들의 투쟁이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과 정부의 개방농정에 대한 저항으로 집중되는 조건에서 농민 대중투쟁은 자연스레 국회와 정부, 나아가 미국을 겨냥하게 되었다. 
농민 대중투쟁은 최종 정점에서 정치권을 향해 압박, 견인을 시도하거나 때로는 의지하고 호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전농의 투쟁이 “이제 농민이 직접 정치와 권력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방침과 결의를 내오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운동의 합법칙적 발전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도무지 믿을 수 없을뿐더러 틈만 나면 농민들의 뒷통수를 노리는 보수정치세력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고대하는 것 역시 막을 수 없는 대중운동의 흐름이다. 
전농 정치방침은 전농 대중투쟁에 대한 총화와 새로운 활로에 대한 모색과 토론에 따른 것이다.

 

2. 전농 정치방침의 의미

 

전농 강령의 뼈대가 되는 자주, 민주, 통일 이념은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가장 과학적인 운동 원리이다. 농민운동의 궁극적 승리는 사회변혁운동의 완수를 통해 실현된다.
농민 정치세력화는 민중 정치세력화와 다르지 않고 농민권력은 곧 민중권력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보수양당 체제를 허물고 민중집권을 실현할 대중적 진보정당을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전체 민중운동은 물론 농민운동의 중요한 전략적 과제가 된다.


2003년 전농 정치방침은 전조직적 논쟁과 토론을 통해 이를 합의하고 확인한 것이다.
이는 요구와 청원을 넘어 ‘집권’을 목표로 하는 농민운동의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의미하며,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농민운동의 성격과 역할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새로운 단계로의 질적 도약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때로는 극심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고난과 영광의 길이다.
지난 10년간의 시험과 도전, 환희와 좌절의 순간들은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어 집권을 향해 나아가는 농민 정치세력화 투쟁의 역사로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3. 전농 정치방침의 핵심 내용 - 정치세력화와 배타적 지지

 

정치세력화와 배타적지지, 이 둘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배타적 지지 없는 정치세력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배타적 지지 방침 없는 정치세력화는 개인 혹은 특정 그룹의 정치적 지향이나 지역의 여건, 편차 등에 따른 다양한 정치적 판단을 허용하게 되어 결국 조직을 분열, 약화시키게 된다.
전농 정치방침이 농업농민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우리 사회 자주, 민주, 통일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며, 최종적으로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에 근거하여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삼고 그 대의에 어긋남 없이 견결히 투쟁하며 노동자, 농민을 확고한 기반으로 하는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의 문제를 놓고 이에 대한 검토, 발전 가능성, 정치적 합의를 종합적으로 거쳐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결정한 것이다.

 

4. 전농 정치방침의 성과와 교훈

 

 1)농민운동의 단결과 농민 정치세력화에 기여하였다.

 

정치방침이 있기 이전부터 회원들의 정치 무대로의 진출은 있어왔다. 하지만 조직적 성과로 남지 못하고 제도 정치권에 흡수되어 변질되거나 조직과 대립하여 적대시되는 사례가 빈발했다. 또한 지역과 개인의 편차에 따라 지향도 다양하여 조직 내에 갈등과 분란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전농 정치방침 결정으로 근본적 해결이 가능해졌다.
아직까지 불완전하고 예외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지만 전농의 조직 방침과 당의 방침에 따라 전농 정치일꾼들의 활동이 일관되게 자리매김되고, 그 역량이 정치적, 조직적으로 축적되고 있으며 진보적 농민 정치일꾼에 대한 대중적 신망과 기대 또한 커지고 있다.

 

  2)활발한 대중투쟁과 조직강화에 기여하였다.

 

전북도연맹 밭직불제 쟁취투쟁의 사례, 광전연맹 벼 경영안정자금 쟁취 투쟁 사례 등은 농민회의 대중투쟁과 의원의 원내투쟁이 상호 결합하여 성공한 사례다. 지역 현장을 누비는 농민의원단의 헌신과 활약은 농민 대중투쟁의 강력한 방조자이자 촉매제로 기능하고 있다.


농민회의 조직적 결의와 전농 정치방침에 입각한 선거투쟁은 농민회의 조직을 복구하고 활동력을 배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승리한 지역의 경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넘쳐나게 하고, 낙선한 지역의 경우에도 조직적 선거활동의 경험은 농민회의 단결과 조직정비에 기여했다.


강기갑 전 의원의 활약은 어떠했는가? 강기갑 전 의원의 안타까운 행보와 이에 대한 전농의 지도력 부재에 대해서는 엄정한 평가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강기갑 전 의원을 통해 발현되었던 전농 정치방침의 위력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강기갑 전 의원의 사례는 조직에 길을 묻고 조직방침에 끝까지 의거하는 것이 조직은 물론 개인의 정치생명까지도 좌우하게 된다는 교훈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3)진보정당 운동의 계급기반과 지역토대 강화에 기여하였다.

 

전농 정치방침 결정으로 진보정당 운동은 비로소 노동자 뿐만 아니라 농민들 속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되었으며 농촌지역 당조직 건설로 당의 지역기반을 확고히 하여 전국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농민회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진보정당 지지율 차이는 전농 정치방침이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4) 대중투쟁과 의회투쟁에 대한 올바른 관점정립이 필요하다.

 

진보정당 운동은 대중조직과 대중투쟁의 엄호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한다.
의회투쟁 또한 대중투쟁의 든든한 뒷받침 속에서 비로소 온전히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대중조직과 당조직, 대중투쟁과 의회투쟁의 상호관계에 대한 올바른 관점정립이 매우 중요하다.
전농 정치방침이 자칫 합법적 의회투쟁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의존을 불러오거나 농민회 조직강화와 대중투쟁을 소홀히 하는 것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5) 내부의 이견을 잘 풀어내지 못했다.

 

2003년 정치방침 결정 당시와 상당한 차이가 있겠지만 정치방침에 대한 조직 내의 이견은 여전하다. 최근 통합진보당 관련하여 발생한 이견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견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토론과 평가, 상호작용이 부족하였다.

 

 

▢ 2012년 정치방침과 그 이후

 

 

1. 2012년 정치방침

 

2011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진보대통합’ 논의가 시작되었고 전농은 이에 적극 참여했다. 1년여에 걸친 통합 논의 결과 우여곡절 끝에 통합진보당이 창당되었고 전농은 2012년 14기 1차년도 대의원대회에서 2003년 정치방침을 계승하여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결정문의 핵심 내용은 “통합진보당이 농민 정치세력화와 진보적 정권교체를 주도하고 실현할 대중적 진보정당임을 확인하고 조직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2.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쟁점

 

  1) 진보대통합과 통합진보당 창당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은 진보대통합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통합의 절차와 방식, 통합의 대상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 논쟁은 전농으로 고스란히 옮겨 붙었다.


진보대통합의 과제는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핵심 화두인 ‘단결’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강대한 지배세력에 맞선 민중승리의 요체는 미국과 수구보수 세력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계급, 계층의 단결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이는 우리 운동의 전략적 과제다.
이런 맥락에서 진보대통합의 대상에 국민참여당이 포함된 것은 중간층을 진보민중 진영으로 끌어당기고 수도권을 돌파하여 진보민중 진영이 수권세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공정이었다.
총선 결과 통합진보당이 원내 제3당으로 도약한 것은 이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이후 벌어진 당 사태는 별도로 평가돼야 한다.


진보대통합의 과제는 진보민중 세력의 집권을 향한 노정에서 언제고 다시 등장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는 통합과정에서 조직 내 논의와 이견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못한 채 상층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문제제기는 언제 어느 때고 항상 있을 수 있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논의가 충분치 못했다는 것을 회의 결정사항, 조직의 의결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실제 진행상황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동반되어야 하다.

 

  2)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

 

총선 이후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졌다.
진보민중 진영은 물론 온 나라 전체가 통합진보당 사태로 발칵 뒤집혔으며,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과 해결방도를 놓고 각계각층의 입장이 격돌했다.
이 역시 전농으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당시 수구 언론은 원내 제3당으로 급부상한 통합진보당에 대해 종북 소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여기에 조준호 진상조사 결과 발표를 발화점으로 진보정당 말살공작과 당내 갈등이 결합하여 폭발적 양상으로 발전되었다.
미국의 한반도 지배전략은 정치 영역에서 보수양당 체제를 통한 분할 통치에 있다. 군소정당이 아닌 원내 3당으로의 통합진보당의 도약은 보수양당 체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되는 사건으로 미국을 위시한 국내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 사태의 본질은 미국의 지배전략, 수구 보수 세력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전략 아래 진행된 진보정당 말살, 야권연대 교란 책동이었다.


통합진보당의 당내 투쟁에서 당을 버리고 탈당한 세력이 당의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을 근본에서 훼손(새로나기 보고서)하려 하고 나아가 종북문제를 제기했던 사실은 당시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맞선 통합진보당 사수 투쟁은 진보적 정권교체와 민중 승리를 위한 길에서 미국, 국내 수구보수 세력과의 피할 수 없는 결사전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전농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입장을 유지, 고수함으로서 10년을 이어온 조직 방침과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을 지켜냈으며 통합진보당 사수 투쟁에 복무하였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후 민주노총 상층 인사들의 대선 시기 행보와 현재 민주노총이 처한 위기 상황에 주목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3) 대선투쟁을 둘러싼 논쟁

 

‘진보민중 진영(통합진보당) 주도의 야권연대를 통한 대선승리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달성한다는 것이 전농의 대선 방침이었다.
그러나 총선 이후 터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전농 대선방침과 진보적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대선투쟁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빈사상태에 빠진 통합진보당과 현저히 위축되고 약화된 진보민중 진영의 대중투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이는 대선승리를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야권연대의 상과 동력에 대한 입장 차이를 불러왔고 급기야 조직 일각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조건없는 지지를 선언하기까지 하였다.
금번 대선은 정권교체에 대한 강력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진보민중 진영의 단결과 광범한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과 투쟁에 기반하지 않은 민중이 배제된 형식적 야권연대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안겨주었다.

 

  4)통합진보당의 대선투쟁

 

모든 언론의 여론조작과 철저한 무시, 검경의 탄압책동, 당 내부의 분열 등 고립무원의 처지에 몰린 통합진보당이 하나하나 상황을 정리해가며 정상화하는 과정은 당 사태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발생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었다.
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고 대선에 나섬으로서 모진 탄압과 파괴책동에도 불구하고 당이 살아남았음을 내외에 과시함은 물론 대통령 선거전에서 민중들의 참담한 삶의 현실과 우리 사회 자주, 민주, 통일의 과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TV 토론에서의 활약에 이은 정권교체와 유신부활 저지를 위한 조건없는 사퇴는 민중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안겨주었으며, 화순과 여수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는 소중한 성과를 거두었다.
통합진보당의 대선투쟁은 모진 탄압과 혼돈의 잿더미 속에서 진보정당 운동이 새롭게 부활하는 결정적 국면을 열었다.

 

3. 전농 정치방침에 반하는 두 가지 주장

 

  1) “정치세력화에는 동의하지만 배타적 지지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농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어 ‘집권’하자는 것, 대중적 진보정당 운동은 이를 실현할 유력한 방안이라는 것이 2003년 전농 정치방침의 주요 내용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의 노동자, 농민 중심성을 확고히 하고 보수야당을 대체하는 대안의 수권정당으로 키워내는 것이 농민 정치세력화의 실질적 내용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확고히 세우고 농민운동의 정치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보수야당 혹은 무소속으로 정치판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개인의 정치적 진출과 농민 정치세력화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이 주장은 조직과 운동의 발전이 아닌 개인 출세의 도구로 전농 정치방침을 전락시키게 되며 사실상 정치방침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된다.

 

  2)“정치는 그만 두고 대중조직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자”

 

이 주장은 보수정치판에 대한 농민들의 혐오감에 편승하고 있다.
농민들의 정치혐오를 자극하고 조장하는 다양한 원인과 이유가 있겠지만 민중의 정치적 각성과 단결을 원치 않는 지배세력 통치수법의 하나다.
이러한 경향은 농민 정치세력화를 방해하여 농민들이 지속적으로 보수정치권에 의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농민회가 대중투쟁을 해야지” “정치방침이 농민회를 어렵게 하고 있다” “수준과 준비정도에 맞는 정치세력화”등의 주장을 앞세워 전농 정치방침을 후퇴시키거나 폐기하려 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는 농민이 스스로 정치와 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농민운동 개량화의 한 변종이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정치세력화 투쟁의 성과와 의미를 통째로 부정하는 백기투항이며 농민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대중투쟁을 중시하고 농민회를 확대, 강화하자는 현장의 건강한 문제의식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향후 전망과 과제

 

전농 정치방침은 농민운동의 성장과 발전에 따른 산물이다.
또한 농민운동은 정치세력화 방침을 통하여 스스로 정치와 권력의 주인으로 되는 ‘집권’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민중집권을 목표로 하는 대중적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발전하였고 19대 총선에서 원내 제3당으로 도약하여 보수양당 체제를 근본에서 위협하며 진보정당이 군소정당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안의 수권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승리의 환호도 잠시 통합진보당은 미국과 수구보수 세력의 맹렬한 탄압과 격렬한 당내 투쟁이라는 내우외환 속에서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대선 투쟁을 경과하면서 미국과 수구보수 세력의 진보정당 말살 책동을 떨치고 당조직을 복원하고 지지세력을 재규합하며 당 정상화의 토대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대선전략은 성공하지 못하여 이후 정치일정과 차기 대선으로 과제를 이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가 몰고 온 파장과 후과는 매우 크고 심각하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고는 하나 당은 여전히 시련의 시기를 경과하고 있으며 당에 대한 탄압은 새로운 차원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껏 당을 성장, 강화시켜온 근본 토대가 되어온 당과 대중조직과의 배타적 지지관계가 허물어져 이제는 오직 전농만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농은 정치방침 10년의 평가를 전조직적으로 수행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0년의 평가 토론을 통해 전농 정치방침이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올바른 노선에 입각해 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또한 농민 정치세력화 실현을 위한 현장조직의 투쟁과 경험을 통해 전농 정치방침의 생활력과 정당성을 입증하여 보다 높은 수준에서 전농 정치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방침들을 내올 수 있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에 집중되는 지배세력의 탄압책동은 진보정당 운동이 지배체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될만큼 성장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진보정당 운동이 처한 위기는 일시적이며 전체 민중의 정치적 진출과 단결의 기세를 결코 꺾지 못할 것이다.

 

민중이 승리한다. 민중승리의 그날을 기약하며 현장 속으로, 농민대중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자.
전농 정치방침을 더욱 확고히 유지, 고수하고 2014년, 2016년, 2017년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를 주동적으로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