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낫) 2008-09-24 08:02 작성

농민대회를 마친 19일 밤 탈출을 공모한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모였습니다.
추리다 만 땅콩 대충 담아 창고에 넣고, 전조장 땅콩은 걷어채 모아놓기만 하고 개폐기 내리고, 차 적재함에 남아 있는 땅콩 비에 젖을까 대문간에 빠꾸로 대놓고...
흥덕으로 나가 홍어에 막걸리 한잔 하며 내일 아침 시작될 제주도 일정에 대해 의견을 교환합니다.
결론은.. 제주도 동지들의 처분대로.. 그네들이 하자는대로..
내일 만날 제주도 동지들은 2년전 제주도 원정투쟁에서부터 인연을 맺어 두었습니다.

각자의 인생살이로까지 이야기가 번져 술자리가 다소 길어져서인지 해장이 다소 묵지근합니다.
찍어놓은 어제 대회사진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몇군데 올리고 나니 벌써 기차시간이 임박해 있습니다.
부리나케 옷 챙기고 지갑 챙겨 정읍으로 달려 기차에 오르니 오전 7시 40분.
그렇게 우리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기차에 타자 마자 속을 풀어야 한다며 홍규형이 깡맥주를 삽니다.

배에서 본 피곤한 외국인들

기차는 이내 목포에 당도하고 화장실 갈 여유도 없이 배에 오릅니다. 8시 40분.
아침으로 된장찌게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소주 두어병을 미리 사다 놓습니다. 밥을 먹자는 건지, 술을 먹자는 건지..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니 영 맨숭맨숭하고 할 말도 없고.
다시 나가 생맥주 서너잔씩 먹고 깡맥주 댓개 사들고 갑판으로 나갑니다.
영태가 두어번 더 편의점을 왕복하니 배가 곧 부두에 당도한다는 방송소리가 들리고 배안의 승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배에서 내려 버스터미널로 가 제주 동지들로부터 받은 지령대로 '창천'행 표를 사 차에 몸을 부리니 술을 먹을 수 없는 버스 속인지라 이내 잠에 빠져듭니다.
얼마나 잤는지 내리라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마중나온 제주도 동지 차에까지 올라와 "이럴줄 알았다"며 우리를 깨웁니다.
내곤해진 몸을 끌고 열리(예래) 바닷가 용천수 솟아나는 노천 목욕탕으로 가 몸을 담그니 시원하기 그지 없는 용천수에 몸도 마음도 개운해집니다.

한치물회, 자리물회, 갈치국, 소라물회 추가

이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자그마한 포구에 자리잡은 식당. 각종 물회와 성게국, 갈치국을 시켜놓으니 한상 뻑쩍지근합니다. 이 상차림은 제주도와 얽힌 홍규형의 한을 푸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 5년전 제주도연맹 초대로 선전선동 교육을 하러 온 홍규형, 교육 뒷풀이로 육지에서 맛볼 수 없는 제주만의 멋진 안주를 은근히 기대하였으나 "이 집이 맛있다"며 안내받은 곳은 족발집이었답니다. 
그날 이후 홍규형은 '내 다시 제주에 가면 반드시 자리물회를 먹고야 말리라'고 다짐해왔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한라산 하얀소주를 여러병 비우고서야 자리를 파하고 논짓물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할 준비를 해놓고 이제 여러명으로 불어난 제주도 동지들과 함께 근처에 하나뿐인 횟집으로 들어갑니다.
가격조차 적혀있지 않은 '다금발이'는 열외로 하고.. 각종 돔이야 어차피 광어 따위와 별반 다를것이 있겠느냐며 고등어회를 시킵니다. 약간 늘척지근하게 입안에 달라붙는 맛이 괜찮습니다.
얼마나 먹었는지.. 먼저 나와 텐트 옆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횟집에서 나온 술꾼들 이제 맥주를 사들고 옆에 와 술판을 벌이며 자꾸 흔들어 깨웁니다.
'일어나면 사망'이라는 생각으로 '나 죽었소' 하고 버티다 살풋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술자리는 이미 파하였고 같이 누워있던 영태와 제주도 동지 황급히 텐트로 몸을 피하는데 빗방울이 제법 굵어집니다.

아침에 본 야영자리. 밤사이 비가 많이 내렸다.


하! 그런데 텐트에 비가 새기 시작합니다. 방수는 커녕 무슨 흡착포라도 되는 양 텐트는 거리낌없이 빗물을 빨아들여 안에다 쏟아냅니다. "이거이 무슨 텐트냐" "대피소로 가자" 설왕설래하고 있는 사이 집으로 돌아가던 또다른 제주도 동지 다시 돌아와 집으로 가자 합니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겠지요.
술꾼들은 기어이 문 연 가게를 찾아 술을 사들고 집으로 갑니다.
약한 술꾼인 저는 집에 가자 마자 또다시 뻗어서 잠을 청합니다.
이렇게 술과 맞짱떠본 고단한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날씨는 험악해져 비바람에 천둥 번개가 장난이 아닙니다.
이날 밤 우리 앞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기대하시라 체류기 둘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