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화 개방? 현상유지(standing still)가 최선이다.

지금은 식량주권의 위기극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이다.

 

2013년 3월 7일 민주통합당 정책위 토론회에 보낸 토론문

 


 

오늘의 토론주제 [2015년 쌀 관세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2014년 이후 쌀 관세화개방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10년간의 관세화 유예기간이 만료됨과 동시에 자동관세화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과 같은 토론자리 자체가 무색해진다.

토론회의 제목을 정하는 것부터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2014년 이후의 상황에 대한 협정문의 해석에서부터 입장차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 정부를 필두로 쌀 조기관세화를 주창하던 사람들의 주요 논리가 “2015년이면 한국은 자동적으로 쌀시장을 관세화 개방해야 한다는 자동관세화론에 기반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자동관세화라는 전제는 잘못되었다.


2015년 자동 관세화의 근거로 내세우는 게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문이다. 그런데 UR농업협정문에 따른 각 국가들의 의무이행기간은 선진국의 경우 2000, 개발도상국은 2004년에 이미 종료되었다.

하지만 UR의 후속협상인 DDA 협상이 아직도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진국은 2000년의 상태에, 개발도상국은 2004년의 상태에 머물고 있으면서 그 어떤 추가적인 개방조치나 의무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소위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하며 세계 쌀 시장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DDA 협상이 타결되기 전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추가적인 개방조치나 의무이행 없이 2004년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당연한 권리다.

2004년 쌀 재협상 역시 2014년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명시적 합의내용이 없다.

 

관세화개방이 되어도 의무도입량은 그대로 안고 가게 된다.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다수 농민과 도시민들은 관세화개방이 되면 의무도입량은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관계를 교묘히 가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상식선에서 편리하게 사고하고 접근한 결과일 수도 있다. 완전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의무도입량을 부분적으로 확대하는 고육책이었는데 완전개방으로 전환함에도 불구하고 의무도입량을 안고 간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관세화 개방이냐, 현행 유지냐.


남은 문제는 관세화 개방이냐, 현행과 같은 부분개방의 유지냐 하는 것이다.

관세화 개방은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세계 식량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급기반 자체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식량자급률이 급격히 추락하여 세계 최하위권을 맴도는 조건에서 주식인 쌀마저 무너진다면 이는 농업의 위기를 넘어 국가적 위기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임을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관세화 개방이 의무도입량을 털고 가는 것도 아니며, 주요 쌀 수출국인 미국과의 FTA가 이미 발효되었고 중국과의 FTA가 협상 중에 있는 복잡다단한 현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상유지가 최선이다.


때문에 부분개방 상태(관세화 유예)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세계 식량위기에 대처하고,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국내 기반을 유지하는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국민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여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에 해당한다. 특히나 구조적으로 만성적 공급부족 상태 때문에 세계적 식량위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중장기적인 식량위기 대비책을 마련하고 식량주권을 튼튼하게 세우는 방안을 수립하는데 모든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의 전략, 협상태도가 문제이다.


우리는 한때 UR이니, WTO, DDA니 하는 것들에 대해 신성불가침의 성역과도 같은 존재로 여긴 적이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 주로 정부 통상관료들이 그렇게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 국제협상이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와 생존전략이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현장일 뿐,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경우 장기표류하거나 유명무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누가 DDA 협상의 재개 및 타결 전망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한국농업이 처한 위기의 근원적 문제에서 미국 등 선진국의 개방압력에 맥없이 굴복한 역대 정부의 무분별한 농산물 시장 개방 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나간 날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가오는 새로운 국면을 잘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의 주식인 쌀조차 자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느니 하는 헛된 망상을 걷어내고 식량주권의 위기 극복과 식량문제 해결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는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3백만 농민 나아가 전체 국민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