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무등산에 올랐다. 어느새 한달이 되어간다. 

5월 17일 석가탄신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인지라 한적한 길을 찾아 원효사길을 골랐다. 

원효사에서 서석대에 이르는 4km 남짓한 길은 무등산 옛길이라 이름붙여져 잘 닦여 있다.   

계곡을 끼고 흐르는 호젓한 산길을 시간 반 가량 오르면 중봉 부근 능선에 이르러 무등산의 웅장한 산세가 드러나고 광주시내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무등산 높은 봉에 오월이 오오면~

  말하라 금남로여 여기 젊은 이 사람들 말하라 금남로여 너만은 알리라. 

  민중 위위해에 쓰러져간 그때 그자리 그 사람들. >


무등산에 올라 오월 광주를 생각한다. 

80년대의 '오월' 광주'에 담겨 있던 역동성과 비장함을 되새겨본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여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힘든 오월영령들의 사진집을 보며 느꼈던 비분강개, 피가 거꾸로 흐르는 분노에 피를 떨던 시절이다. 

역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학살자가 애국자가 되고 학살의 배후가 여전히 은인 행세를 하고 있다 한들 역사의 진실을 영영 감출 수는 없다. 

종편의 도발과 일베충들의 난동은 놈들의 초조함의 표현이다. 



그야말로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홀딱벗고 홀딱벗고' 검은등뻐꾸기 울어쌓고, 또 한켠에서는 벙어리뻐꾸기 젊잖게 '보보'거린다. 

새소리가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하지만 어차피 시간낭비일 뿐 보기 어려운 환경이다.

시간 반 가량이나 걸었을까? 능선이 가까왔다는 느낌이 들면서 가끔씩 시야도 터질 즈음 대형덤프 트럭이 오가는건지 중장비 소리 요란하다. 

호젓한 산행 분위기가 일시에 깨진다. 



산길은 얼마간 산간도로를 옆에 끼고 이어지다가 중봉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이르러 잠깐 합쳐졌다가 다시 갈라진다. 

중봉에는 무슨 방송국 중계소가 있는 모양이다. 



좀 더 오르니 중봉 너머로 광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무등산 높은 봉에 오월이 오오면~

  말하라 금남로여 여기 젊은 이 사람들 말하라 금남로여 너만은 알리라. 

  민중 위위해에 쓰러져간 그때 그자리 그 사람들. >

나도 모르게 그 옛날 부르던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무등산 정상이 보이고 이제 길은 서석대를 향해 가파르게 이어진다. 

마지막 고빗사위. 



서석대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본다.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으로 이루어졌다는 무등산 정상부는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이 제한된다. 

무등이라는 산이름과 천지인 세봉우리, 그리고 정상부를 점령하고 걸터앉아 있는 군사시설이 참으로 묘한 생각의 실타래로 얽힌다. 

군사시설이 철거되고 광주시민과 온 국민이 온전히 무등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장불재를 향해 내려선다. 

5.18 묘역 함동참배 시간에 맞추자니 갈 길이 다소 바빠진다. 





입석대를 지나 장불재를 거쳐 산간도로를 걸어 다시 중봉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른 산길을 다시 되짚어 원효사에 이른다. 

오르는데 두시간 반, 내리는데 두시간 총 4시간 반 가량을 무등산에 머물렀다. 

서둘러 5.18 망월묘역으로 향한다. 

신묘역에는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긴장감이 흐른다. 

이른바 '임을 위한 행진곡' 논쟁, 치졸한 반동이 부른 긴장감이다.



구묘역, 경향각지 각계각층 참배행렬이 줄을 잇고 참배객들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고요히 울려퍼진다. 


 

쥐새끼처럼 스며들어 광주에 잠입하였던 전두환 부부의 기념비는 산산조각난 채 구묘역 참배객들의 발 밑에서 의연히 그 이름을 빛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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