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안법이 무엇인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다. 

'농수산물의 원활한 유통과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생활의 안정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원활한 유통과 적정가격 유지, 이를 통한 민생안정..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생산자가 웃을 수 있는 가격이란 무엇인가? 

생산비가 보장되고 흘린 땀과 들인 공의 댓가가 보장되고 실현되는 가격이라야 한다. 

소비자가 웃을 수 있는 가격의 조건은 과도한 폭등락 없이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이 유지되는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에 더하여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 공급이 중요하다. 

현실은 어떠한가? 절대다수의 농민들은 생산비에도 못미치는 형편없는 가격으로 하여 적자영농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격폭락 사태라도 발생한다 치면 출하조차 하지 못하고 산지에서 폐기처분하는 일조차 비일비재하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이와는 반대로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 매년 반복되는 특정 농산물의 폭등, 품귀현상으로 하여 고통받는다. 

또한 시중에 범람하는 외국산 수입농산물의 안전성 문제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현실의 배경에는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유통'의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과도하고 복잡한 유통단계와 불합리한 제도, 악덕 유통상인들의 농간 등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울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며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농안법>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법 제정의 근본 취지는 사라져버린 것인가? 

농안법 제, 개정 과정을 되짚어보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권익은 사라진 채 농산물 시장에서의 독점적 이권 쟁탈을 둘러싼 유통상인 집단들간의 이해관계의 충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농산물 시장을 장악한 유통상인들은 자신의 이권 쟁탈을 위해 잘 조직되어 있고 집단행동에 능했으며, 정치권에 대한 로비와 압박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유도해왔다. 

1994년의 농안법 파동 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반면 생산자와 소비자는 상인들만큼 조직적이지 못했고 심지어 농안법이 무엇인지 어디서 어떤 음모가 진행되는지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할 뿐이다. 

결정적인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이다. 

정권이 바뀌고 농산물 폭등락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유통구조 혁신>, <농안법 개혁>를 부르짖지만 결국 근본문제에는 한발짝도 다가서지 못한 채 이빨 빠진 칼을 내려놓고 만다. 

그리고 뒷구멍으로는 각종 이권과 결탁하여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기득권 세력의 입지와 지위를 보장한다. 

지금 대통령 박근혜 역시 <유통 개혁>을 들고 나왔다. 역대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노라고 호언잠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구호만 요란할 뿐..

생산자 농민과 소비자 국민들은 여전히 구경꾼, 들러리일 뿐이다. 

박근혜표 유통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지금 국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민주당 김춘진 의원에 의해 <농안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발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농민단체의 연대 성명이 발표되었다. 

부끄럽게도 전농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전후 맥락을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은 과오가 크다. 

전후 맥락을 살피고 개정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가락동 등 농산물 시장에서 독점적 이권을 추구해온 <도매시장법인>, 그리고 이와 결탁한 세력이 벌인 불순한 법 개정 놀음에 뭣 모르고 놀아났다는 것이다. 

이에 전농은 새롭게 입장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이러 저러한 노력에 의해 김춘진 의원은 <발의의원 원안보류> 입장을 밝혔다 한다. 


이번 사건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눈 밝히고 부릅떠 정신 차리고 있지 않으면 코 베이기 십상이라는 것, 법 개정안에 찬성입장을 밝힌 농식품부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박근혜표 유통개혁은 이미 꽃뱀이 벗어놓고 간 허물에 불과하다는 것..

농민들은 여전히 배제된 가운데 진행되는 근본문제 해결과는 한참 동떨어진 논의라는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듯 유통상인들이 경매 거부로 자신의 이권을 관철하듯 농민들도 농민 파업 <농산물 출하거부>를 강력한 투쟁의 무기로 조직해낼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농안법 일부개정 의원 발의안에 대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입장


 

- 농안법 일부 개정안 처리에 반대한다 -

 

 

농안법 일부 개정안(김춘진 의원 대표 발의)이 제출되었다.

전농은 이에 대하여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농민단체 연대 성명서에 서명한 바 있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경위를 상세히 기술할 수는 없지만 전후 맥락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다소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농안법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의 오랜 대립과 갈등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문제와 보다 중요하게는 농산물을 출하하는 생산자 농민의 입장에서 개정안을 꼼꼼히 살피지 못하였다.

이에 농안법 개정안에 대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검토 결과를 의견서로 발표한다.

혼선을 빚은 점 사과드리며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가의 노력을 경주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농안법 개정안의 내용은 도매시장 법인 지정권을 지자체에서 중앙정부로 이관하는 것과 시장도매인의 영업활동을 매수 판매만으로 제한하는 것, 크게 두가지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가락동 등 농산물 시장에서 도매시장 법인이 일방적으로 큰 이권을 누리게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출하자인 농민들의 편의와 이해관계와는 직접적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는 개정안이 생산자 농민을 염두에 두고 제출되었다기보다는 농산물 시장 내부의 이해다툼에서 어느 일방을 두둔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농민을 위한 제대로 된 유통구조 개선 방안은 따로 고민한다 하더라도 가락동 등 농산물 시장에서 특정 이해집단의 패권적 기득권을 강화하는 구조는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실 이 문제로 하여 매번 농안법이 개혁의 대상으로 되어온 것인 바 도매시장 법인과 시장 도매인의 자유로운 경쟁을 의도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퇴행적 법개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서울시 조례 제정을 통해 국내 최대 농산물 시장인 가락동 시장에 시장 도매인제가 도입되어 제한적이나마 새로운 실험이 시행될 때에 즈음하여 이를 불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은 그 취지의 순수성 자체를 심각하게 의심케 한다.

 

이상과 같은 검토 의견에 따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현재 제출된 농안법 일부 개정안 처리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는 바이다.

아무쪼록 신중한 검토를 당부드리며, 금번 개정안 발의가 국내 농산물 유통구조의 근본적 혁신방안 마련을 위한 노력에 착수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농민과 도시민, 도시와 농촌이 공히 행복을 체감할 수 있는 혁신적 방안이 절실하다.

 

 

2013618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