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의 횃불 하나의 심장 농민집권을 향하여!


500여 농민당원이 모여 통합진보당 농민당원 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통합진보당 농민당원 결의대회에서 당 농민위원들이 서사시 <진보당을 지킨 영웅들>을 낭독하고 있다. 


진보당을 지킨 영웅들



#1. 2006년 지방선거


아래로부터 권력 쟁취 

2006년 지방선거 그때 그랬다.

투신과 희생, 책임감으로 무장한 농민 101부대가 선거전에 투입되었다.

평생 명함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던 사람들,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사는 것이 인생의 신념인 사람들이 

2대 8 가르마를 타고, 양장을 차려입고 

모폭 대여섯게 심으면 꽉 찰 포스터에 등장했다.


그들은 민주노동당 후보였다. 

자랑스런 전농의 조직후보였다.

선거결과 101명 출마자 중 11명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101 부대원 중 11명이 살아남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101명 전체가 희생해 11명을 살렸다고 말했다.



#2. 2008년, 분당


2008년, 

당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웠던 사람들, 

조직의 이익보다 사리사욕이 앞선 사람들이 당을 깼다, 


패권, 종북, 

평생 파종만 알던 농민들이 

종파라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가면서 당의 간판에 

빨간색 페인트를 붓고 불을 질렀다.


민주노동당을 반대한 사람들은 환호작약했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한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너희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다” 


태풍 낙과 피해는 생각보다 컸고 

전년도 수확량의 절반을 건지지 못했다. 

2008년 총선농사, 그때 그랬다. 



#3. 전남 장흥


“절대 못합니다.” 

각시한테 평생 정치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정우태는 

제주도로 도망갔다. 

2009년 그때 그랬다.


그러나 더 아래로 도망갈 배를 장만하지 못한 정우태, 

그는 동지들 손에 잡혀왔다.

문경식이 말했다. 

“내가 책임진다” 


장흥도의원 재보궐선거, 

상대후보는 화려했고 민주당 고정표는 단단했다.

저들은 비아냥거렸다. 

“정우태가 30%를 얻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하지만 저들은 우리의 무기를 알지 못했다.

정우태는 문경식을 믿었고 회원들은 지도부를 믿었다. 

당은 농민회를 믿었고 농민회는 농민을 믿었다. 

동지의 말은 천금이었고 지도부의 지침은 목숨이었다.


개표날, 

막판 역전승, 

정우태 당선, 

민주노동당은 전남에서 기사회생했다.



우리의 필승의 무기는 바로 동지와 연대였다. 



#4. 분당


안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겨울동토에도 씨앗은 기지개를 준비한다.


2012년 5월, 통합진보당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통합하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일렀는데 꼴보기 좋다고 했고

전술적 후퇴를 말하며 비례 의원 전원 사퇴를 충고했다.

결국 그들은 또 한 번 당을 깨고 

당원들을 둘로 갈라버렸다.


나간 사람들은 나가는 이유를 천 가지도 넘게 이야기 했고 

당을 지킨 사람들은 그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민중과 역사의 요구, 그것으로 충분했다.

버리기는 쉽다, 그래서 순간이다. 

지키기는 어렵다, 그래서 간고하다.



#5. 홍천


홍천사람들 

2013년 그들은 그랬다.


당이 침몰한다고 배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 

그들은 방향키를 놓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

저녁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학습하고 토론했다.

우리가 옳다는 확신에 맥박이 빨라지고 

저들의 음모가 드러날 때면 핏줄이 불끈 섰다.

농민 속으로, 

누구나 말하는 액자 속의 구호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진보당 말조차 꺼내지 말라 손사래 치는 농민,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을 구분하지 못하는 농민, 

통장이 없어 자동이체를 못한다는 농민,


진심은 통했다.

농민들이 줄지어 입당했다.

지역위원회를 새롭게 건설했다. 

탈당 분당 그 와중에 

숨는 게 최선이라고 모두들 웅크리고 있을 때 

간부들이 먼저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일제히 일어나 공격을 개시했다. 


홍천사람들 

우리에게 있고 저들은 없는, 

우리가 끝내 승리하는 교두보, 바로 그들이다.



#6. 부여, 청양


진보당사태 이후 모든 게 불리한 상황

조건을 탓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후보를 내야 한다.

당의 요구에 당원들이 일어섰다.


김종필 9선, 보수의 본산, 

민주당조차 단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지역 

평론가들은 부여청양 민중을 

절대 변하지 않을 콘크리트 벽이라 명했다.


전국에서 몰려온 당원들의 선거지원, 

현장 농민회원들의 용기있는 결합

후보의 헌신성, 

김선동과 중앙당 지원,

선거는 즐거웠다.

투쟁하는 것 자체가 고마웠고 만나는 동지마다 듬직했다.


저들은 우리가 깃발을 들 수 없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옳았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쟁취

대기업 농업생산 진출 저지를 전면에 세운

전국단위 최초의 선거, 

우리는 승리했다.

잘하면 잘한다 못하면 못한다 말하지 않는 것이 

부여청양 민심이라는데

어깨치고 악수를 청하는 농민들이 많았다.


“너희가 옳다. 실망하지 마라."



#7. 결(結)


진보당을 지킨 농민 영웅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의 교두보 

마을마다 우리의 현장, 

논두렁 밭두렁마다 승리의 길, 

그리고 끝이 없는 투쟁의 길.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하지 않았던가

동지에 대한 믿음

조직에 대한 믿음

농민에 대한 믿음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


가자! 농민 속으로

가자! 농민집권 시대로

가자! 자주민주통일의 새 세상으로




세상의 기둥 농민!

농민과 함께! 농민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