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에는 큰 비가 내린다 했다. 오랜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곡식들이 좋아라 하겠다. 

집에 가봐야 별 볼일 없겠다 싶어 발길이 산으로 향했다. 지난주 토요일 이야기다. 

딱히 정해놓은 산 없이 일단 길을 나서 이리저리 고민한 끝에 정선땅 가리왕산으로 향했다. 

본래 산에 가기 전에 해당 산에 대한 정보를 무지하게 파악하고 가는 편인데.. 그냥 무작정 갔다. 



가리왕산은 큰 산이다. 대여섯시간이면 오르락 내리락하지 않겠는가 하고 물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덤볐다가 꽤 고생하였다. 

허기와 갈증 속에서 매우 느릿하게 걷다보니 11시간을 산에 머물러야 했다. 다행히 물은 임도 주변에서 구해 마실 수 있었다. 

넉넉하고 품이 큰 산이라고 하나 출발지에서 상봉까지 1,100여미터에 달하는 고도를 올려야 하기에 주능선에 도달하기까지는 줄곧 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인내를 요하는 산이다. 




휴양림 매표소 직전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중봉을 거쳐 상봉에 이른 다음 어은골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하였다. 

오르는 내내 장쾌한 주릉의 조망을 상상하였으나 주릉에 이르러서도 조망이 터지는 곳은 중봉 직전의 헬기장과 상봉 일대의 좁은 공간 뿐이었다. 

1,500여미터의 주릉에도 노거수들이 즐비하고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고산에 올랐다는 느낌이 없다. 

전반적으로 심심하고 답답한 인내를 요하는 산행이다. 




중봉에서 상봉에 이르는 주릉길은 편안한 산책길같다. 

군데군데 사스레나무 군락, 신갈나무 노거수, 주목 등이 능선에 들어차 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려 사진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시야가 멀리 터지지 않으니 눈이 자연스레 능선 주변 꽃들에게 향한다.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애매한 시기, 꽃들이 많지 않다. 



능선에는 가을꽃이 다투어 피고 있었다. 가장 많이 피어 있던 투구꽃



흰물봉선, 산을 타는 내내 흰물봉선 외에 다른 색의 물봉선을 보지 못하였다.

물봉선에 무리지어 피어 있던 어은골 계곡에도 온통 흰물봉선 뿐이었다. 거 참 묘하네..

작년엔가 가리왕산에 흰까마귀가 나타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는데 좀 영험한 산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당귀



단풍취



어라 이 가을에.. 

찾아보니 선괴불주머니



진범, 박근혜와 새누리 혹은 국정원이 연상된다. 



참배암차즈기, 금방이라도 물겠다고 달려들 것 같다. 




오랫만의 산행, 먹을것은 챙기지 못한 반면 혹시 능선상에 있을지 모를 이쁜 새까지 염두에 두고 묵직한 300mm 렌즈까지 짊어지고 올라간지라 발걸음이 더뎠다. 거기에 나비에, 꽃에.. 여기저기 들여다보다 보니 산 속에서 날이 저물고 말았다. 

가리왕산의 품에서 벗어나 차를 세워둔 곳에 이르니 아예 밤중이 되었다. 


가리왕산, 오랜 풍상을 겪다못해 숲에 드러누운 노거수가 즐비하고 새로 커올라오는 늠름한 후계목들 하며 가히 원시림이라 할만한 숲이 잘 보존된 산이었다. 

하물며 1,500미터가 넘는 정상 인근의 주릉까지 빽빽하게 나무들이 들어찬 산림자원의 보고라 할만하겠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중봉과 하봉 일대가 활강 경기장으로 파헤쳐질 예정이다. 

이 지역은 주목 군락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해오던 습성으로 볼 때 큰 기대를 가질 수는 없겠으나 산림훼손을 최소화할 방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해본다. 

20여년전 쌍방울리조트 건설 과정에서 처참하게 유린당한 덕유산 향적봉, 설천봉 일대의 주목 군락지가 눈에 선하다.  




가리왕산 등산지도

제2코스라고 쓰여진 것이 내가 다녀온 산길이 되겠다. 

매표소-  중봉 - 정상 - 어은골 - 매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