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
늑대가 온다.
늑대가 온다.
2019.06.28사람을 늑대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농사 지으러 내려온 초기, 그러니 30년 전(정확히 말하자면 29년) 막 창립된 성내면 농민회 총무를 맡았다. 당시 회장이 재무를 일러 '늑대'라 했다. 겪어보니 과연 그랬다. 그 후로 나는 쉽게 속을 알기 어렵고 능글맞으면서 행동도 좀 느리대한, 으멍해보이기도 하지만 악의 없이 착한 사람을 만나면 곧잘 늑대라는 별호를 붙여준다. 지금은 이사간 옆집 아짐한테 늑대라 했다가 어머니한테 그러지 말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는데 내 겪어본 바로는 충북 농민들이 이 별호에 가장 맞아떨어진다. 속 깊이 능글맞기는 그 누구도 충북 사람들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렇게 형성된 늑대에 대한 내 이미지는 실제 늑대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수도 있고 일면 비슷한 구석이 있을 ..
덕유산 토옥동 골짝
덕유산 토옥동 골짝
2019.06.23어디로 튈까를 고민하다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를 예약해 두었다. 올해 새로 심은 잔디밭 하나 시기를 놓쳐 풀 매느라 한 이틀 적잖이 고생했다. 논 둘러보고 스프링클러 옮겨주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러부렀다. 산 아래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 올라갈 수 없다네..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 멀리서 왔다 하니 다 멀리서 온단다. 이래 저래 고민하다 장계로 가서 방을 잡았다. 계남 사는 동갑내 불러내 술을 붓는다. 돼야지 꼬랑지가 아주 맛나다. 역시나 술은 지역 토종과 묵어야 된다. 밤이 이슥해 술자리 파할 무렵 던져놓은 미끼를 물고 사람 하나 달려왔다. 술벵이 추가되었을 뿐.. 토옥동 골짝에서 서봉으로, 주릉을 타다 월성재에서 다시 토옥동 골짝으로 내려오는 길을 잡았다. 숲이 짙어 어두컴컴, 서늘하기 짝이 없다. ..
농민수당 조례제정 촉구 고창농민 결의대회
농민수당 조례제정 촉구 고창농민 결의대회
2019.06.18부지깽이도 뛴다는 농번기, 우리는 왜 일손을 놓고 이렇게 모였는가? 농민이 만들고 온 국민이 함께 누리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 농민수당은 이에 대한 사회적 보상의 의미가 있다. 공익적 가치가 그렇듯 농민수당 또한 매우 공익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현금이 아닌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되는 농민수당은 농민들 호주머니를 통해 곧바로 지역상권(중소상공인)에 돌아가게 된다. 이렇듯 농민수당은 지역주민 모두를 이롭게 하는 새로운 농업예산이자 훌륭한 민생예산이다. 그런데 지난 1년 공들여 추진해 온 농민수당이 고창군의회 일부 의원의 뒷다리 잡기에 휘청이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고자 목전의 일을 제치고 이렇게 모인 것이다. 고창군의회 앞, 오전 10시 고창군의회 정기회 개회에 맞춰 결의대회가 시작되었다. 전농 전북도연맹 박흥식 ..
오름왕국에서 하룻밤을..
오름왕국에서 하룻밤을..
2019.06.13바굼지오름과 모슬포 일대를 흘러 다니다 열리로 돌아왔지만 네시까지 오겠다던 집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 배낭에 꾸려온 화산도를 꺼내 읽는다. 화산도 10권, 얼마 남지 않았던지 금세 다 읽고 말았다. "....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병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이방근이 산중 게릴라들을 조직적으로 섬에서 탈출시킬 것을 암중모색하는 가운데, 제주도 출병을 앞둔 여수 주둔 14 연대 봉기 소식이 전해진다. 화산도 10권은 그렇게 끝났다. 다시 살풋 잠이 들려는 찰나 집주인이 돌아왔다. 집주인이 곧 차주인이다. 주인을 돌려세워 집을 나선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목적지는 '높은오름', 꽤 멀다.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 밤을 위하여.. 네비 따라 찾아온 높은오름, 차는 이내..
단산(바굼지오름)
단산(바굼지오름)
2019.06.11은일이를 만나 그가 부어준 술에 취하고 말았다. 은일이는 제주와 나를 오늘처럼 긴밀하게 이어준 은인이다. 비록 건강을 잃어 몸이 많이 상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더라. 좋은 술이었던지 숙취가 없다. 제주 유랑 이틀째,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나.. 오후 세시까지 돌아오기로 하고 차를 빌렸다. 새를 보겠다는 생각에 알뜨르 비행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방산 부근에 이르러 생각한다. 그래 산방산으로 가자. 그란디 산방산은 입산금지더라.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가겠는데 징역을 살리겠다는 서슬 퍼런 경고판을 한 개, 두 개, 세 개 연달아 지나다 보니 마음이 약해져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래.. 합법적으로 살아야지. 산방산 옆에 괴상한 오름이 하나 있더라. 사진 외약짝에 있는 산이다. 그래 꿩 대신 닭이..
관음사 - 산천단
관음사 - 산천단
2019.06.07화산도를 읽는 동안 몹시도 제주도에 가보고 싶었다. 5월 3일, 못자리 낙종을 마치고 그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목포발 0시 30분 배를 예약해두고 2박 3일 일정을 짰다. 하루쯤은 어디가 되었건 밖에서 잘 요량으로 야영 짐을 꾸려 짊어지니 등짝이 묵직하다. 어린이날을 낀 황금연휴 탓에 타고 다닐 차량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든 되겠지.. 배에 손님이 가득하다. 먼저 눕는 게 임자라고 비좁은 객실 바닥을 차지하고 일찌감치 다리를 뻗었다. 비좁고 무덥고.. 꽤 고역이었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아침이 환하게 밝았다. 버스 편을 알아볼까 하다 마침 호객 중인 택시에 올라타고 관음사로 향한다. 관음사에서 산천단까지 걷는 것으로 제주 유랑의 첫발을 내딛는다. 산천단에서 관음사로 오를까 생각도 했..
화산도
화산도
2019.06.04소설 화산도, 내 그 존재를 알고 난 이후로도 손에 잡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작가의 배경, 무엇보다도 방대한 분량이 앞을 가로막았다. 작가의 단편집 '까마귀의 죽음'을 먼저 읽고서야 결심이 섰다. 그리고 다 읽기까지 석 달 열흘 남짓..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 앞에 펼쳐진 격동하는 남조선 정세, 일제를 대신하여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미제, 미제를 정점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지배질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변신, 이승만 일당의 매국배족 학살행위, 민족분열과 분단 획책. 그리고 그에 맞선 민중들의 피의 항쟁.. 4.3은 이런 정세 하에서 발발했고 제주도는 남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첨예하고 치열하며, 가장 악랄하고 간악한 격돌의 현장이 된다. "미국은 제주도가 필요하지 제주도민은..
꼴뚜기볶음
꼴뚜기볶음
2019.06.04나는 꼴뚜기를 매우 좋아한다. 어린 시절 멸치에 섞인 꼴뚜기를 골라먹자고 상자 채로 엎어놓고 뒤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정작 꼴뚜기를 한 번도 양껏 먹어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꼬록젓은 상에 자주 올렸으나 단 한 번도 꼴뚜기 반찬을 만들어준 적이 없다. 망둥이 따라 뛰는 꼴뚜기처럼 살지 말라는 가르치심이었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친구들 도시락 반찬 속 꼴뚜기를 내 얼마나 탐했던 지 모르셨을 것이다. 엊그제 장 보러 갔다 눈에 띈 꼴뚜기를 한 봉다리 사 왔다. 어떻게 해 먹는 건가 살펴보니 물에 불려 깨끗이 한 후 양념장 치고 볶아 먹으면 되겠더라. 하라는 대로 했다. 다만 번거로운 공정을 보다 단순화했다. 불린 꼴뚜기 건져 물기 대충 짜내고 기름 두르고 다진 마늘 넣어 볶다가 간장 알맞게 치고 다진 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