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폭설
폭설
2020.12.31얼마만인가? 모처럼 눈다운 눈이 내렸다. 눈이라는 것이 본디 밤에 내려 남몰래 쌓이는 법이거늘.. 나가? 말어? 이불속 고민을 비웃으며 벌건 대낮에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놓고.. 아침나절 서운하던 눈이 순식간에 폭설로 변했다. 눈이 내린다 흰 눈이 내린다 함박눈 송이송이 고요히 내린다. 잠시나마 이 꼴 저 꼴 다 잊고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라는 것일까?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나가야 된다, 약속이 있으니.. 고창 사람들은 눈길에 거침이 없다. 돌아오는 길, 눈이 그쳐 간다. 아침이 밝았다. 하늘은 파랗고, 볕을 받은 눈이 퍽으나 다소곳해졌다. 문 소린지 도통.. 중문학자한테 시적 해석을 부탁했다. 답이 왔다. "꽃을 보고 기뻐하며 볕을 향해 열고 저녁에 문 닫고 한가로이 편히 잠..
한우 불고기
한우 불고기
2020.12.28냉장고 속에서 늙어가는 쇠고기, 국거리용은 미역국 끓여 먹고 불고기용이 남았다. 추석 때 받은 것이니 해 넘어가기 전에 먹어 치우는 것이 죽어 고기를 남긴 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헌데 불고기라는 건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래 요리가 뭐 별 것이더냐?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고 본다. 까짓 것 해보는 거다. 양념장이 불고기 맛을 좌우할 것이기에 자신의 기호에 따라 그 맛을 상상해가며 양념장을 정성껏 준비한다. 꽁꽁 언 쇠고기 뜨거운 물에 담가놓고 양념장을 만들어 보는디.. 나는 간장을 고를 때 우리콩으로 만들었는지 소금은 어떤 걸 썼는지 확인한다. 우리콩 천일염으로 만든 진간장 적당량, 이건 순전히 감이다. 쇠고기 양을 감안하여 이 정도는 되야겠다는 느낌만큼 간장을 붓고..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2020.12.26산에 안긴다. 산에 드는 건 산을 더 잘 보고자 함이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ㅋㅋ 좀 더 일찍 올랐어야 했다. 해님이 벌써 중천에 계시니.. 하늘로 올라간 마을 농평 불무장등, 황장산 너머 구름 모자 쓴 세석, 남부 능선 거친 산길을 간다. 지리 주릉이 한눈에 잡히고.. 우리의 후손들이 태어난 후에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리라.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세석 너머 천왕은 구름 속에 계시고.. 그때는 찢겨 피 묻은 깃발이나마 해방의 강산 위에 나부끼리라~ 아~아 오늘도 우리는 간다 선배들의 핏자욱 서린 이 길을.. 지리 주릉은 구름의 거처 천왕은 끝내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노래 부르며 서로를 일으키면서.. 신비주의에 휩싸인 대반야 끝내 안 보여 주더라. 왕시루봉 남해로 가는 섬진강 불..
초승달
초승달
2020.12.24가창오리 보겠다 논두렁 타고 넘어 논바닥 가로질러 당도한 저수지 가상, 오리 떼는 뚝방 너머 들판으로 맥없이 사라지고 해 넘어간 붉은 자리 그 하늘가로 초승달 하나 담박질 치고 있더라. 비로소 드러난 자신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백산 격문
백산 격문
2020.12.23우리가 의義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결단코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버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쫒아 내몰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 굴욕을 받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약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돌이키지 못하리라 갑오 정월 호남창의대장소 재백산在白山
다산 노인일쾌사
다산 노인일쾌사
2020.12.21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치아 없는 게 또한 그 다음이라 절반만 빠지면 참으로 고통스럽고 완전히 없어야 마음이 편안하네 한참 움직여 흔들릴 적에는 가시로 찌른 듯 매우 시고 아파서 침 놓고 뜸질해도 끝내 효험은 없고 쑤시다가는 때로 눈물이 났었는데 이제는 걱정거리 전혀 없어 밤새도록 잠을 편안히 잔다네 다만 가시와 뼈만 제거하면은 어육도 꺼릴 것 없이 잘 먹는데 잘게 썬 것만 삼킬 뿐 아니라 큰 고깃점도 능란히 삼키거니와 위 아래 윗몸 이미 굳은 지 오래라 제법 고기를 부드럽게 끊을 수 있으니 그리하여 치아가 없는 것 때문에 쓸쓸히 먹고픈 걸 끊지 않는다오 다만 턱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여 씹는 모양이 약간 부끄러울 뿐일세 이제부터는 사람의 질병 이름이 사백 네 가지가 다 안되리니 유쾌하도다 의서 가..
이덕구 100년 예술 동행
이덕구 100년 예술 동행
2020.12.20제주 인민유격대 이덕구 사령관 탄생 100주년,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예술가들이 기획하였고, 그들과 함께 한다. 그래서 남달랐던 12월 13일 그날의 기행.. 출발은 관덕정, 47년 3.1절 발포 사건으로 4.3의 시발점이 되고 이덕구 사령관의 시신이 전시되었던 곳. 김경훈 시인의 서시와 시 낭송으로 시작한다. 이덕구 사령관! 제주 4.3의 대명사이면서도 제주 4.3의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 그의 복권! 그를 이 시점에서 부활시키는 것은 ... 어둠만을 골라 딛으며 찬바람 속 이슬 잠에 오매불망 그리던 인민 세상 그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다시 모으자는 것이다. 김경훈 '서시' 발췌 관덕정 김경훈 그대는 아는가 여기 관덕정 앞 광장에서의 1947년 3월을 미군정 경찰의 발포로 인한 무고한 ..
무로 만든 음식들
무로 만든 음식들
2020.12.20웃집 아짐 우격다짐으로 무를 던져놓고 갔다. 이걸 또 언제 다 먹나?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아무래도 집에서 밥을 자주 먹어야겠다. 해본 적 없는 무 요리의 새로운 지경을 개척하면서.. 참고할 요리 방안이야 널리고 널려 있으니.. 가장 먼저 끓인 것은 쇠고기 황태 뭇국. 이름 그대로 쇠고기와 황태와 무를 함께 넣고 끓이면 되겠다. 쇠고기, 황태, 무에 간장 살짝 치고 볶다가 물을 붓고 끓였다. 한데 간장을 과하게 부었다. 하여 오직 간장만으로 간을 가름해야 했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첫 번째 시도.. 이번엔 돼지고기 뭇국, 더러 돼지고기로도 뭇국을 끓이나 싶어 인터넷을 뒤지다 찾았다. 제주도 토속 음식이라는 말에 솔깃, 나는 질박한 제주도 음식을 좋아한다. 제주도 방식의 핵심은 밀가루를 물에 개..
어승생악 일출과 조망
어승생악 일출과 조망
2020.12.1812월 13일, 오늘은 관덕정에서 출발하는 기행이 있다. 아침 일찍 넘어가야 하니.. 어디서 뜨는 해를 봐야 하는 생각에 오름들을 검색하던 차에 어승생악이 걸려들었다. '겨울철 일출 명소'라는 말에 혹 했다. 1,100 도로 넘어 어리목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어둠이 남아 있는 산길을 오른다. 정상까지 1.3km, 잘 정비된 산길 따라 어려움 없이 걷는다. 연일 계속되는 음주로 위와 식도에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식도가 뜨겁고 답답하게 조여 온다. 마치 폐 혹은 심장이 아픈 것처럼.. 다시 술을 참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붉게 타오르나 싶더니 이내 잦아들고 만다. 날이 안 좋은 것인지 눈이 없어서인지 밋밋하더라. 한라산 너머 해 올라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겠고 올라온다 한들 뭐 그다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동광 당오름 일몰
동광 당오름 일몰
2020.12.1812월 12일, 서귀포 예래동에서 아침을 맞는다. '예래'는 고려 시대 서귀포 옛 지명, 범섬의 살기를 누르기 위해 사자를 끌어들인 것이라 한다. 호랑이에 맞서는 사자라.. 음.. 오늘은 일단 하룻밤 신세 진 경록이네 밀감 수확을 돕기로 했다. 밀감 수확도 쉽지는 않더라. 밀감나무 깊숙이 파고 들어가고, 기어 들어가고.. 밀감 값이 형편없다고.. 올해는 태풍 피해도 많이 입었는데.. 기대치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밀감 값에 밭주인 심기가 편치 않다. 세 사람이 손을 더하니 일이 일찌감치 끝났다. 혼자서는 몇 날 며칠 해야 할 일을 단숨에 해치웠다고 좋아라 한다. 모슬포로 달려가 대짜 방어 발송 예약 걸어놓고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하여 찾았다. 해 넘어가는 쪽 가까운 당오름을 오른..
흥덕 아리산 홍어탕
흥덕 아리산 홍어탕
2020.12.17아리산은 본래 중국집이었다. 중화요리를 작파하고 한식으로 바꾼 지 오래, 그간 여러 가지 음식을 선보였지만 과히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올여름부터였는지 홍어탕이 좋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최근에는 아리산 홍어탕을 찾는 단골층이 더러 생기기도 한 모양이라. 그간 몇 차례 가서 먹어본 바 그 맛이 일정하고 변함이 없더라. 아리산 홍어탕은 투박하다. 잘 삭힌 홍어에 무, 배추, 고춧가루.. 그리곤 잘 모르겠다. 한데 그 맛이 훌륭하다. 뜨거운 콧김을 유발하는 홍어 특유의 맛과 향은 물론이거니와 몹시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홍어탕 특유의 거품이 마구 일어난다. 소주 한 잔 곁들여 밥 한 공기 뚝딱.. 입천장이 훌렁 벗겨지기도 하지만 홍어탕에 덴 입천장은 쉬이 회복되니 과히 걱정할 일이 아니다..
순창 구림식당 시래기 해장국
순창 구림식당 시래기 해장국
2020.12.15토박이 순창 사람이 가는 식당,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좋고 맛이 있어 좋다 하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우리는 해장이 필요해. 실가리국(시래기해장국)을 주문한다. 구수하고 깊은 맛, 어떻게 끓이면 이런 맛이 나지? 심지어 추어탕 맛이 나기도 하여 추어탕도 하는지 살폈지만 메뉴판에 없다. 좌우튼 해장에 딱이다. 순창에 가시거든 찾아가 잡솨보시라. 순창군청 가까이 천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