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입암산 달맞이
입암산 달맞이
2021.09.23추석에는 벌초와 성묘만으로 자손 된 도리를 다하기로 했다. 송편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보름 후에 있을 어머니 기일에 집중하겠다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 하여 성묘를 마친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 나는 산으로 간다. 추석 보름달을 맞기엔 산 만한 곳이 없다. 입암산 남창골, 새벽에 내린 비로 산은 온통 물 투성이로 축축하다. 산성 남문을 지나 북문을 거쳐 갓바위에서 달을 맞을 계획이다. 이 길은 입암산을 오르는 가장 편안한 길이다. 두꺼비들이 발에 밟힐 지경이다. 녀석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과히 두려워하지 않는 듯 엄금 엄금 제 갈 길을 간다. 주차장으로부터 대략 3km, 산성 남문을 지난다. 본래부터 그랬을까? 남문 사이로는 늘 물이 흐른다. 입암산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송군비 장군이 몽골 침..
서울로 가는 길
서울로 가는 길
2021.09.111970년대 초반, 그 시절 서울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농촌의 수많은 청춘남녀와 밤 봇짐 싼 일가족을 실은 새벽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하면 생면부지의 땅에 내려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새 세상에 대한 경외와 새로운 삶에 대한 포부도 있었을 것이고 고향을 잃은 비탄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이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다만 해마다 명절이면 양손에 선물 보따리, 신작로 빡빡하게 고향집으로 향하던 귀성 인파의 종종걸음이 눈에 선연할 따름이다. 나는 1978년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1989년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줄곧 방학이 그리운 학생이었다. 나는 향수병을 심하게 앓았더랬다. 이 노래를 알고 난 이후 꽤 오랫동안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 나는 '앞서가는 누렁아 왜 따라나서는 ..
울릉도, 그리고 박정희
울릉도, 그리고 박정희
2021.09.01우리는 울릉도 곳곳에서 박정희와 대면했다. 어떻게든 박정희와 엮어 '기승전 박정희'를 위해 애쓴 흔적들과 도처에서 맞닥뜨렸던 것이다. 울릉군수 옛 관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이듬해 10월 울릉도를 방문한다.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 그무슨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었던 시절이지만 대통령이나 의장이나 뭐가 달랐겠는가? 울릉도로서는 감지덕지할 일이었을 것이고, 박정희는 돌아간 후 울릉도 종합개발계획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그 후 울릉도는 70년대 초반 오징어 잡이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딱히 박정희의 공이라 할 바는 아니지만 그락저락 울릉도 근대화의 은인으로 기억될 만도 하다. 그렇다 하나 일제 강점기 식민 관료의 관사로 쓰이던 건물 그대로 일식 요정 냄새 풍겨가며 박정희 개인을 숭배하는..
저동 일출, 섬을 떠나다.
저동 일출, 섬을 떠나다.
2021.09.012박 3일이 4박 5일이 되었다. 울릉도에서 처음 맞는 마지막 일출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때 맞춰 일출 보겠다고 부지런히 걷고, 북저바위와 각을 맞추느라 왔다 갔다 했다. 아침을 먹는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를 두고 고민하다 찾아간 집에서 우리는 이틀 후 확진자가 될 손님하고 함께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알게 될 일이고, 밥은 잘 먹었다. 2박 3일이 4박 5일이 되고 일주일 후에 다시 일주일 휴가, 참으로 호화찬란한 여름 뒤끝이로다. 시간이 남는다. 우리는 관해정 후박나무 그늘 아래 앉아 오래도록 쉬었다. 앉아 쉬자니 흑비둘기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처음에는 안 보이던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후박나무 열매는 녀석들의 주식이나 다름없으니.. 흑비둘기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