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사진이야기
지난 여름 산길에서..
지난 여름 산길에서..
2024.01.17산길을 걸었네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이었네 쏘내기도 한바탕 지나갔다네 산길을 거닐며 산길을 거닐며 벌레고 새고 나비고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 모두 담았네 그러곤 잊었네 잊고 살었네
선운사, 짧은 산책
선운사, 짧은 산책
2023.12.04한 댓새 됐을까? 눈 살째기 내린 어느날 선운사에 갔다. 좀 더 서둘러 갈걸.. 고닥새 다 녹아버리고 흔적만 남었다. 부도전 들러 제 자리로 돌아온 백파율사비에 새겨진 추사 글씨 구부다 본다. 안목이 없으니 그저 그러려니 할 뿐 감흥이 없다.도솔천 따라 오르는 길가, 무심히 서 있던 민불이 눈에 들어온 것은 유홍준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나서였다. 그 후론 오가면서 한 번씩 만져보고 쓸어보곤 했더랬다. 헌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조잡한 불상이 대신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절에서 성보 박물관이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백파율사비와 함께 그 안에 모셔 두었던 것이다. 박물관이 닫히고 백파율사비는 제 자리로 돌아갔는데 민불은 박물관 앞에 서 있다. 중들 욕심이..선운사 동백은 4월에 핀다. 그 숲 속 ..
지나간 봄을 그리워하네
지나간 봄을 그리워하네
2023.07.04아직은 쌀쌀한 어떤 봄날 깽깽이풀 보자고 나선 길 나무는 잘리워나가고 숲은 파헤쳐져 깽깽이는 흔적조차 사라졌네 아쉬운 마음 여기저기 사진기 들이대지만 흥 이내 사라져버리고 터덜터덜 돌아나왔네 북풍한설 견뎌낸 뿔나비 볕 쬐던 찬바람 일렁이는 어느 봄날이었네. 여기는 귤암리 우리는 뭔가 먹으러 왔다, 그 먼 길을.. 살자면 기력이 있어야 됭게. 숲에 든다 맛나게 생긴 들꿩, 짝을 부른다. 녀석은 수컷, 언젠가 먹고 말테다. 뿔나비나방, 나방 주제에 나비 흉내 내 너를 처음 만나 자못 흥분했었네 처음 보는 나비였으니.. 굴뚝새 한 마리, 바위 틈새를 들락날락 녀석은 번식기 짝은 구했나? 드넓은 고랭지 채소밭 펼쳐진 외딴 집 오색딱따구리 나무 두드려 짝을 부르고 나무 아래 강아지 변화무쌍 노닥거린다. 막걸리..
산토끼 토끼야
산토끼 토끼야
2023.06.21이른 아침 산길에서 토끼를 만났다. 숲이 너무 짙어져 오히려 사라지고 있다는 산토끼, 제대로 된 이름은 '멧토끼'다. 한반도에는 단 한 종의 멧토끼(Lepus coreanus)가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산토끼는 산속에서도 시속 80km로 달릴 수 있다 한다. 어쩌다 마주친다 해도 순식간에 달아나버리기 일쑤인데 이번엔 몹시 어리숙한 녀석을 만났다. 잠이 덜 깼을까? 이 녀석은 바로 토끼지 않고 보다 못한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야 마지못한 듯 풀숲으로 사라졌다. 산토끼 토끼야어디를 가느냐깡총깡총 뛰면서어디를 가느냐이 녀석 별주부를 만났다면 간이고 뭐고 다 털렸겄다. 자세히 보니 귀에 진드기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다. 피를 너무 빨려 어리숙해 보였던 걸까?
선운사, 붉은 동백의 유혹
선운사, 붉은 동백의 유혹
2022.12.14밤새 눈이 나렸다. 소리도 없이 나렸다. 나는 눈을 개보다 더 좋아한다. 나무 보일러 장작 넣고 눈 얼른 치우고 선운사로 달려가니, 여전히 눈이 나리고 있다.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 일주문 지나고 부도전 지나 극락교 건너 절 마당 돌아 나와 담장을 끼고돌아 숫눈길을 헤쳐간다. 선운사 동백은 4월에 꽃을 피우는데 하여 춘백이라고들 하는데.. 눈 속에 피었다. 딱 한 그루.. 눈에 눈이 팔린 데다 붉은 동백의 치명적 유혹까지 동백나무 아래서 시간을 뭉개다 보니 아뿔싸 기차 시간 늦겠다.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통할 듯한 문을 지나 500 미터는 족히 뛰었다. 단식 뒤끝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나풀나풀~
수달
수달
2022.11.22산에서 내려온 아침, 수달을 만나다. 녀석은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며 닥치는대로 물괴기를 잡아먹고 있었다. 아따 자식 식성 좋데~ 그려 물 속에서는 니가 왕이다. 거칠 것 없는 야생의 삶이 부럽다. 환경을 잘 보전해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래오래 번성하라고..
변화무쌍 가을 하늘
변화무쌍 가을 하늘
2022.09.03병원 생활 2주째, 나이롱이 되고도 한 주가 지났다. 지나고 나니 쏜살같다. 병실, 병동, 병원.. 활동 범위를 제아무리 넓힌다 한들 병원 울타리, 하루 2만보 이상을 걷고 또 걷지만 다람쥐 쳇바퀴.. 그럴수록 눈길은 더 멀리, 머얼리 산과 하늘에 가 닿는다. 요즘 하늘 변화무쌍하여 보는 재미가 있다. 백두대간 너머에서 해 올라오고.. 교룡산 너머로 해 떨어진다. 꼬박 이레 동안 병동에 갇혀 살았다. 아침저녁 뜨고 지는 해를 창문 너머로만 봐야 했다. 그런데 옆자리 환우 밥 먹고 담배 챙겨 나갔다 오더란 말이지.. 무슨 비밀 통로라도 있나 따라나섰는데 글쎄 건물 밖 출입이 가능하더라는.. 나는 기것도 모르고 갇혀 살았던 것이다. 그래도 깜방보다는 낫다 생각하면서.. 여드레만에 바깥 바람을 쐰다. 밖은 바..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2022.06.16얼마 만인가? 사진기 챙겨 들고 숲을 살피며 할랑할랑 걷는다. 선운사 입구, 도솔천 너머 숲이 싱그럽고 울창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붉은배새매, 매번 생각한다. 붉은코새매로 이름을 바꽈야 하지 않을까? 안창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녀석, 붉은배새매 유조. 노란색 눈테가 없는 것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 앞자리 앉은 성조와 무관하지 않은 듯.. 어치에게 발각돼 이리저리 쫓겨 다닌다. 어미새 도와주지 않더라. 너 알아서 하라는 건지, 내놓은 자식이라는 건지.. 뱁새, 늘 유쾌한 녀석들.. 다람쥐는 늘 뭔가를 오물거리고.. 큰줄흰나비 암컷, 배를 추켜세웠다. 나는 이미 수태한 몸이라는 짝짓기 거부 행동. 아랑곳하지 않고 수컷 두 마리 날아든다. 교접을 시도하는 수컷, 이런 경우 수컷이 포기하고 물러날 수밖..
사진기를 바꽜다.
사진기를 바꽜다.
2022.04.15공장에 간 사진기는 돌아올 줄 모르고 기다림에 지쳐가던 어느 날 느닷없이 날아와 꽂힌 니콘 D500 + 500mm 5.6 pf.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장만한 강력한 조합, 작고 가벼우며 저렴하지만 힘 센 녀석. 첫날 첫 사진들.. 사진 찍기 몹시 편하더라. 손에 익으면 더 쉬워질 터, 사진기를 바꾼 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더라. 마당 가상 동백이 꽃을 활짝 피웠다. 직박구리 한 마리 꽃 깊숙이 주둥이 밀어넣고 꿀을 빨아먹는다. 지금은 이동 시기, 되지빠귀 울음소리 동네 가득 낭자하더니 사진기 앞으로 날아와 자세를 잡는다. 날 좀 바라봐~ 날 좀 찍어봐~ 풀씨 몇 개 발라먹더니 이내 휙 하고 날아가 버린다. 지붕 위의 참새, 기왓장 아래 어딘가 집을 마련해놓고 사랑을 나눈다. 봄은 번식의 계절. 눈에 ..
봄비 나리던 날
봄비 나리던 날
2022.03.13간밤 달무리 지더니 점드락 봄비가 오락가락, 메마른 땅을 적시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꽃들은 앞다퉈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나는 사진기를 손에 쥐었다. 집안 곳곳 산수유 물기를 한껏 머금고 샛노래졌다. 마당 한구석 잔뜩 부풀어 오른 동백꽃 봉오리, 나도 한껏 부풀어 올라 선운사엘 갔다. 막걸리 한 잔 적시고.. 대웅전 뒤 동백숲, 선운사 동백은 벌써 폈더라. 참으로 붉기도 하다. 저 산에도 화색이 돌 것이다,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이 담벼락도 초록초록해질 것이고.. 사람들 통 안 가는 은밀하고 으슥한 곳, 굴뚝새 한 마리 촐랑대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한참을 쫓아다녔다, 봄비를 맞으며.. 끝내 잡지 못했다, 공장에 간 렌즈가 참으로 그리웠다. 동박새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더란 말이지.. 곱기..
오래된 사진, 오래된 기억
오래된 사진, 오래된 기억
2021.07.05이따금 집에 내려오는 아이들은 옛 사진첩 들춰보는 것을 좋아한다. 세 놈이 한 자리에 모여 앉기라도 할 양이면 지들끼리 깔깔대며 재미가 좋다. 그런데 그 기억이라는 것이 때로는 놀랍다. 아니 그 시절까지 기억한다고? 그게 가능해? 하여 생각해본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떤 것일까? 가장 오래된 사진을 들춰보지만 나는 이 사진 속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는 이 사진의 내력에 대해 말해줄 사람도 없다. 추정컨대 할아버지 첫 번째 기제사, 하니 사진 속 나는 세 살일 것이다. 딱 봐도 세 살로 생겼다. 동짓달이 생일인 나는 애문살 먹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 흐느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을 안길 또랑에 녹깡을 묻고 있었다. 어른들이 나를 보고 한 마디씩 ..
드잡이
드잡이
2021.06.26나는 오래된 집에 산다. 올해로 아흔넷, 좀 있으면 백 살 자신다. 나는 쉰여섯, 좀 있으면 환갑 되시겠다. 집을 한 번 크게 손봐야 할 때가 됐다. 지난 30년 얹혀살기만 했으니, '드잡이'가 필요하다 했다. 이것은 집에 대한 나의 사명이 되었다. 늘 나들아다니는 곤궁한 살림살이, 드잡이는 필생의 과업이 될 수도 있다. 돌아온 늦은 밤 문 왈칵 열린 불 켜진 방 불 끄고 문고리 거는 것은 내 일이었다. 날파리떼가 방을 점령했다. 딸내미들 방으로 피신한다. 잠 깨어 일어난 아침 오래된 달력 앞 이 자리에서 십수 년이 묵었다. 90년 세월 속에 십수 년이야 뭐, 반백년 한 자리 벽시계도 계시는데 저 시계불알은 언제 명을 다했을까? 딸내미들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이 방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나 딸내미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