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방장산 달맞이
방장산 달맞이
2022.02.20올 겨울 유난히 눈이 없더니 대보름날 눈이 내렸다. 눈이 쏟아지다 해가 나왔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 속 방장산이 허옇다. 하얀 산이 당기는 힘은 매우 강력해서 감히 거역할 수가 없다. 그래 오늘밤은 방장산에서 자자고, 구름 사이 흘러가는 대보름달도 볼 겸.. 주섬주섬 짐을 챙겨 산에 드니 이미 어둠이 짙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커다란 보름달은 구름과 구름 사이를 담박질 친다. 눈 쌓인 능선길 걸어 벽오봉까지 한 시간 하고도 20여 분, 제법 거대해진 고창읍내의 불빛이 휘황하다. 읍내만 커졌다. 달구경도 잠시, 몸 식을세라 서둘러 천막을 치고 안으로 든다. 바람이 심하지 않다. 눈이라도 나리면 좋으련만.. 라면 하나 끼래 복분자술 한 잔, 탱자술 한 잔 번갈아 마시다가 잠을 청한다. 이미 밤이 깊었다..
호남정맥 추령봉(개운치~추령)
호남정맥 추령봉(개운치~추령)
2021.12.2612월 25일, 녹두장군 일행이 입암산성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한양으로 잠입하고자 했으나 사흘 뒤 피노리에서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농민군 본대가 벌인 태인에서의 마지막 전투 이후 불과 닷새, 장군의 잠행은 너무도 짧았다. 펄펄 눈이 내린다. 날이 몹시 차다. 예기치 않았던 눈, 실컷 맞고 싶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민하다가.. 호남정맥 개운치, 고갯마루엔 찬바람만 쌩쌩 매섭게 불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지 않는다. 미리 제목까지 달아놓고 달려왔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호남정맥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방장산, 혹은 선운사로 갔어야 했다. 초입은 대숲,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에 안긴다. 조릿대 숲을 지나 만난 오래된 전호의 흔적, 딱 있을 만한 자리마다 여지없이 나타나던.. 그날의 흔적. 지..
지리산
지리산
2021.12.20지리산에 안기다. 실로 오랜만, 거진 열 달만이다. 오늘은 동행이 있다. 9시 30분, 백무동에서 두지동 방향으로 들어선다. 눈이 내리지 않아 아쉽다. 9시 50분, 옛 마을 터에 당도한다. 마을 이름이 기억이 안 나.. 한때 경남도당 인민유격대가 머물렀다 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없어도 감나무엔 감이 주렁주렁.. 10시 40분, 창암 사거리 근처 망바위에 올라 천왕봉을 알현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칠선계곡을 경이롭게 바라보다. 거친 산길, 사면을 거슬러 칠선계곡으로 넘어간다. 12시 20분, 칠선계곡에 당도하다. 눈 덮인 이끼가 파릇파릇, 새순 돋는 보리밭 같다. 치마폭포 뒤로 눈 쌓인 천왕봉이 보인다. 추성동 감도는 칠선의 여울 속에 굽이굽이 서린 한이 깊이도 잠겼구나 ... 너는 알지 눈보라가 ..
호남정맥 고당산(구절재~개운치)
호남정맥 고당산(구절재~개운치)
2021.12.13동트기 전 산에 올라 조망 좋은 봉우리에서 해를 맞이하고 다시 날이 어둑할 때까지 산을 탔더랬다. 그리 산을 타면 하루 산행거리가 30여 km를 넘나들었다. 불과 5~6년 전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새벽에 길을 나서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언젠가 죽령에서 만나 소백산을 타 넘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어디만큼 오셨어요?" "워매, 나 아직 이불 속인데.." 어찌나 미안헸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새벽 산행을 해보자 맘먹고 잠이 들었으나 엎치락뒤치락 꼼지락거리다 보니 한낮이 되어간다. 구절재를 향해 길을 달린다. 칠보 소재지 허름한 뒷골목에서 보석 같은 식당을 발견했다. 언제고 칠보에 갈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이 집에 다시 갈 것이다. 구절재에 당도하니 정오, 짐을 꾸려 출발한다. 오늘은 속도 위..
호남정맥 왕자산(소리개재~구절재)
호남정맥 왕자산(소리개재~구절재)
2021.11.302021년 11월 28일 11시 45분, 산길을 이어간다. 간밤 음악가 선생들과 마신 술이 과했다. 숙취 해소를 위한 산행, 오늘은 순창 사람 김 씨의 도움으로 차를 미리 목적지에 갖다 두고 시작한다. 몸을 낮출 대로 낮춰 도로를 건넌 정맥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다시 산으로 오른다. 정맥은 한동안 밭과 밭 사이, 무덤 사이, 자그만 솔밭 사이, 가시밭길 돌무덤을 헤쳐간다. 으슥한 곳을 골라 앞뒤 개완허게 비워내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직박구리, 개똥지빠귀 소리 사이로 낯선 새소리가 들린다. 오~ 좋은 징조로다. 한참을 갈등하며 조물딱 거리다 가져온 망원렌즈를 꺼낸다. 어랍쇼 검은이마직박구리, 이 녀석들을 예서 만날 줄이야 몇 년을 보고 싶어 모대기던 녀석인데 올해만 세 번째, 한 번 보고 나면 자꾸 ..
호남정맥 묵방산(운암 삼거리~소리개재)
호남정맥 묵방산(운암 삼거리~소리개재)
2021.11.22늦가을인가 초겨울인가, 호남정맥에 다시 안기다. 진달래 꽃망울 터뜨리던 초봄이었으니 고닥새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네. 날이 갈수락 먼 길 단번에 가기 어렵다. 나이는 자시고 몸은 불고, 별 수 있나 구간을 쪼개 조금씩 나아가야지. 그러다 다리에 힘 받으면 쭉 빼기도 하고.. 묵방산이 538m, 이번 구간은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차 달리는 소리 허다히 들릴 것이다. 산이 사람 사는 세상과 가까워지면 필연코 깎이고 뭉개져 상처투성이가 된다. 하여 사람의 간섭이 심한 마을 주변과 밭 가상은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져 길은 걸핏 사라지기 일쑤, 집중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르는 수가 있다. 수풀 무성한 여름이 아니어서 다행인 것이다. 운암 삼거리, 들머리부터 수월치 않다. 흔히 도깨비풀이라 불리는 미국가막사..
입암산 달맞이
입암산 달맞이
2021.09.23추석에는 벌초와 성묘만으로 자손 된 도리를 다하기로 했다. 송편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보름 후에 있을 어머니 기일에 집중하겠다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 하여 성묘를 마친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 나는 산으로 간다. 추석 보름달을 맞기엔 산 만한 곳이 없다. 입암산 남창골, 새벽에 내린 비로 산은 온통 물 투성이로 축축하다. 산성 남문을 지나 북문을 거쳐 갓바위에서 달을 맞을 계획이다. 이 길은 입암산을 오르는 가장 편안한 길이다. 두꺼비들이 발에 밟힐 지경이다. 녀석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과히 두려워하지 않는 듯 엄금 엄금 제 갈 길을 간다. 주차장으로부터 대략 3km, 산성 남문을 지난다. 본래부터 그랬을까? 남문 사이로는 늘 물이 흐른다. 입암산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송군비 장군이 몽골 침..
흑산도 산행(마리재-큰재-칠락봉-샘골)
흑산도 산행(마리재-큰재-칠락봉-샘골)
2021.05.12섬은 어찌 보면 해저의 산맥이 물 밖으로 높이 치솟은 것이라 하겠다. 바다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자그마한 섬들은 더욱 그러해서 섬 자체가 커다란 산 덩어리로 보이기 일쑤다. 논 한 뙈기 없는 흑산도도 그렇더라. 섬을 한 바퀴 돌며 새들을 보자니 길게 늘어선 산줄기와 바위 연봉들이 자꾸만 눈길을 잡아당긴다. 산이 말을 걸어온다. 니가 안 올라오고 배겨? 하여 오른다.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바다 위로 뜨는 해를 보겠다는 간밤의 다짐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산줄기가 장엄하게 도열하여 시선을 압도한다. 석위가 무리 지어 자라고.. 신안비비추인가, 흑산도비비추인가? 육지 것보다 잎사귀가 둥글고 두툼하며 윤기가 반지르하다. 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댄다. 저 짝에서 출발해 왔다. 눈 아래 비리 마을, 바..
호남정맥 오봉산(염암재~운암 삼거리)
호남정맥 오봉산(염암재~운암 삼거리)
2021.04.303월 24일,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었다. 언제 적인지 기억은 아스라한데 고작 한 달 살짝 넘어섰을 뿐이다. 영원할 것 같은 기억도 실상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제때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산화되고 파편만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사진이 있으니 얼기설기 기억이 복원된다. 염암재에 차를 두고 정맥에 안긴다. 염암재를 여태 영암재로 알고 있었다. 독수리 아직 우리 하늘에 머물고 진달래, 생강나무 꽃봉오리 터뜨리는 가운데 동고비는 둥지 새단장 견적을 뽑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봄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운암댐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물줄기 너머 장대한 지리 주릉이 버티고 있다. 산 참 많다. 아무래도 우리는 산악 민족이다. 꽃다지, 작업장 언덕길 아니고 산길 무덤가에 무리 지어 피었다. 이..
함양 백운산
함양 백운산
2021.04.19산에 든다. 꽃이 지고 있었다. 다른 꽃이 또 피겄지, 그렇게 봄이 가겄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산길은 고역을 동반한다. 그래야 알 수 있지,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을.. 어느덧 능선에 서면, 가슴 열리고 걸음 가벼워지고.. 피어나던 진달래가 된서리를 맞고 시날고날.. 산을 오르면서 수거한 다종의 탄피들, 우리 산하에는 얼마나 많은 탄피들이 쌓여 있는 걸까? 썩어 거름도 못 되는 것들.. GRENADE, 수류탄이라 쓰인 거라네. 저기 멀리 지리 주릉, 골골이 쌓인 사연 가슴마다 맺힌 원한들을 어찌 다 풀 것인가? 백운산 상봉에 흐르던 노 투사의 뜨거운 눈물이 산과 들을 적신다. 미제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뤄내자고.. 보고 또 봐도 자꾸만 또 보게 된다. 멧돼지가 잠자리를 마련할 만한 자리. 여..
호남정맥 치마산(불재~염암고개)
호남정맥 치마산(불재~염암고개)
2021.03.10본래 명절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올 설은 참으로 별 재미없게 지나갔다. 코로나를 핑계로 두 딸은 오지 않았고 아들 녀석과 단출하게 차례상을 차렸더랬다. 그렇게 설을 보내고 아들 녀석을 꼬드겨 한나절만 타기로 하고 호남정맥으로 갔다.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간다. 정맥을 좀 더 잇고 싸잡아 기록을 남기고자 했으나 영 틈을 내기가 어렵다. 지금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 산행이 되기 십상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는디.. 불재 고갯마루는 좌우로 몹시 어수선하다. 사람 손을 많이 탔다. 걸음을 서둘러 잠시 오르니 약간의 조망이 터진다. 시작은 언제가 지나온 길 돌아보는 것부터.. 고래 뿔은 어디로 갔을까? 가야 할 길을 가늠한다. 저기까지만 가면 되겠다. 치마산이다. 들어보지 못한 산 이름, 봉우리에 올라가서야 "..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천왕봉
2021.03.04강원도에 폭설, 우리 동네는 폭우.. 강원도에 가고 싶었지만 이제 늙었다. 지리산에는 눈이 내렸겠지? 아직 동트지 않았으나 신새벽이라 하기에는 늦은 시간, 지리산에 안긴다. 물소리 요란한 백무동, 봄기운 완연하다. 어제 내린 비로 여기저기 생수가 터져 사방팔방 물이 흐른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길은 거슬러 오른다. 그란디 내려올 때 보니 물이 길을 열고 길은 물 따라 흐르더라. 그때그때 다르더라. 1,300~1,400m 사이에서 상고대가 나타난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행전까지 챙겼는데.. 라면 끓여 배를 채운다. 아무도 없다, 명색이 장터목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랬는데 오늘은 아닌갑다. 짙은 운무만이 오락가락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제석봉 오르는 길, 일순 운무가 걷히고 파란 하늘에 태양이 빛난다.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