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세상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깃발이여!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깃발이여!
2023.03.201895년 3월, 을미적 을미적 봄이 오고 있었다. 허나 봄이 왔으되 봄이 아니었다.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를 든 동학농민군과 침략자 일제의 충돌, 조선의 명운을 건 한판 대결, 우금티 패전 이후 조선은 피바다에 잠겼다. 참빗 작전이라 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해외 침략의 첫걸음부터 피바람을 몰고 왔다. 참빗으로 훑어내리듯 씨를 말려 화근을 없애버리겠다는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에 조선 관군이 동원되고 민보군이 앞장서는 골육상쟁의 비극이 벌어졌다. 임무를 마친 일본군이 인천으로 귀환하고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오호 통제라! 남의 나라 군대에 제 나라 백성을 도륙케 한 조선 정부를 어찌 조선의 것이라 할 것인가. 무수한 농민군들과 그 가족, 이웃사촌들이 무리죽음을 당하고..
대둔산의 아침, 새로운 항쟁의 불꽃
대둔산의 아침, 새로운 항쟁의 불꽃
2023.02.17우금티 혈전 이후 농민군 주력부대가 남쪽으로 퇴각하던 시기 대둔산을 근거지로 유격 항전을 개시한 부대가 있었으니 금산, 진산, 고산 등지의 농민군들이었다. 이들은 우금티 전투 이전 를 맞아 금산, 진산 등지에서 치열한 매복 기습전으로 맞섰으며 일본군이 우금티로 몰려간 이후에는 관군이 몰려오면 사라졌다 떠나가면 다시 나타나는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이 대둔산에 근거지를 마련한 것은 12월 초순(양력) 퇴각하는 농민군 주력부대가 논산에서 전투를 치를 즈음이었다. 이로부터 이듬해 2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70여일에 걸친 대둔산 항전이 시작된 것이다. 대둔산은 천 길 낭떠러지 허다하고 기암괴석 즐비한 험준한 바위산이다. 대둔산 석도골 미륵바위 정상에 근거지를 마련한 항전 지도부는 수시로 산에서 내려가 진산,..
최상돈의 4.3순례, 애기동백꽃의 노래
최상돈의 4.3순례, 애기동백꽃의 노래
2023.01.27최상돈,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이덕구 산전에서였다. 가수라는데 영 그리 보이지 않았다. 영락없는 싸움꾼, 그것도 단도직입을 일삼는.. 하여 그에 대한 첫인상은, "쩌 냥반 진짜 가수 맞어?" 헌데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청해 들었던 노래, 이덕구 사령관과 그의 동지들, 한라산 빨치산들이 이별하는 장면을 그렸다는 그 노래가.. "돌아서다가 돌아보았네~" "살아 만나자 약속하였네~" 하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던 빨치산들의 그 이별 장면이 너무나 선명히 떠올라 절로 숙연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어 골백 번쯤 들어 흥얼거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가수 최상돈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더불어 '산오락회'도 알게 되었으니 이 노래로 하여 예기치 않은 새로운 인연들이 ..
잡솨보셨소? 새끼회라고..
잡솨보셨소? 새끼회라고..
2023.01.23여기서 새끼는 아기돼지를 말한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어미돼지 태중에 든 새끼가 되겠다. 본래는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다. 요즘은 생후 한 달이 안 된 갓 태어난 녀석들이 희생된다고도 하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돼지의 운명인 게지, 슬퍼 말어라 아기돼지야. 일찍 죽어 빨리 환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매우 느린 만연체 소설 '화산도'를 읽으면서, 참으로 술 좋아하고 한 잔을 먹어도 맛나게 먹는 주인공 이방근과 함께 많이 마셨더랬다. 그이가 마시면 나도 마시고 그이가 취하면 나도 몽롱해지는 하나 됨의 경지를 맛보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머릿속 깊이 각인된 술자리가 있었으니 '새끼회' 로 속 푸는 장면이 그렇다. 어떤 맛일까? 궁금..
전사의 길, 후회가 없다
전사의 길, 후회가 없다
2023.01.13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잠행에 들어간 전봉준 장군은 사흘 만인 12월 28일(양력)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하루 앞선 27일 태인 종송리에서 김개남 장군이 피체되었다. 전봉준은 나주로 김개남은 전주로 압송되었으며 전주로 압송된 김개남은 새로 부임한 전라감사 이도재에 의해 즉결 처형되었다. 그로부터 10여일 후에는 손화중 장군이 고창에서 피체되었다. 이즈음 농민군들의 형편은 어떠했을까? 부대는 해산되었으되 돌아갈 곳이 없었다. 시시각각 추격해오는 조일 연합군, 앞을 막아서는 민보군이 기승을 부렸다. 내내 숨을 죽이고 사세를 엿보던 양반과 부호들이 토벌대를 조직해 농민군 살육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조일 연합군, 특히 조선 실정에 밝지 못한 일본군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 농민군을 색출하고 살육하는데 앞장섰다..
바람이 불고 새가 날면..
바람이 불고 새가 날면..
2023.01.01어느 날 길을 가다 만난 황새 떼, 황새 수십 마리 하늘 높이 떠서 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 가히 장관이었다. 사진기를 집어 들었으나 메모리카드가 없다. 차속을 다 뒤졌지만 한 개가 없다.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발 달렸는갑다. 아쉬운 대로 전화기를 꺼내든다. 이 억센 가슴 어디에 쓰랴.. 황새 떼 오기 전에 돌아가리라~~ https://youtu.be/j_T-QoeXEnw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챙겨 다시 황새 떼를 찾아 나선다. 황새 떼는 간 데 없고, 뜬금 없는 쇠부엉이를 만났다. 몸땡이 구석구석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고 잊힌 줄 알았던 탐조 본능이 되살아온다. 그리하여 나는 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을 새와 함께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쟁기촌 논배미 아래 온통 얼어붙은 저수지, 아직 얼지 않..
눈 깊은 입암산에서..
눈 깊은 입암산에서..
2022.12.26우금티 혈전 이후 전봉준 장군은 원평, 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1년여간의 농민전쟁을 마감하고 잠행에 들어간다. 입암산 아래 천원에서 하루를 묵은 장군 일행은 산을 넘어 입암산성에 들어 하루를 머무는데 12월 25일(양력)이 그날이다. 호남벌에 큰 눈이 내렸다. 그중에서도 정읍에 눈다운 눈이 내렸으니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었던 탓이다. 12월 24일, 나는 지금 산으로 간다. 내일 오후면 많은 눈이 녹아버리게 될 것이고, 눈길은 사람들의 발길에 어지러워질 것이기에.. 나선 김에 장군님 길앞잡이도 해드리고.. 정읍 쪽에서 바라보는 입암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성채를 연상케 한다. 굳이 성벽을 쌓지 않아도 됨직한 가파른 산세지만 산성 북문 좌우로는 아직도 기나긴 성곽이 남아 있다. 정면의 갓바위가 오늘의 목적지 ..
피노리 가는 길
피노리 가는 길
2022.12.2112월 5일(음력 11월 9일) 동학농민혁명 최대의 격전 우금티 전투가 개시되었다. 나는 장성 갈재 아래 입암에 서 있다. 잠행에 나선 전봉준 장군이 스며들었던 입암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무 말이 없다. 그이의 발자취를 거꾸로 밟아 올라간다. 곧게 뻗은 국도를 달린다. 태인, 원평, 전주 스쳐 삼례, 여산, 논산, 노성 지나 이인.. 북진하는 농민군이 지났던 고을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곰티재로 향한다. 11월 22일 1차 공주전투, 농민군은 우금티에 앞서 곰티재를 넘어 공주를 공략하고자 했다. 농민군 복장의 전봉준 장군은 붉은 덮개가 휘날리는 커다란 가마 위에서 열정적으로 전투를 독려했다. 곰티재 너머 공주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산세, 농민군이 치고 올랐을 남쪽 사면은 몹시 가팔라 얼마..
눈 내린 방장산에서..
눈 내린 방장산에서..
2022.12.19간밤 눈이 꽤 내렸다. 날이 말짱 개여 아닌 보살 하고 있지만 눈은 분명 새벽녘에야 내렸다. 오랜만에 내린 눈다운 눈, 눈 내린 날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산에 가는 것 말고.. 하여 나는 산으로 간다. 신기 마을 지나 산으로 드는 길, 더 이상 차가 오르지 못한다. 네 바퀴가 다 헛도니 달리 도리가 없다. 차가 자동으로 뒤로 돌면서 고랑에 빠졌으나 4륜 구동의 위력으로 가볍게 빠져나왔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간다. 용추폭포 방면 들머리, 장담하건대 이 길을 거슬러 방장산을 오를 사람 아무도 없다. 눈 없는 낙엽길에서도 일보 전진, 이보 후퇴를 거듭하며 힘을 쏟아야 하는 급경사 직등길인 데다 접근이 쉽지 않은 탓이다. 오늘 방장산은 동서종주가 아니라 남북을 횡단하는 숫눈길이다. 눈길은 아무래도 전인미답의..
동학농민혁명 완산 전투
동학농민혁명 완산 전투
2022.12.175월 30일(음력 4월 26일) 농민군은 용머리고개 아래 전주 삼천까지 진격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이튿날, 농민군들을 장꾼들과 함께 무혈입성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무장, 영광 등지로부터 사잇길로 사방으로 흩어져 오던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함께 섞여 미리 약속이 정하여 있던 이날에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미 다 시장 속에 들어왔었다. 때가 오시(오전 11시 - 오후 1시)쯤 되자 장터 건너편 용머리 고개에서 일성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 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헤어져 달아났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
선운사, 붉은 동백의 유혹
선운사, 붉은 동백의 유혹
2022.12.14밤새 눈이 나렸다. 소리도 없이 나렸다. 나는 눈을 개보다 더 좋아한다. 나무 보일러 장작 넣고 눈 얼른 치우고 선운사로 달려가니, 여전히 눈이 나리고 있다.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 일주문 지나고 부도전 지나 극락교 건너 절 마당 돌아 나와 담장을 끼고돌아 숫눈길을 헤쳐간다. 선운사 동백은 4월에 꽃을 피우는데 하여 춘백이라고들 하는데.. 눈 속에 피었다. 딱 한 그루.. 눈에 눈이 팔린 데다 붉은 동백의 치명적 유혹까지 동백나무 아래서 시간을 뭉개다 보니 아뿔싸 기차 시간 늦겠다.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통할 듯한 문을 지나 500 미터는 족히 뛰었다. 단식 뒤끝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나풀나풀~
완산칠봉,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완산칠봉,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2022.12.07완산칠봉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내칠봉, 외칠봉을 합하여 봉우리가 도합 열세 개. 고만고만 오밀조밀한 봉우리 가운데 장군봉(해발 186m)이 최고봉이다. 완산칠봉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용머리고개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용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용머리고개는 전주에 입성한 농민군, 농민군을 뒤쫓아온 관군 모두가 넘어야 했던 전주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쇠락한 고개, 고개 좌우에 폐건물, 문 닫은 가게들이 즐비하다. 농민군이 용머리고개를 넘어 전주성으로 들이치던 당시의 상황을 오지영의 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무장, 영광 등지로부터 사잇길로 사방으로 흩어져 오던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함께 섞여 미리 약속이 정하여 있던 이날에 수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