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먹는이야기
입맛을 일깨울 강력한 봄내음, 머위무침.
입맛을 일깨울 강력한 봄내음, 머위무침.
2010.03.24사방천지에 풀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눈이 오건 비가 내리건 봄은 여지없는 봄이다. 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작년 밭농사 풀을 못잡아 많이 망쳐버렸기에 올해는 기필코 풀의 기세를 꺾고야 말리라는 각오를 날카롭게 세워야 할 때이다. 묵어버리다시피 한 철쭉밭을 어제 오후부터 매기 시작하였다. 아직은 뭐 손댄 표시도 안나고 언제 끝을 볼 지 모를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다. 오전 내 밭을 매고 나니 몸땡이는 나른하고 입 속이 텁텁한게 요상시랍다. 뭔가 입맛을 일깨울 강력한 봄내음이 필요하다. 며칠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일을 실행에 옮길 때이댜. 집안 곳곳에 돋아나기 시작한 머위잎을 무쳐먹기로 한다. 막 돋아나기 시작한 어린 잎이라 생으로 그냥 무쳐먹기 좋을 때이다. 며칠 전 엄마의 지도를 받아 겉저리 맛나게..
섣달 그믐밤 벌교 꼬막맛.
섣달 그믐밤 벌교 꼬막맛.
2010.02.17전라도 사람들은 꼬막을 참 좋아라 한다. 그 중에서도 벌교 참꼬막이라 하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전라북도의 산골마을 순창 사람들이 꼬막장사를 하였다. 고창이 팔고 있는 폰깡(제주밀감)과 교환하여 떨어진 할당량 중 한차데기를 집에 가져와 섣달 그믐밤 식구들과 둘러 앉아 삶아먹었다. 꼬막을 닥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가지에 꼬막을 담아 적당히 물을 붓고 빡빡 문질러 서너번 행궈낸 다음 소금물에 담궜다 꺼내면 된다. 내가 하였다. 너무 과하게 삶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야들야들하면서도 쫄긋함이 살아있는 꼬막맛을 볼 수 있다. 물을 끓인 후 찬물을 살짝 부어 온도를 낮춘 다음 꼬막을 투입하고, 꼬막이 한두개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건져내서 찬물을 두르면 된다 했다. 그대로 했더니 잘..
과정과 절차가 필요한 꿩 한마리 먹기.
과정과 절차가 필요한 꿩 한마리 먹기.
2010.02.13아끈다랑쉬에서 내려오니 기다렸다는 듯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굵어진다. 이제 오름은 그만 오르라는 한라산의 뜻인 듯.. 다소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멀지 않은 교래리로 향한다. 지나다니면서 봐두기만 했던 꿩요리를 먹어보기 위함이다. 제주도에서 먹어본 음식 중 가장 격식있게 먹어본 고급요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과정과 절차에 따라 먹는 이른바 꿩 한마리 코스 요리. 홍합, 꽃게, 쏙, 양애, 꿩뼈다귀 등이 푸짐하게 들어간 국물을 끓인다. 생으로 먹는 가슴살과 모래집 가슴살 육회에 소주 한잔 하며 국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살짝 데쳐먹을 꿩고기를 얄포롬하게 썰어놓았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각종 야채를 넣고 휘휘 젓는다. 이제 샤브샤브를 먹을 시간이다. 약 1초간 두번 담갔다 먹으니 가장 알맞게..
입에서 살살 녹는 나로도 특산 삼치회
입에서 살살 녹는 나로도 특산 삼치회
2009.12.141년을 벼려온 나로도행, 함께 한 나로도 출신 돌총은 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침을 튀긴다. 나로도에 얼킨 어린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그네의 눈에 나로도는 그저 평범한 남해의 한 섬일 뿐이다. 날은 차고 바람이 심하다. 섬 구경을 마치고 나로도항 어판장에 가서 횟감을 고른다. 나로도에 왔으니 삼치회를 먹어야 한단다. 꽤 크다. 약 3kg, 3만원이다. 나로도에서나 가능한 가격이라고 강조해마지 않는다. 고급 호텔 주방으로 다 간다나 어쩐다나.. 익숙한 칼솜씨로 즉석에서 각을 뜬다. 양이 많아 반은 바로 먹울 수 있게, 나머지 반은 잘 포장하였다. 삼치의 육질은 눈으로 보기에도 달라보인다. 고등어회와 유사하면서도 좀 더 찰지다. 다양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다. 간장에도 찍어먹고, 고..
전주막걸리, 아낌없이 주련다.
전주막걸리, 아낌없이 주련다.
2009.09.12전주에서 잘 나가는 막걸리집들은 대개 자정이 넘기 전에 문을 닫는다. 잘 되는 집들은 그날 팔만큼만 장을 보고, 장 본 안주거리가 떨어지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벽녘까지 문을 열어놓은 집들은 장사가 잘 안되는 집들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삼천동 막걸리 골목의 용진집, 서신동 옛촌 막걸리 등이 유명하지만 전주시내 곳곳에 숨어 있는 제대로된 막걸리집들은 한둘이 아니다. 안주목록이 규격화되어 마치 안주공장에서 나오는 느낌이 드는 막걸리집이 있는가 하면, 그날그날 장보기에 따라, 철에 따라 안주가 바뀌는 집들이 있다. 집집마다 독특한 안주가 있을 것이고, 술꾼들의 입맛도 저마다 다르니 딱 꼬집어 "이 집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안주 말고도 분위기 또한 술맛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
삼겹살의 진수, 가시리 삼겹살
삼겹살의 진수, 가시리 삼겹살
2009.09.07따라비오름에서 내려오니 가시리 사람 석대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손 한번 잡아보고 바로 술 한잔 하러 간다. 석대를 만나면 늘 가는 가시리 나목도 식당. 돼지갈비를 주문하였으나 이미 떨어지고 없단다. 한동네 사는 친분과 인척관계를 내세워 은근히 청을 넣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몰차기 그지 없다. "없수다게" 여러차례 이 집에 와봤지만 갈비는 한대도 뜯어보지 못하였다. 삼겹살을 시켰다. "이것이 삼겹살이다"라고 과시라도 하듯 두툼하게 썰어놓은 삼겹살이 위풍도 당당해보인다. 고기를 썰고 접시에 담는 손길에 그 어떤 기교도 포함되지 않은 생긴 그대로의 삼겹살이다. 굽는 것 역시 아무런 기교가 필요없다. 그저 적당히 익으면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르면 된다. 다만 먹는데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가시리 사람..
빙떡
빙떡
2009.09.02이중섭 미술관으로 오르는 길을 따르다 보면 이중섭 화가가 거주했던 집이 먼저 나온다. 그 집 마당 한켠 작은 쉼터가 있고 거기에서 제주도 음식을 만들어 파는 분들이 있다. 전문 상인이 아닌 이 마을 주민들로 토요일과 일요일만 나와 장사하신단다. 바로 이분들이다. 얼마나 팔 것인가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이는 여유로운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제주 빙떡, 메밀로 만든 반죽을 지져 무채를 말아 만든 떡이다. 담백한 맛이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싱겁다. 간장을 찾았더니 그냥 그렇게 먹으란다. 심심하고 담백한 맛, 바로 그맛이 빙떡 본연의 맛이라고 한다. 하나에 천원이다. 좋은 먹을거리를 보니 막걸리가 당긴다. 어제 그만큼 먹고 또 술이 당기는 내 속은 진짜 속이 없다. 막걸리 맛이 참 좋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
고창 천안문 짬뽕
고창 천안문 짬뽕
2009.08.23세 군데 술자리를 전전하며 부어댄 술. 하루가 지났음에도 술기운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숙취의 고통. 이런 날은 쓰린 속을 달랠 강력한 국물이 절실하다. 천안문 짬뽕이다. 정확히 말하면 삼선짬뽕. 고창에서 짬뽕을 가장 잘하는 집이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빨간 국물에 담긴 해산물이 요란스럽지 않게 적절하다. 적절하게 매움한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천안문 짬뽕을 먹기 시작한 지 10여 년, 한결같은 맛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이 고창에 가까울 때면 천안문 짬뽕을 찾는다. 숙취를 풀 목적이 아니라면 이과두주 한병 주문해서 곁들이면 매우 좋다. 내가 짬뽕을 먹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그전까지는 짜장면이 가장 맛있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된장 지지고, 호박잎 데치고..
된장 지지고, 호박잎 데치고..
2009.08.11요즘처럼 무더운 날씨, 입맛 떨어지고 몸이 쳐질 때에는 집에서 먹는 밥이 좋다. 더우기 일을 막 마친 뒤 땀이 줄줄 흐르는 상태라고 하면 빤쓰만 남기고 옷 훌훌 벗어던지고 활보할 수 있는 집이 좋다. 집안 곳곳에 굴러다니는 양파 벗기고 이웃집 울타리에서 넘어온 호박잎 따고 텃밭에서 고추 몇개 따다 점심 밥상을 준비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요즘 좋은 소금기를 섭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정제염이 아닌 천일염이 콩과 어우러져 발효, 숙성 단계를 거쳐 완성된 된장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된장 지지고 호박잎 데치고 매운고추 된장에 푹 찍어 밥먹을 준비를 한다. 된장은 투가리에 물 부어 된장 듬뿍 풀고 냉장고 뒤져 넣을만한 것 몽땅 집어넣고 지지면 된다. 표고버섯과 마늘 다진것이 눈에 띄어 양껏 ..
더위를 무찌르는 강력한 신맛, 서귀포 하귤.
더위를 무찌르는 강력한 신맛, 서귀포 하귤.
2009.08.10서귀포에서 선물이 왔습니다. 한미FTA 저지 제주도 원정 투쟁이 맺어준 인연 덕입니다. 상자를 여니 최홍만 주먹만한 귤이 들어 있네요. '하귤'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나스미깡'이라고 하더군요. 작년 여름에 열어서 겨울을 훌쩍 넘겨 올 여름에 따먹는 거라 합니다. 신맛이 엄청납니다. 크기도 크기지만 껍질이 두터워서 웬만한 완력으로는 잘 벗겨지지 않습니다. 연장을 쓰던지 강한 손아귀 힘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연장을 써서 벗겨봤습니다. 이렇게 찍어놓으니 일반 감귤과 다름없어 보이는군요. 가늠이 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200ml짜리 우유입니다. 한입 물어봅니다. 제 입이 작은 입이 아닌데 입을 있는데로 쫙 벌려야 들어갑니다. 제절로 눈이 감기고 몸서리쳐지도록 신맛이 납니다. 제 등쌀에 억지로 먹은 저희 각..
옻닭
옻닭
2009.07.26고창사람들은 옻닭을 즐겨먹는다. 닭요리의 최고봉은 옻닭이라고들 한다. 식당에서 만들어 파는 옻닭은 잘 쳐주지 않는다. 식당에서는 중국산 옻을 쓴다고도 하고, 싱겁다고도 한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옻을 넣고 한나절 넘게 푹푹 달여 끓인 옻닭이라야 제맛이 난다고들 한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 몇이 모여 먹는 것으로 화제가 옮겨가다 회가 동하면 흔히들 해먹는 것이 옻닭이다. 옻닭은 고기도 고기지만 진한 국물맛이 그만이다. 내가 처음 맛 본 옻닭은 딸기농사 짓다 지금은 서울로 떠나버린 용희형이 끓인 것이었다. 옻이 오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호기심 삼아 한점 먹어본 옻닭의 맛은 환상 그 자체였다. 세상에 닭고기가 이렇게 맛날 수도 있구나 하는 떨칠 수 없는 맛의 유혹. 진한 국물까지 몇대접 먹고 나니 세상이..
'까마치'를 아시나요?
'까마치'를 아시나요?
2009.07.07가물치를 우리 동네에서는 까마치라고 합니다. 산모에게 고와 먹이면 좋다고 하지요. 디스토마가 우려스럽지만 회로 먹으면 기가 막힙니다. 막걸리에 주물러서 무쳐먹는 '회평'도 좋구요. 큼직한 놈 한 마리 썰어 놓으면 서너 명이 소주 댓 병쯤 금방 깝니다. 자연산 까마치는 가격이 좀 나갑니다. 방죽 가상에 까마치 두 마리 어슬렁거립니다. 내외간일까요? 봄 가뭄으로 바닥이 거북이 등 껍닥처럼 갈라졌습니다. 까마치는 방죽이 완전히 말라도 진흙 속에 박혀서 산다고 하지요. 물 밖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딸래미 산후조리시키러 서울 가는 친정엄마, 비료푸대에 물 없이 담아가도 까마치는 삽니다. 요즘은 까마치로 산후조리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뭔가 새까만 무리가 따라다니네요. 까마치 치어들입니다. 가만히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