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먹는이야기
장흥 회진 된장물회
장흥 회진 된장물회
2009.06.22장마가 시작되었다 한다. 예년보다 이른 장마다. 밤사이 꽤 많은 비가 내리고 다시 내리고 있다. 그간 가물랐던 땅을 충분히 적시고 남을 양이다. 엊그제 심은 철쭉에게는 더없이 좋은 단비가 되었다. 이제 그만 와야 된다. 비가 계속된다면 수확이 한창인 복분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비가 내리니 막걸리 생각이 난다. 술 생각이 떠오르면 안주 생각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지난 4월 장흥에서 먹은 회진포 물회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날 날씨는 달아오른 선거 열기만큼이나 무더웠다. 누렇게 익은 보리가 물결치고 있었고 양파 수확이 한창이었다. 고창보다는 달포 가량이나 철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진포 물회는 된장을 풀어넣은 국물에 그날그날 잡힌 잡어를 가시 째 썰어 넣고 여기에 잘 익은 열무김치를 주된 재료로 첨가하여..
옻순 데쳐먹기
옻순 데쳐먹기
2009.05.01옻닭을 처음 먹고 겪었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얼굴을 제외한 온 몸뚱아리가 갑옷을 입은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엄청난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어댄 자리에서는 진물이 흘렀다. 보건소 주사를 맞고도 가라앉지 않던 증상이 밤나무 삶은 물로 목욕을 수 차례 하고 나서야 비로소 완화되기 시작하였고 그 후로 나는 옻 오른 데는 밤나무 삶은 물이 좋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나는 지금 개옻이 올라 있다. 뒷낭깥에서 대나무를 베어내다 개옻나무와 수차례 접촉한 데다 쭉나무 순을 꺾다 개옻순을 함께 꺾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개옻을 거메나무라고 하고 개옻이 오른 것을 '거메올랐다'고 한다. 눈 주위, 귓불 등 얼굴의 연한 부위가 빨갛게 부풀어 올라 영락없이 술 한잔 걸친 몰골이다. 옻..
땅두릅은 어떤 맛일까?
땅두릅은 어떤 맛일까?
2009.04.22산에서 나는 약초를 잘 아는 친구가 있다. 작년 이맘때, 두릅 참 맛있더라고 두릅 좀 따오라 했더니 두릅보다 더 맛난 것 주겠다며 보여준 것이 땅두릅이다. 감탄사까지 늘어놓으며 얼마나 맛나게 먹었던지.. 집에다 심어놓고 뜯어먹으려고 모종까지 몇 포기 얻어다 집터 으슥한 곳에 심어두었었다. 땅두릅, 독활이라고도 하고 한방약재로, 민간 치료제로 널리 쓰인다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봄철 좋은 안주거리일 따름이다. 새싹이 씩씩하게 올라오는 것은 확인하였으나 언제, 어떻게 뜯어먹는지를 몰라 방치해두었더니 너무 자라 버렸다. 그 친구한테 전화하였다. 땅을 좀 헤작거리고 밑둥을 베어내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맵저를 한 10센티 두툼하게 덮어두라 한다. 그렇게 해두면 더 많은 순이 올라오고 연한 순을 먹을 수 있다 한..
엄나무순(개두릅) 데쳐먹기
엄나무순(개두릅) 데쳐먹기
2009.04.18가시가 사나워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던 나무, 그래서 문지방에 걸어놓기도 했다. 엄나무의 새순은 참두릅 못지 않은 향취가 있다. 쌉소롬한 향은 오히려 더 강하다. 줄기는 약재로도 쓰는데 닭 삶을 때 생가지를 꺾어 넣으면 국물이 파릇해져 보기에도 좋고 독특한 향취가 맛을 둗군다. 시골 동네에는 거목이 되어 울타리를 지키는 엄나무가 종종 보인다. 동네 앞 낭깥에 엄나무가 자라는데 아직은 나만 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누구랑 먹을까 고민하는 차에 영태한테서 "일 쩨까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다듬어놓으니 참두릅과는 자태가 사뭇 다르다. 막걸리는 빠질 수 없는 구색. 일하기 전에 한잔 먹고 시작하자고 참부터 먹는다. 혼자 사는 영태가 잘 데쳤다. 젓가락보다는 부모님이 주신 손가락이 좋다. 눈까지 지긋이..
아랫집 할매 파지를 주셨다.
아랫집 할매 파지를 주셨다.
2009.04.14우리 아랫집 여든아홉 잡수신 할매가 사신다. 작년 이맘때 백수를 아깝게 못 채우신 하나씨 먼저 보내고 혼자 되셨다. 아들네들도 근방에 살면서 자주 오고 기력도 쟁쟁하셔서 다른 문제는 없다. 다만 귀가 꽉 막혀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루 한 번은 오셔서 당신 하고 잡은 말씀만 마구 해대고 가신다. 뭐 주로 "말캉 쓸어라" "대문 앜으 좀 치워라".. 하루 한번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서운하다. 며칠 전 해장 일찌감치 파지를 갖고 오셨다. "아들 오먼 줄라고 무쳤는디 자네도 좀 먹어보소" "자네 파지 안 좋아헝가" 집에서는 도통 밥 먹을 일이 없는지라 막걸리에 콩국수 먹는 자리에 싸들고 가서 풀어놓았다. "뭔 할매 손맛이 아직도 이리 좋다냐" 순식간에 다 먹어부렀다. 우리보다 우리..
참두릅 데쳐 막걸리 한잔.
참두릅 데쳐 막걸리 한잔.
2009.04.13요즘 방장산에는 두릅순을 따러 다니는 사람들로 임도가 빡빡할 정도라고 한다. 여간 부지런하거나 자기만 아는 비밀스런 창고가 있지 않는 한 자연산 두릅을 맛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른 새벽 이슬을 털며 올라간 두릅밭이 이미 다른 사람이 지나간 다음일 때의 허탈한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두릅을 따러 갈 때면 행여 다른 사람 손을 타지는 않았을까 하고 가슴이 뛴다. 가시 사나운 두릅나무 사이를 헤집어 순을 따 돌아오는 길은 향긋 쌉싸름한 맛도 맛이지만 남 먼저 부지런내서 따냈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올 봄, 그간 때를 맞추지 못하거나 덜 부지런하거나 하여 한번을 제대로 따먹어보지 못하던 두릅을 연이틀 따다 데쳐먹고 구워먹고 복이 터졌다. 처가집 장모님 손끝을 거쳐 알맞게 데쳐내고....
취중에 찍어놓은 부침개, 날이 흐리니 다시 생각난다.
취중에 찍어놓은 부침개, 날이 흐리니 다시 생각난다.
2009.03.31늘 바쁜 일손을 놀려야 하는 농촌의 여성농민들은 집에 있는 재료만 가지고도 재빨리 음식을 빚어내는 마법사같은 손들을 가지고 있다. 석양녘에 만난 친구 집에 들어가 술추렴이 시작되었다. 수박 심을 비닐하우스에 갔다는 친구 각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대충 라면 끓여 시작한 술이 제법 거나해질 무렵 친구 각시가 들어온다. 안주도 없이 무슨 술을 먹느냐더니 손만 대강 씯고 불과 10여분만에 만들어낸 안주가 근사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더니 색감이 죽인다. 맛을 보기도 전에 이미 색깔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취한 눈에도 그냥 먹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사진기를 챙겨 박아두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냉장고에 있던 솔(부추)을 꺼내는 순간 친구가 한마디 하였다. "어이 그거 믹서기에 갈..
국물도 남김없이 먹어 치운 갈치 호박국
국물도 남김없이 먹어 치운 갈치 호박국
2009.01.10'맛난 것 찾아먹기'는 여행하면서 겪는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술을 좋아하고 술만큼이나 안주를 챙기는 사람들은 먹는 것 자체를 여행의 목적으로 삼기도 한다. 더욱이 제주도까지 걸음을 한 바에야 맛난 것 챙겨 먹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두고두고 후회스러울 것이다. 제주도를 찾은 이튿날 다랑쉬오름을 겨냥하고 나선 길, 점심으로 먹은 갈치 호박국의 시원한 맛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서귀포 시내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서 찾아간 하정 식당은 갈칫국으로 이름이 난 집인 모양이다. 갈칫국을 시켜놓고 한치물회로 먼저 입가심을 하였다. 겨울에 먹는 물회의 시원함 또한 별맛이다. 빙초산을 살짝 치니 맛이 더욱 좋아진다. 드디어 갈치 호박국이 나왔다. 멀건 국물에 갈치 토막, 퍼대기 나물(배추 겉잎) 그리고 ..
조개구이와 해물라면에 해 떨어지는것도 몰랐다.
조개구이와 해물라면에 해 떨어지는것도 몰랐다.
2008.11.03도연맹 처실국장들 용케 한자리에 모인날 단합대회를 빙자하여 급하게 향한곳. 지평선으로 해가 떠 바다로 떨어진다는 김제 망해사. 우선 소주 한잔 하고 해떨어지는건 찬찬히 보자고 해놓고 해떨어지는건 고사하고 망해사 그림자도 보지 못하였다. 심포항 조개구이에 한잔 간단하게 하자는 술이 해넘어가는지도 모르게 길어져버린 탓이다. 심포항은 동진강 하구로 예전에는 바다였으나 이제는 새만금 방조제에 막혀 담수호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래도 아직은 물도 파랗고 보기에는 여전히 바다다. 멫조금이나 갈까? 걱정이 앞선다. 조개구이를 시키니 한상 가득 술상이 차려진다. 생으로 먹을것 생으로 먹고 구워먹울것 구워먹으니 소주병이 딸린다. 백합은 생으로 먹는것이 더욱 좋고 구워먹는 키조개, 대하 또한 먹을만하다. 낙지도 구워먹..
간도 안봐서 맛이 한개도 없는 김치
간도 안봐서 맛이 한개도 없는 김치
2008.10.27어스름 저녁에 아랫집 아짐이 뭘 싸들고 숨가뿌게도 오신다. 아짐이라 하나 연세가 80이 넘은 할매다. 누가 지꺼리를 가져와서 담갔다고 한보새기 가져오셨단다. "간도 안봐서 맛이 한개도 없을 것이여"라는 말씀을 남기고 또 부리나케 가신다. 방에 들어와 열어보니 군침이 확 돈다. 씻지도 않은 손으로 집어먹어보이 웬걸 간이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 할매들 말짱 거짓말중의 하나 "간도 안봤어". 또 하나 "맛이 한개도 없어". 그러나 간도 잘 맞을 뿐더러 맛도 겁! 나게 좋다. 밥 생각이 왈칵 없어 고민하던 차였으나 구미가 동하여 얼른 압력솥에 밥을 안친다. 하도 간만에 하는 밥이라 다소 질게 되었다. 김치 걸쳐 먹다보니 한그릇이 금새 비었다. 한그릇 더. 과식하고 말았다. 오늘 저녁 돌아가신 어머니가 몹시..
홍어
홍어
2008.10.16본래 홍어를 먹지 못했습니다. 홍어 특유의 맛과 향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홍어가 먹을만하다는 감이 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싱싱한 홍어의 비린내가 거북스럽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한 2년전의 이야기. 때를 같이하여 주 활동무대가 전주로 옮겨져 전주시내 홍어 잘하는 집 두세곳(탕이 좋은 집, 찜이 좋은 집, 국내산 홍어를 쓰는 집)을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고 지금은 홍어를 매우 즐기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기회가 닿을때마다 여기 저기서 홍어를 먹어보았는데 아무래도 전주의 홍어맛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산포의 홍어가 다소 어중간한 맛으로 대중화되어 있다면 전주의 홍어는 여간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먹기가 다소 사나울 수도 있다 할 겁니다. 또 목포의 유명한 홍어집들마냥 엄청 비싸지도 않고 ..
된장 지지고 호박잎 찌고 청양고추 서너개면 한끄니 잇댄다.
된장 지지고 호박잎 찌고 청양고추 서너개면 한끄니 잇댄다.
2008.10.15드문 일이긴 하지만 집에 있는 날이면 각시 공부방 나가고 혼자서 낮밥을 먹게 된다. 무더위에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난 뒤에는 만사가 귀찮아 밥 먹는 것조차 힘겨운 노동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바로 이러한 때 맞춤인 밥상이 있으니 바로 호박잎 쌈이다. 까실한 터럭이 살아있는 호박잎이면 더욱 좋다. 된장 되직하게 지져 발라먹으면 흘린 땀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매운 것을 매우 좋아하는 터라 청양고추 뚝 끊어 얹어 먹거나 된장 찍어 비어 먹으면 입속이 개운해지는 것이 그지없이 좋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올여름 집에 있는 날이면 이렇게 끼니를 잇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