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
저동 일출, 섬을 떠나다.
저동 일출, 섬을 떠나다.
2021.09.012박 3일이 4박 5일이 되었다. 울릉도에서 처음 맞는 마지막 일출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때 맞춰 일출 보겠다고 부지런히 걷고, 북저바위와 각을 맞추느라 왔다 갔다 했다. 아침을 먹는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를 두고 고민하다 찾아간 집에서 우리는 이틀 후 확진자가 될 손님하고 함께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알게 될 일이고, 밥은 잘 먹었다. 2박 3일이 4박 5일이 되고 일주일 후에 다시 일주일 휴가, 참으로 호화찬란한 여름 뒤끝이로다. 시간이 남는다. 우리는 관해정 후박나무 그늘 아래 앉아 오래도록 쉬었다. 앉아 쉬자니 흑비둘기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처음에는 안 보이던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후박나무 열매는 녀석들의 주식이나 다름없으니.. 흑비둘기만이..
지새지 말아다오 저동의 밤아
지새지 말아다오 저동의 밤아
2021.08.31아침이 밝았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 잦아들었다. 촤르륵 촤르륵~ 돌밭을 구르는 파도소리 차분한데 오늘도 배는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린다. 내일은 들어오겄지, 암만.. 학포는 먹을 것이 없다. 나리분지 씨겁데기술로 목을 축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석포 독도 전망대에서 독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11년 전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죽도를 봤는데 관음도로 오인했다.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거대한 와불, 관음보살을 떠올렸던 것이다. 석포 일출 일몰 전망대에서 관음도는 일찍이 '방패도'라는 이름으로 수토사의 기록에 나타난다. 관음도는 총독부가 제작한 조선지형도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본래 이름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울릉도의 지명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다양한 경로를 거치게 되는데 토속 지명이 ..
우산국은 어디에?
우산국은 어디에?
2021.08.30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대풍구미(대풍감)의 바람과 압도적인 풍경, 하늘을 날던 매까지 모든 것들이 발목을 잡았다. 태하령 옛길을 걸어 넘으려던 계획을 바꿔 버스로 이동한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포항에서 배가 출항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타고 나갈 배가 없어진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사동을 지나 도동으로 가 차를 빌렸다. 차는 저동에 있었다. 이제 먹어야 했다. 꽁치 물회를 먹자고 찾은 집, 울릉도식 꽁치 물회는 물이 없다. 그리고 전혀 비리지 않고 맛있다. 예전 울릉도 사람들은 강고배를 타고 나가 손으로 꽁치를 잡았다 한다. 그 시절로부터 유래된 음식이니 맛이 깊을 수밖에 없겠다. 저동 어민식당, 이 집은 울릉도에서 우리가 두 번 찾은 유일한 식당이다. 뒤늦은 후회지만 마지막 날 아침에도 우리는..
대풍구미(대풍감)
대풍구미(대풍감)
2021.08.292박 3일 울릉도 마지막 날. 우리의 계획은 대풍감 일대를 둘러보고 태하령 옛길을 넘어 남양까지 걸어가 버스 타고 사동으로 이동하여 배를 타는 것이다. 6시 30분, 꽤 서둘러 숙소를 나선다. 밤사이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 그쳤다. 구름 많은 좋은 날씨다. 흠뻑 젖어 빨아둔 옷과 신발도 보송보송 잘 말랐다. 조짐이 좋다. 대풍감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우선 태하 등대로 올라야 하는데 등대 인근까지 데려다주는 모노레일은 운행을 하지 않는다. 일대가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다. 이 역시 지난해 태풍 때문이다. 걸어서 오른다. 가파른 길이지만 거리가 짧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목적지는 향목 전망대, 등대와 맞닿아 있다. 전망대에 이르니 바람이 분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한 바람이 바다로부터 절벽을 타고..
대황토구미, 태하
대황토구미, 태하
2021.08.26독도에 다녀온 우리는 오징어 내장탕으로 속을 구슬렸다. 탕이라기보다는 국이라 할 만한데 이걸 우리 동네 사람들이 끓였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울릉도 사람들은 오징어 내장탕과 꽁치 물회로 속을 푼다 했다. 내일은 꽁치 물회를 먹어보자 다짐한다. 행남 해안길을 걸어 도동으로 가려 했으나 비가 내린다. 비야 무릅쓰면 되겠지만 지난해 태풍으로 끊긴 길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울릉도 해안지대는 너덜너덜하다. 해안도로는 사면팔방 곳곳이 공사 중이며 사동, 남양, 태하 등 서쪽 지역 포구들에는 지난해 태풍 피해의 처참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울릉도는 한탄한다. 태풍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고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때 울릉도는 비로소 태풍 맞을 준비를 한다고.. 울릉도는 그저 독도를 생각할 때나 덩달아 떠올..
독도
독도
2021.08.26나리동의 아침이 밝았다. 밤사이 비가 오락가락, 이따금 몰아치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렸다. 날이 밝았으나 날씨는 여전하다. 낮게 드리운 구름이 분지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 배가 뜰까 걱정하는 사이 6시가 채 되지 않아 택시 기사로부터 출발한다는 전화가 왔다. 우리가 걸기로 했는데 먼저 걸려온 것이다. 배는 7시 30분 출항이다. 불길한 징조라 여겼다. 기사님 말씀하시길, "울릉도에서는 비 걱정하지 마시라. 대부분 지나가면서 흩뿌리는 것이니 길게 내리지 않는다. 지금 날씨 나쁘지 않다. 오늘 독도에 충분히 접안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정보다 서두른 것은 도로 공사로 시간이 지체될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고.. 마치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오해하지 말라는 듯.. 6시 50분 우리는 도동항에 도착했다. ..
울릉도에 가다.
울릉도에 가다.
2021.08.26세상은 아직 어둠 속, 구름에 잠긴 지리산 너머 뿌옇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을 도와 길을 나선다. 우리는 울릉도로 떠났다. 심기일전, 의기투합, 우리는 이런 단어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것이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울릉도 여행은 꽤 많은 곡절을 불러왔다. 길을 나선 지 대략 여덟 시간, 한낮이 돼서야 울릉도 땅을 밟았다. 횟수로는 세 번째 6년 만이다. 일행들이 뱃멀미에 시달렸다. 단 한 번도 뱃멀미를 해보지 않은 나조차 속이 꽤나 메슥거렸다. 배에서 내려 땅을 밟고도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 산길을 타려던 계획은 버스를 타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우리는 곧장 나리분지로 들어갔다. 나리분지는 분화구에 오랜 기간 흙이 퇴적되어 형성된 울릉도에서 가..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2021.08.15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노래가 있다. 학내에서도 동 뜨던 시절, 확성기 사이렌이 울고 주동자의 선창으로 노래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스크럼을 짜고 우리는 교문으로 내달렸다. 교문 박치기, 최루탄이 터지고 짱돌이 날아가고 한바탕 공방전을 치르고 다음에는 화염병을 만들어 나오겠다 으름짱을 놓고 우리는 막걸리 집으로 흩어졌다. 이놈들 또 데모허고 왔다고 막걸리 집 할매 군시렁거리면 가볍게 옷 한 번 털어주고 목이 터져라 다시 부르던 노래 민주 올 때까지 민주 외쳐라~ 팟쇼 갈 때까지 타도 외쳐라~ 1985년, 내 나이 열아홉이었다. 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전진하는 새벽
전진하는 새벽
2021.08.15쏟아지는 빗발 뚫고 오던 무거운 어깨 말없이 동녘 응시하던 동지의 젖은 눈빛 이제사 터오니 당신의 깃발로 두견으로 외쳐대던 사선의 혈기로 약속한다 그대를 딛고 전진하는 새벽 어느새 닥친 조국의 아침 그대를 기억하리라 (김영모 작사 • 작곡)
찔레꽃
찔레꽃
2021.08.13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오래된 사진, 오래된 기억
오래된 사진, 오래된 기억
2021.07.05이따금 집에 내려오는 아이들은 옛 사진첩 들춰보는 것을 좋아한다. 세 놈이 한 자리에 모여 앉기라도 할 양이면 지들끼리 깔깔대며 재미가 좋다. 그런데 그 기억이라는 것이 때로는 놀랍다. 아니 그 시절까지 기억한다고? 그게 가능해? 하여 생각해본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떤 것일까? 가장 오래된 사진을 들춰보지만 나는 이 사진 속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는 이 사진의 내력에 대해 말해줄 사람도 없다. 추정컨대 할아버지 첫 번째 기제사, 하니 사진 속 나는 세 살일 것이다. 딱 봐도 세 살로 생겼다. 동짓달이 생일인 나는 애문살 먹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 흐느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을 안길 또랑에 녹깡을 묻고 있었다. 어른들이 나를 보고 한 마디씩 ..
드잡이
드잡이
2021.06.26나는 오래된 집에 산다. 올해로 아흔넷, 좀 있으면 백 살 자신다. 나는 쉰여섯, 좀 있으면 환갑 되시겠다. 집을 한 번 크게 손봐야 할 때가 됐다. 지난 30년 얹혀살기만 했으니, '드잡이'가 필요하다 했다. 이것은 집에 대한 나의 사명이 되었다. 늘 나들아다니는 곤궁한 살림살이, 드잡이는 필생의 과업이 될 수도 있다. 돌아온 늦은 밤 문 왈칵 열린 불 켜진 방 불 끄고 문고리 거는 것은 내 일이었다. 날파리떼가 방을 점령했다. 딸내미들 방으로 피신한다. 잠 깨어 일어난 아침 오래된 달력 앞 이 자리에서 십수 년이 묵었다. 90년 세월 속에 십수 년이야 뭐, 반백년 한 자리 벽시계도 계시는데 저 시계불알은 언제 명을 다했을까? 딸내미들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이 방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나 딸내미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