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고부 두승산
고부 두승산
2016.01.14호남 서해안, 그중에서도 고창과 정읍 접경에 집중적으로 눈이 내렸다. 정읍 가는 길, 두승산이 눈길을 잡아끌며 이리 오라 손짓한다. 두승산은 길을 나서는 나를 가장 멀리까지 바래 주고, 돌아오는 길 가장 먼저 달려 나와 반기는 그런 산이다. 돌아오기 어려운 길을 나선 농민 혁명군들에게도 그리 했을 것이다. 오전 내내 눈발이 오락가락하다 해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푹한 날씨 탓에 봄눈 녹 듯 눈이 스러지는 가운데 두승산이 홀로 아련하게 빛난다. 정읍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두승산으로 달려간다. 시간이 많지 않다. 눈이 제법 왔다. 정갱이까지 푹푹 빠진다. 묘하게 산을 오를수록 눈이 적어진다. 나는 아무래도 돌탑 쌓는 마음을 알아낼 길이 없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다. 엉성한 돌탑들이지만 경건하면서 정갈한..
선운산 낙조대에서..
선운산 낙조대에서..
2016.01.05겨울이면 눈이 펑펑 내려 수북이 쌓이고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붙기도 해야 제격인데.. 자연의 순환에 기댄 소박한 소망마저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살이.. 거리에서, 하늘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참으로 고단하고 치욕스러운 세월이다. 새해 대둔산 해맞이 산행 이후 팔다리에 뻗치는 기운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쑤시는 좀을 참다못해 선운산 낙조대를 찾았다. 천마봉 오르는 길 계곡 으슥한 곳에서 밤톨만 한 굴뚝새 한 마리 발길을 붙잡는다. 가는 겨울과 오는 봄 사이 주로 출몰하는 녀석인데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몹시 촐랑거리며 부산을 떤다. 반나마 오르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숨을 고른다. 마애 미륵불과 도솔암 내원궁이 내려다보인다. 도솔암 내원궁에는 보물급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어 지장보살을 ..
대둔산 동학 농민군 최후 항전지
대둔산 동학 농민군 최후 항전지
2016.01.02"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 새해를 어디서 맞을 것인가를 두고 여러 생각이 많았는데 발길은 결국 대둔산으로 향했다. 일본군 기록에 남아 있는 마지막 농민군 토벌, 대둔산에는 우금티에서의 통한의 패배 이후에도 3개월여에 걸쳐 항쟁을 이어간 동학농민혁명군의 항전지가 있다. 그런데 왜놈들이 전하는 기록에야 마지막일 수 있겠지만 어찌 이를 두고 마지막이라 하겠는가? 농민군의 항쟁은 을미의병으로, 정미의병으로.. 이름도 없이 성도 없이 싸우다 산과 들에서 죽고 논밭에서 썩어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이는 "갑오년에 쏜 총알이 아직도 날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말들..
어제 본 인왕산, 안산의 봉화
어제 본 인왕산, 안산의 봉화
2015.12.0712월 6일, 2차 총궐기를 마친 직후의 실천 없는 농성장을 지키는 일은 다소 따분하다. 해서 나선 길, 창의문에서 사직단까지 인왕산 성곽길을 걸었다. 한시간 남짓..인왕산은 청와대 뒤가 아니라 옆에 있다. 청와대 뒷산은 북악산. 그러니 이명박이 인왕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얘기는 맞지 않다. 이명박은 그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어찌 생겨먹었는지 알 수 없기에 이명박이가 실제로 산에 올랐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아마도 거짓일 것이다. 낮은 산이지만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제법 산 맛이 난다. 서울시내 복판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열심히 사진기를 눌러댔는데 아뿔싸.. 메모리카드가 없다. 노트북에 박아두고 그냥 왔..
추석날 방장산에서 하룻밤
추석날 방장산에서 하룻밤
2015.09.29차례 모시고 한숨 늘어지게 자고 방장산으로 또 자러 간다. 막둥이는 낮잠 자는 사이 친구 찾아 강남으로 토껴부렀다. 장성 넘어가는 양고살재 고갯마루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포장된 지 20년 살짝 넘은 고갯길은 방장산 종주 출발지 혹은 기착지로 애용된다. 양고살재는 누루하치 사위 양고리를 죽였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인근 솔재와 더불어 남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양골로 나 있어서 양고살재라 한다고도 한다. 어찌 되얐든 길을 떠나 보는디.. 아직 능선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벌써 해가 넘어간다. 억새봉에서 넘어가는 해를 보겠다는 계획은 폴쎄 틀어져부렀다. 출발이 너무 늦었다. 억새봉 해는 이미 지고 없고 여명만 붉게 남았다. 고창읍내는 이미 어두운 밤, 모양성 성곽을 밝히는 조명이 길다랗게 늘어져 있다. 휘..
이름다운 길, 행남 해안산책로
이름다운 길, 행남 해안산책로
2015.08.14독도에 다녀온 우리 일행은 숙소에서 잠시 쉬면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야 했다. 숙소가 저동 여객터미널과 매우 가깝다. 다행히 심한 멀미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계단만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성인봉에 다녀온 후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다.그렇다 한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점심 요기를 마친 우리는 행남 해안산책로를 향해 다시 길을 잡아 나선다. 쉬엄쉬엄 도동까지 걸어가 저녁을 먹고 다시 넘어올 심산이다. 저동항 방파제와 한몸이 되어버린 촛대바위를 바라보며 걷다 방파제에 서니 성인봉 산줄기가 단박에 배경이 되어준다. 아래의 콘크리트굴을 통과하면 곧바로 행남 해안산책로 절경이 펼쳐진다. 길 이름은 중간쯤에 위치한 행남등대에서 따온 모양이다. 힘들..
저동에서 섬목까지 울릉도를 걷다.
저동에서 섬목까지 울릉도를 걷다.
2015.08.13울릉도 2박3일은 다소 짧은 감이 있다. 어느새 돌아가야 할 날이 밝아온다. 오늘은 일행과 떨어져 저동에서 섬목까지 걷기로 한다. 일주도로가 아직 없는 울릉도, 걷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구간이다.이 구간에는 내수전에서 석포에 이르는 옛길이 포함되어 있다. 어제 행남등대 부근에서 설핏 스쳐지난 청띠제비나비가 눈에 삼삼하다. 산과 마을을 지나며 할랑할랑 걷다보면 청띠제비나비는 물론 울릉범부전나비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다. 울릉도의 아침은 고창보다 20분이 빠르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를 목표로 길을 나섰으나 거리타산이 잘못되어 내수전마을 입구 바닷가에서 해를 맞았다. 해는 죽도와 북저바위 사이에서 떠올랐다. 언제나 올라올까 싶게 동짝 하늘만 붉히더니 떠오르자마자 하늘로 담박질친다. 저동항 방파..
우리땅 독도
우리땅 독도
2015.08.12성인봉 넘어 나리분지, 산마을 식당에서 하루를 묵었다. 5년 전과 똑같은 여정이지만 세월은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음식 맛도 술맛도, 손님 대접도 예전만 못하다. 나리분지의 밤은 싱겁게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8시 반에 저동항에서 출발하는 독도 여정을 잡아놓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다시 저동으로 돌아간다. 섬목에서 저동에 이르는 구간은 찻길이 없는 탓에 섬을 거의 한 바퀴 에돌아 1시간여를 달려야 한다. 택시비 10만 원, 성수기인 탓에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 리.. 쾌속선을 타고도 1시간 반가량이 소요된다. 너울성 파도가 일렁인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배는 흡사 바이킹처럼 요동치며 독도로 향한다. 이 정도 바람이면 독도에 접안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지만 일정을 바꾼다..
성인봉 지나 나리분지로
성인봉 지나 나리분지로
2015.08.09포항을 출발한 우리누리호는 저동항으로 들어갔다. 기록을 더듬어 햇수를 헤아리니 5년 만이다. 첫 방문에서 받았던 감동의 기억이 너무도 선연하여 사뭇 가슴이 뛴다. 이번에도 성인봉을 오른 후 나리분지로 내려가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울릉도 일정을 시작한다. 점심을 먹는 사이 애, 어른, 아녀자 할 것 없이 성인봉 산행에 함께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서둘러 점심을 해결하고 KBS 중계소 위쪽 산행 기점으로 간다. 택시비 1만 원. 3시 반, 시원스레 펼쳐진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산행을 시작한다. 비좁은 협곡에 자리 잡은 도동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폭염에 신음하는 본토와 달리 울릉도는 섭씨 30도를 넘지 않는다. 산에 드니 서늘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오고 숲 바닥을 차지한 양치식물이 발산하는 청량..
7월의 방장산
7월의 방장산
2015.07.29장마에, 태풍에, 몹시 어수선한 날들이 지나고 있다. 오랫만에 보는 파란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 진정한 여름이 도래하였다. 도저히 일할만한 날씨가 아니다. 이런 날은 산으로 가야 한다. 방장산이 나를 부른다. 때로는 아스라히 하늘을 찌를듯 솟아 있는 방장산이 오늘은 손에 잡힐듯 만만해보인다. 방장산은 고창과 장성이 능선을 갈라 도계를 이루고 한짝 귀텡이는 정읍에 속한다. 방장산은 고창 들녘에서 바라볼 때라야 웅장한 산세를 제대로 드러낸다. 특히 고창읍내에서 바라보는 방장산은 듬직하기가 이를데 없어 고창의 진산으로 손색이 없다. 오늘은 용추계곡에서 올라 봉수대 봉우리 찍고 정상(연지봉) 거쳐 고창고개(파릿재)길를 타고 다시 용추계곡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과거 차 귀하고 양고살재가 포장되기 전에 많이 애용하..
4월 한라산, 영실에서 어리목까지..
4월 한라산, 영실에서 어리목까지..
2015.04.13한라산을 오르는 가장 손쉬운 길, 영실에서 어리목까지 가벼운 산행을 한다. 이 길로는 백록담을 오르지 못한다. 대신 위풍당당한 한라산 화구벽을 바라볼 수 있으며, 드넓은 고산 평원인 선작지왓의 이국적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길지 않은 시간 큰 힘 들이지 않고 한라산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길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4월의 한라산은 겨울은 갔으되 봄은 아직 이른 매우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어 겨울이 완전히 물러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꽃이 앞다투어 피지도 않는다. 등산로 초입 소나무 숲에는 곧게 뻗은 아름드리 적송이 들어차 있다. 재선충 유입으로 제주도 소나무 숲이 일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고사목 제거 등 방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히 ..
갑오년 농민군 최후 혈전을 지켜본 장흥 사자산
갑오년 농민군 최후 혈전을 지켜본 장흥 사자산
2015.03.26장흥에 가면 올라가보고 싶은 산이 많다. 때론 웅장하고, 때론 아지자기한 산들이 사방에 둘러쳐져 있다. 산세도 산세려니와 그 이름들이.. 요샛말로 한이름한다. 억불산, 천관산, 사자산, 부용산, 제암산..하나같이 깊은 사연 한자락씩은 품고 있을 듯한, 그러면서도 위엄있는 이름들이다. 어디로 가야 석대들판을 제대로 내려다볼 수 있을까? 사자산을 오른다. 늘 마음에 품었던 일인데 막상 오르려니 출발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산자락을 파헤쳐 무슨 주택단지를 짓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로하스타운이란가 무이란가.. 참치 통조림이 연상된다. 마주 보는 억불산에는 우드랜드, 이름들 참 격조 있다. 시간을 다소 허비했지만 좌우튼 길을 찾아 산에 올랐다. 지금 내가 선 자리는 두봉, 사자머리에 해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