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호남정맥 경각산(슬치~불재)
호남정맥 경각산(슬치~불재)
2021.02.10얼마만인가, 석 달? 호남정맥에 다시 안긴다. 한 번 멀어진 발길 다시 잇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하여 쇠뿔은 단 김에 빼라 했던 모양이다. 슬치는 임실 관촌에 속하며, 호남정맥이 한없이 몸을 낮춘 구간이다. 마을을 통과하는 탓에 사람들의 간섭이 심하여 능선길이 위태롭게 이어진다. 사람의 손을 탄 곳일수록 가시덩굴에 잡목이 우거져 길을 잘못 들거나 통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겨울이라 다행이긴 하나 마을과 그 뒷산을 통과하는 문제가 마음에 걸려 있던 차에 슬치에서 실치재(혹은 뒷재)에 이르는 약 2km쯤 되는 구간을 잠시 짬을 내 미리 걸었다. 낮은 지역이라선지 산들이 모두 납작 엎드려 드넓은 구릉지대로 보인다. 멀리 모악산은 분명한 데 왼쪽 산을 알아볼 수 없다. 위치로 보아서는 경각산일 터인데 산 ..
삼정산에서 지리를 보다.
삼정산에서 지리를 보다.
2021.01.28운봉 지나 살래 가는 길 인월 못 미쳐 개울 바닥에 넓게 엎드린 붉은 반석, 피바위. 왜구와 얽힌 이성계 이야기 전해지는 곳, 비가 내린다. 멋진 배경, 아마도 삼봉산인 듯.. 살래 중기 마을 모처, 숯불에 고기 올려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쩌 산은? 아마도 삼정산.. 이른 아침 눈 앞에 펼쳐지는 지리 주릉을 본다. 며칠을 봄인 듯 비가 내렸어도 천왕봉은 눈 세상. 아침나절 숙취로 모대기다 점심 무렵에야 주섬주섬, 그냥 갈 수 있을까? 이토록 잡아당기는데.. 산이 잡아끄는 힘은 강력했다. 돌아서지 못하고 다시 돌아섰다. 삼정산으로 간다. 영원사 가는 길 따라 오르다 이쯤 됐다 싶은 곳에 차를 세우고 산으로 든다. 용코로 차를 세웠다. 거기가 바로 상무주암으로 가는 길목이더라. 산길 중간쯤에서 만난 약수터,..
시산제
시산제
2021.01.191월 17일 오늘은 시산제, 산으로 간다. 그 시절 산으로 간 사람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숱한 영령.. 만나 뵐 수 있을까? 오전 8시 백무동 주차장, 시간 반을 달려 딱 맞춰 왔다. 날이 몹시 차다. 장갑 속 손가락이 따락따락 아리다. 산으로 든다. 두터운 얼음짱에 갇혀 다소곳해진 한신계곡, 속삭이듯 재잘대며 흘러간다. 삐걱대던 몸이 산에 적응해간다. 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눈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상고대가 나타나고 본격적인 깔크막이 시작되었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체온을 조절한다. 겨울 산에서는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좋다. 탄성과 한숨이 교차하는 고빗사위, 타박타박 묵묵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 이쯤 되면 산길은 수행 길이 된다. 저기만 지나면.. 따스한 햇살에 휩싸인 잔돌..
바래봉에서 지리를 보다.
바래봉에서 지리를 보다.
2021.01.10바래봉을 오른다. 지난겨울 오르다 작파했던 바로 그 길, 이번엔 뜨는 해 말고 지는 해를 보자는 것이다. 팔랑 마을에서 바래봉 오르는 길은 매우 수월하다. 팔랑치에 오르면 지리 주릉과 서북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구름짱 두터운 곳, 그곳에 천왕이 있다. 운봉고원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동학 농민군의 비원이 서린.. 저 멀리 고리봉, 그 너머 만복대가 살짝 전라도에서는 반야가 주봉이다. 구상나무 조림지를 지나.. 바래봉을 오른다. 살래 사람 살래 보고 있겄지. 험악허네.. 살래 사람들 살기 팍팍허겄다.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눈 쌓인 저 산만 보면 지금도 울리는 빨치산 소리 내 가슴에 살아 들린다. 해 넘어가고.. 내려왔다.
방장산 해맞이 심설 산행
방장산 해맞이 심설 산행
2021.01.02해가 바뀐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네, 내일이면.. 정말로 해가 바뀔까? 가서 봐야지, 그래야 알지. 해맞이 짐을 꾸린다. 이리 할까 저리 할까, 이 궁리 저 궁리. 생각이란 놈이 온종일 오락가락 열두 번도 더 바뀐다. 나이가 든 게지, 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다. 해 질 녘이 돼서야 짐이 꾸려졌다. 빠진 것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차 안에서 또 한참을 뭉기적대다 이미 어둠이 내리고서야 산을 오른다. 장갑 한 짝이 온 데 간 데 없다. 목장갑 두 개 겹으로 끼고 간다. 모처럼 눈이 쓸만하게 내렸다. 능선엔 칼바람, 눈보라 거침없이 혹은 고요히, 오락가락.. 산이 온통 하얗다. 불 없이도 능히 오를 만하다. 사진 찍을 때 말고는 불이 필요 없다. 불 없이 오르는 하얀 산의 정취를 표현할 길이 ..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2020.12.26산에 안긴다. 산에 드는 건 산을 더 잘 보고자 함이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ㅋㅋ 좀 더 일찍 올랐어야 했다. 해님이 벌써 중천에 계시니.. 하늘로 올라간 마을 농평 불무장등, 황장산 너머 구름 모자 쓴 세석, 남부 능선 거친 산길을 간다. 지리 주릉이 한눈에 잡히고.. 우리의 후손들이 태어난 후에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리라.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세석 너머 천왕은 구름 속에 계시고.. 그때는 찢겨 피 묻은 깃발이나마 해방의 강산 위에 나부끼리라~ 아~아 오늘도 우리는 간다 선배들의 핏자욱 서린 이 길을.. 지리 주릉은 구름의 거처 천왕은 끝내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노래 부르며 서로를 일으키면서.. 신비주의에 휩싸인 대반야 끝내 안 보여 주더라. 왕시루봉 남해로 가는 섬진강 불..
호남정맥 사자봉~슬치
호남정맥 사자봉~슬치
2020.11.29다시 맞은 주말, 나의 발길은 호남정맥으로 향한다. 산으로 가기에 앞서 진안 부귀에 있는 녹두장군의 큰따님 전옥례 여사의 묘소에 들렀다. 한 번은 헛걸음, 좀 더 정밀한 탐색 끝에 다시 찾았다. 장군의 큰따님은 동학농민혁명이 농민군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뒤 사람을 피해 산으로 도피했다. 산길만 골라 내달린 발걸음은 마이산에 와서야 겨우 멎었다. 그이의 나이 15세, 김옥련이라 이름을 바꾸고 금당사 공양주로 숨어 지내다 진안 사람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뤘으나 자신의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평생을 함구하고 살았다. 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손자를 통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이의 묘소는 모래재 아래 호남정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이가 걸었을 태인(산외면)에서 마이산에 이르는 산길은 상당..
호남정맥 모래재 ~ 만덕산
호남정맥 모래재 ~ 만덕산
2020.11.222주 만에 다시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을 지나 모래재에서 그 첫발을 내딛는다. 호남정맥의 실질적인 뿌랑구라 할 장안산에서부터 치면 예까지 오는데 무려 4년이 걸렸다. 앞으로 또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백운산에 가 닿게 될지 알 수 없다. 좌우튼 가보는 게다. 시작했으니 끝을 볼 날이 있겄제, 암만.. 어제, 그제 내린 비로 산은 훨씬 황량해졌다. 이제는 겨울이니 눈이 내려야 겨울산의 면모를 갖추게 되겠다.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는데 날이 갈수록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문제다. 조망 없는 숲길, 커다란 묘지 하나 있어 앞이 트였다. 마이산이 삐쭉, 모래재에서 내려서는 도로가 산을 크게 휘감아 돈다. 조망 없는 산길을 걷고 걸어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귀한 조망 하나 얻는다. 도로 하나 구불구불 모래재를..
금남호남정맥 주화산, 3정맥 분기점
금남호남정맥 주화산, 3정맥 분기점
2020.11.11가죽재에서 모래재까지 대략 시오리 길, 나른한 오후 농성장에서 잠시 몸을 빼내 짬 산행에 나선다. 껄적지근하게 남겨진 짜투리 구간을 털어내고자 함이다. 지금은 옛길이 돼버린 단풍 수려한 모래재 고갯길로 접어든다. 굽이굽이 산을 휘감아 올라 모래재 휴게소에 차 놓고 동행한 차에 옮겨 타 가죽재로.. 가죽재는 오룡재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더라. 16시 30분, 차는 떠나가고 나 홀로 산으로 향한다. 해가 뉘엿뉘엿, 세상 가파른 턱골봉 오름길을 헐레벌떡.. 오늘은 간만에 야간산행으로 마감하게 되겠다. 간만에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150mm로 당겨 나뭇가지 사이 지는 해를 잡는다. 당겨놓고 보니 모악산이다. 나아갈 방향.. 금남정맥에 속한 운장산이 보인다. 멀건하던 하늘이 어둠이 내리면서 갈수록 ..
낙엽 수북한 정맥길(마이산~가죽재)에서..
낙엽 수북한 정맥길(마이산~가죽재)에서..
2020.11.09일주일 만이다. 가을이 한층, 아니 이제는 겨울로 간다. 때마침 입동이라네. 이번에도 늦잠, 지난밤 혼술이 과했다. 07시 10분, 마이산 북부 주차장에 차를 두고 단풍 흐드러진 계단길을 오른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에서 숫마이봉 한 번 쳐다보고 암마이봉으로 향해 정맥을 이어간다. 그나 숫마이봉은 참 뭣같이 생겼다. 진안읍 방면, 새벽을 지나 아침으로.. 암마이봉 오름길은 잘 단장되어 있어 아무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오래전 한 번 올랐었는데 통 기억이 없다. 보기와 달리 흙도 있고 나무도 있다. 암마이봉의 조망은 이 짝 저쪽 거침이 없다. 비룡대, 금당사 방면, 마치 물 빠진 다도해 분위기.. 외약짝 멀리 내동산 비룡대 너머 진안고원이 잠에서 깨어난다. 백운면 방면 암마이봉에서 내려와 본격적으..
늦가을 금남호남정맥, 신광재 ~ 마이산
늦가을 금남호남정맥, 신광재 ~ 마이산
2020.11.01농성장은 토, 일 문을 닫는다. 누가 뭐라건 그건 우리 맘이다. 이 틈에 농성장에서 엉겨 붙은 도시의 소음과 먼지와 갖은 독소를 털어내야 한다. 대간은 너무 멀고.. 이번엔 호남정맥이다. 조선팔도 천지가 산이니 갈 곳 많아 좋다. 눈을 뜨니 이미 여섯시가 넘었다. 또 늦잠이로군.. 조망 터지는 산봉우리에서 맞아야 할 아침해를 도로에서 맞는다. 마이산이 살짝 보인다. 산행을 마치고 사진을 분석하니 등빨 좋은 덕태산을 뒤로하고 성수산에서 쭉 뻗어 마이산까지 이어진 능선이 한눈에 잡힌 것이었다. 성수산과 마이산 중간 지점에 해가 있는 것이다. 얼마만인가? 2018년 10월이었다. 서구이재에서 여기 신광재까지.. 그때는 건각 수정이와 함께 했더랬다. 그러니 2년 만이로군, 고랭지 채소밭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
저수령~죽령, 굽이쳐라 백두대간이여..
저수령~죽령, 굽이쳐라 백두대간이여..
2020.10.20저수령에서의 하룻밤, 참으로 잘 잤다. 그런데 늦잠, 산에서도 늦잠이라니.. 주섬주섬 짐 챙기고 누룽지 한 사발 끓여먹고 나니 6시 20분, 길을 나선다. 저수령은 해발 850m, 낮지 않은 고개다. 그 옛날 길이 험해 길손들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침략자들은 목이 달아났다 하여 저수령이라네. 안내판에 그리 쓰여 있더라. 죽령까지 20여 km, 해발 고도 1천 미터를 넘는 고봉 준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대간꾼을 맞아 힘차게 뻗어나간다. 곳곳에서 터지는 장쾌한 조망은 대간 산행길의 묘미를 더해가다 도솔봉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죽령 너머 육중한 소백산 주릉은 다음 산행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하니 백두대간 종주 구간 중 참으로 빼어난 구간이 아닐까 싶다. 약간의 어둠만이 남은 숲길에 상쾌한 첫발을 내딛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