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바람 많은 날
바람 많은 날
2018.03.023.1절, 바람이 몹시 불었다. 생각지 않게 산발을 걷게 된 건 팔할이 바람 탓이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호젓한 산길, 봄을 노래하기엔 아직 스산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눈도 없는 계절의 간극, 바람만 오살나게 분다. 산길은 곧장 쥐바위로 연결되었다. 쥐바위에 서서 희여재 방면을 바라본다. 파리지옥이라 일컬어지던 개띠 형님의 머리에도 세월이 내려 앉았다. 세상에 그 숱 많던 머리가 이제는 속이 보인다. 기나긴 도솔계곡 끄트머리에 경수봉이 버티고 있다. 배맨바위, 일대가 바다였던 시절 배를 매 두었던 바위라니..옛 선인들의 상상력에는 웅대한 대륙의 기상이 서려 있다. 도솔계곡 낙조대 일대의 바위들, 저 멀리 소요산 천마봉 거쳐 하산, 바람 한번 싫도록 맞았다. 얼굴 근육이 도통 통제가 안된다. 하지만 ..
선운산 천마봉 풍경
선운산 천마봉 풍경
2016.05.21선운사를 에워싸고 있는 산군 전체를 통상 선운산이라 부른다. 선운산 안쪽 고라당 핵심부에 도솔암이 있고 마애불이 있고 천마봉이 있다. 천마봉은 그 자체가 천마의 형상이라기보다 그 언젠가 천마 한 마리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을법한 그런 봉우리다. 천마봉에 서면 굽이굽이 선운산 능선은 물론 멀리 방장산 줄기가 아스라하거나 손에 잡힐 듯 조망되고, 도솔천 기나긴 계곡을 더듬다 보면 인냇강 건너 소요산이 지척이다. 아무리 바삐 왔다손 치더라도 선운사에 왔다면 천마봉 정도는 오르고 갈 일이다. 못자리 낙종을 마치고 일손 넣어주러 달려온 딸래미하고 선운산 천마봉에 올랐다. 보름을 향해 치달리는 달이 중천에 떴다. 매사촌 울부짖는 소리를 기대했으나 기척도 없다. 며칠 전 도솔천 음습한 계곡에서 영화 찍는 것 봤다는 얘..
선운산 경수봉
선운산 경수봉
2016.01.26밤 늦게까지 쏟아지던 눈이 그치고 아침해가 쨍 하고 솟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짚시랑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하고 햇살을 머금어 무거워진 눈이 비닐 하우스를 묵직하게 쓸어 내리며 눈보라를 일으킨다. 공음, 무장 쪽 비닐 하우스들이 꽤나 찌그러졌다는 소식이 들린다.눈은 정읍이 더 왔다는데 왜 그짝 하우스들이 무너지는지 모를 노릇이다. 이래저래 농민들 시름은 가실 날이 없다. 그나 눈 왔는데 뭐 하나? 산이나 가야지..길바닥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바퀴에 채워놓은 체인은 아직 풀지 않아도 되겠다. 부안면 사는 선홍이를 싣고 선운사로 간다. 아직 그 누구도 가지 않았을 경수봉을 오른다. 경수봉은 선운사를 휘감아 도는 산군들 중 최고봉으로 인냇강 너머 소요산과 자웅을 겨룬다. 하지만 산세도 밋밋하고 오르는데 ..
갑오년 첫날 천마봉 해맞이
갑오년 첫날 천마봉 해맞이
2014.01.01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 농민들에게 갑오년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갑오농민전쟁 120주년, 60 갑자를 두 번 지나 다시 찾아온 갑오년. 갑오년 농민군이 들었던 '척양척왜' '보국안민' '제세창생' 등의 기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뿐더러 긴요하다. 다시 찾아온 갑오년은 우금치를 넘어 한양을 도모하고 미일 외세를 완전히 몰아내는 투쟁을 제대로 벌여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갑오년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어디에서 맞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천마봉을 찾았다. 미명 속 천마봉,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솔계곡, 다만 도솔암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만이 계곡을 울린다. 지장보살을 모신 도솔암답게 오로지 '지장보살'만 고아댄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된장 고추장'..
선운산 바위순례길
선운산 바위순례길
2013.02.18선운산은 그리 높지 않다. 가장 높다는 경수봉이 444m이니 각각의 봉우리들이 400m를 간신히 넘기거나 그 미만이다. 하지만 선운산은 품이 넓다. 능선 한바퀴를 온전히 돌기 위해서는 꼬박 하루는 제대로 투자해야 한다. 수십갈레의 산길을 조합하여 무수한 산행노선을 짤 수 있겠고 완벽한 원점회귀노선을 얼마든지 구상할 수 있다. 선운산은 바위가 많다. 산이 지닌 덩치에 비해 웅장한 규모의 기암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 산행의 짜릿함과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투구바위와 속살바위 일대는 바위타기(스포츠 클라이밍)의 요람이기도 하다. 오늘은 도솔암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들러, 병풍바위, 배맨바위, 쥐바위 지나 사자바위, 사자바위 살짝 지나 도솔암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오는 길을 택하였다. 이 ..
선운산에 눈이 나린다.
선운산에 눈이 나린다.
2012.12.2523일 선운산 천마봉에서 겨울을 나는 바위종다리를 보고자 길을 나섰다. 분분이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사이로 간간이 해가 비친다. 천마봉 아래 도솔암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저 위에 바위종다리가 있을 것이다. 해가 비친다. 조짐이 좋다. 도솔암 마애불, 백제 선인들은 미륵불을 바위에 새겨놓았건만 도솔암 중님들은 지장보살만 목청 높여 부른다. 용문굴을 지난다.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나즈막한 소나무들이 늘어선 능선길 따라 낙조대로 향한다. 칠산바다와 위도가 보이는 길이다. 천마봉. 눈보라가 세차다. 한참을 두리번거려도 바위종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바위틈새기로 피신한 모양이다. 건너편 사자바위 능선이 아스라하다. 천마봉에서 내려다보는 도솔암 일대 하산길 올려다본 천마봉 천마봉으로 오르는 ..
[고창의 자연] 선운산 천마봉 바위종다리
[고창의 자연] 선운산 천마봉 바위종다리
2011.04.02바위종다리는 추운 겨울이 되면 선운산 천마봉에 찾아오는 진객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의 관찰기록이 있으니 겨울을 온전하게 천마봉에서 지내는 것이다. 영명은 Alpine Accentor로 높은 산, 고산지대에 사는 새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바위종다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위지대에 서식한다. 바위종다리는 백두산 천지호반 주변에서 번식하는 유일한 새로 알려져 있으며 낮은 지대로 이동하는 겨울에 관찰된 곳도 대부분 북한산, 불암산, 금정산 등지의 바위지대이다. 그리고 거기에 선운산 천마봉이 추가되는 것이다. 바위종다리의 또 하나의 특이한 습성은 사람을 매우 가까이 한다는 것이다. 능선 곳곳 기암절벽이 즐비한 선운산에 꼭 올만한 새라는 생각에 바위종다리를 찾아 나선 지난해 겨울, 인적..
바위종다리
바위종다리
2010.02.12이 녀석의 유전자에는 사람에 대해 어떤 정보가 박혀 있는걸까? 사람한테 이토록 들이대는 녀석을 보지 못하였다. 뭐라도 나누어먹을 것 좀 없느냐는 듯 사람 주위를 서성이고 사진기 렌즈를 향해 서슴없이 다가서는 녀석이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겨울이면 이 녀석들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고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선운산을 찾았을 때는 부러 사람없고 호젓한 사자바위 능선으로 올랐더랬다. 개미새끼 한마리 보지 못하였고.. 녀석의 존재가 머리 속에서 흐려질 즈음 선운산 천마봉에 녀석들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로지 녀석들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오른 천마봉, 등산객의 발길이 조금은 덜한 한쪽 귀퉁이에 앉아 녀석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던 차, "어머 얘는 무슨 새야?" "내가 아는 새는 딱 두종류야! 먹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