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 사람들은 벌초가 뭔지 모른다.

성묘도 거의 하지 않는다. 나도 안한다. 

혹간 성묘 다녀가는 사람들은 깨끗하게 단장된 묘소 상태가 늘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집안에서 벌초는 오직 나만의 일이다. 

장성한 아들놈 써먹을까 했으나 민주주의 절단난 나라 걱정에 공사가 다망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정히 누워 계신다. 

우거진 잡초가 심란스럽다. 답답하실랑가? ㅎㅎ

6~7월경에 한번 해드린다는 것이 늘 맘 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튼 벌초는 내 일이다. 



다양한 연장이 준비되었다. 잘 생각해서 꼼꼼히 챙겨오지 않으면 여러번 왔다갔다해야 한다. 

여러가지것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짊어지고 하는 예초기와 갈퀴다. 

그리고 밀고다니는 잔디관리기, 다른건 뭐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들.. 실제로 쓰지 않았다. 



야를 빼놓을 수 없겠다. 

초가을 째깐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시커먼 산모기 징하기 때문에 휴대용 모기향을 꼭 패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벌이 염려되는 경우 에프킬라를 준비해야 하겠지만 할아버지 산소에는 벌보다는 모기가 징하다. 



그리고 야는 트렉터 예초기, 잔디밭을 달리는 녀석인데 차출되었다.  

오늘 벌초에서 가장 먼저 투입되어 기선을 제압한다. 

넓은 곳은 야로 문대버리면 그만이다. 



이렇게 되얐다. 넓은 면적은 해결하였으니 거의 다 된것 아니겠는가 싶겠으나 정작 벌초는 지금부터다. 

일단 점심 묵고..



점심 묵고 남지기 벌초를 시작한다. 복잡하고 일 많은 데가 남았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침입해 들어온 대나무 제거하는 것이 일이다. 

봄철 죽순 올라올 때 손대주었으면 일이 수월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내년에는 꼭 해야지 맘 먹어보지만 오늘 뿐이다. 



앗! 응원군이 나타났다. 복면 쓰고 나타나서 누군가 잘 모르겄다. ㅋㅋ

서울 가서 욕복다고 벌초 도와줄란다고 하더니 공음 사는 영태가 참말로 왔다. 

복면에, 쪼인트 보호대에.. 복장으로 봐서는 나보다 벌초 잘하게 생겼다. 



봉분 깎는 것이 일인데 예초기 날 밑에 장착하는 안전판을 달아놓으니 봉분 깎기는 그만이다. 

예초기에서 나오는 불완전연소된 시퍼런 냉갈이 징하다. 

수풀 우거진 바람 안통하는 데서 저 냉갈에 휩싸이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내년에는 나도 복면 써얄랑갑다. 



둘이 함심해서 예초기 웽웽거리고 갈퀴질 빡빡 해내니 벌초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산소까지 마무리하고자 덤볐으나 끝내지 못했다. 

아침이슬 걷히고 나면 잠시 손 넣으면 되겠다. 


벌초는 할아버지께서 마련해주신 집에서 살며 농사짓는 것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힘이 남아있는 동안 벌초는 내 일이다. 

올해는 다 커버린 아들 딸 거느리고 성묘도 해야겠다. 

애들이 따라주는 술 한잔씩 받아먹고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 앞에서 거나하게 취해보고 잡네.. ㅎ

올해도 이렇게 그럭저럭 추석 맞이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