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동학농민혁명, 판화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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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길, 후회가 없다
전사의 길, 후회가 없다
2023.01.13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잠행에 들어간 전봉준 장군은 사흘 만인 12월 28일(양력)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하루 앞선 27일 태인 종송리에서 김개남 장군이 피체되었다. 전봉준은 나주로 김개남은 전주로 압송되었으며 전주로 압송된 김개남은 새로 부임한 전라감사 이도재에 의해 즉결 처형되었다. 그로부터 10여일 후에는 손화중 장군이 고창에서 피체되었다. 이즈음 농민군들의 형편은 어떠했을까? 부대는 해산되었으되 돌아갈 곳이 없었다. 시시각각 추격해오는 조일 연합군, 앞을 막아서는 민보군이 기승을 부렸다. 내내 숨을 죽이고 사세를 엿보던 양반과 부호들이 토벌대를 조직해 농민군 살육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조일 연합군, 특히 조선 실정에 밝지 못한 일본군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 농민군을 색출하고 살육하는데 앞장섰다.. -
피노리 가는 길
피노리 가는 길
2022.12.2112월 5일(음력 11월 9일) 동학농민혁명 최대의 격전 우금티 전투가 개시되었다. 나는 장성 갈재 아래 입암에 서 있다. 잠행에 나선 전봉준 장군이 스며들었던 입암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무 말이 없다. 그이의 발자취를 거꾸로 밟아 올라간다. 곧게 뻗은 국도를 달린다. 태인, 원평, 전주 스쳐 삼례, 여산, 논산, 노성 지나 이인.. 북진하는 농민군이 지났던 고을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곰티재로 향한다. 11월 22일 1차 공주전투, 농민군은 우금티에 앞서 곰티재를 넘어 공주를 공략하고자 했다. 농민군 복장의 전봉준 장군은 붉은 덮개가 휘날리는 커다란 가마 위에서 열정적으로 전투를 독려했다. 곰티재 너머 공주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산세, 농민군이 치고 올랐을 남쪽 사면은 몹시 가팔라 얼마.. -
동학농민혁명 완산 전투
동학농민혁명 완산 전투
2022.12.175월 30일(음력 4월 26일) 농민군은 용머리고개 아래 전주 삼천까지 진격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이튿날, 농민군들을 장꾼들과 함께 무혈입성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무장, 영광 등지로부터 사잇길로 사방으로 흩어져 오던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함께 섞여 미리 약속이 정하여 있던 이날에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미 다 시장 속에 들어왔었다. 때가 오시(오전 11시 - 오후 1시)쯤 되자 장터 건너편 용머리 고개에서 일성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 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헤어져 달아났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 -
완산칠봉,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완산칠봉,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2022.12.07완산칠봉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내칠봉, 외칠봉을 합하여 봉우리가 도합 열세 개. 고만고만 오밀조밀한 봉우리 가운데 장군봉(해발 186m)이 최고봉이다. 완산칠봉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용머리고개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용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용머리고개는 전주에 입성한 농민군, 농민군을 뒤쫓아온 관군 모두가 넘어야 했던 전주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쇠락한 고개, 고개 좌우에 폐건물, 문 닫은 가게들이 즐비하다. 농민군이 용머리고개를 넘어 전주성으로 들이치던 당시의 상황을 오지영의 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무장, 영광 등지로부터 사잇길로 사방으로 흩어져 오던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함께 섞여 미리 약속이 정하여 있던 이날에 수천 명.. -
최 보따리, 해월 최시형
최 보따리, 해월 최시형
2022.11.17해월 최시형, 그는 평생을 바쳐 동학 포교에 전념했다. 교조 최제우 순교 이후 그의 활동은 거의 대부분 지하에서 이뤄졌다. 그의 기나긴 잠행과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에 동학은 조선 민중의 가슴 속 깊이 뿌리내린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동학은 그 자체 교리가 품고 있는 민중성과 혁명성으로 하여 조선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관의 늑탈과 탄압 속에서 구축된 견고한 조직망은 사회변혁을 꿈꾸는 혁명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시형ㆍ이필제 영해봉기를 성공시키다. 이필제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 민란의 시대가 낳은 직업적 봉기꾼, 혁명가였다. 그는 결코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봉기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민중봉기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 그는 일단 한 고을에 잠입.. -
나락 익기만 기다렸다.
나락 익기만 기다렸다.
2022.10.19갑오년 9월(음력) 마침내 농민군이 다시 일어섰다. 전봉준은 각지의 관아에 재기병을 알리는 통문(양력 10월 8일)을 보내 농민군 재기병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일본군을 쳐 물리치고 그 거류민을 국외로 구축할 마음으로 다시 기병하자"는 취지의 격문을 받아 든 각처의 농민군은 군현의 무기고를 헐어 무장을 갖추고 삼례와 남원을 거점으로 한 전봉준, 김개남 휘하로 모여들었다. 한편 최시형 교주는 청산에 각 포 접주들을 불러 모아 전봉준과 협조하도록 당부(양력 10월 16일)하고, 궐기하라는 통문을 내렸다. 이로써 동학 농민군의 9월 재봉기는 호남을 넘어 전 조선이 궐기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11월 9일(양력) 삼례를 출발한 호남 농민군과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 농민군이 논산에서 합류하기까지 한 달.. -
바람 앞에 서다.
바람 앞에 서다.
2022.10.04청일전쟁 발발 후 조선 민중의 반일 항쟁은 마른풀에 불이 붓 듯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공주와 이인, 보은에서 무장한 농민군이 출현하고 공주 부근에 집결한 농민군 만여 명이 충청 감영군과 대치하였다. 천안에서는 농민들이 일본인을 처단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영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북상하는 일본군 병참부에 대한 습격과 서울 부산을 연결하는 통신선을 절단하는 일이 거의 매일같이 전개되고 있었다. 상주, 안동, 김천, 예천 등지에서 농민군들의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밖에 영동 지역에서도 농민군들이 출현했고, 호서와 가까운 근기 지역(죽산, 안성 등)에서도 한성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멀리 해서 지역과 청일 간 전투가 벌어진 평양 인근에서도 항일 투쟁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이처럼 일.. -
관민상화, 도인과 정부는 묵은 감정을 버리고 협력할 것
관민상화, 도인과 정부는 묵은 감정을 버리고 협력할 것
2022.08.22전주화약이 성립된 6월로부터 재봉기하게 되는 10월에 이르기까지 농민군의 활동은 집강소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 시기 전봉준은 전라도 모든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함은 물론 이를 합법적이고 체계화된 통치체계로 세우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쏟아부었다. 전봉준은 각 고을을 직접 순회하며 이를 추동하는 한편 관찰사 김학진을 집요하게 압박하고 재촉하여 집강소를 공인된 통치 기관으로 만들어나갔다. 전봉준은 김학진과 협조하여 합법적인 방식으로 폐정을 개혁하면서 전라도 전역을 손안에 거머쥐고자 했던 것이다. 8월 초 관찰사 김학진은 전봉준에게 “도인을 인솔하여 전주를 지킴으로써 국난을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김학진이 말하는 국난은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7월 23일)과 전쟁 도발을 의미한다. 그간 전봉준과 주도권 확보를 놓.. -
집강소, 조선의 새 하늘을 열다.
집강소, 조선의 새 하늘을 열다.
2022.07.18폐정개혁 12개 조 △도인과 정부는 묵은 감정을 버리고 서정에 협력할 것 △탐관오리의 죄목을 조사하여 하나하나 엄징할 것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할 것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 △노비문서는 불태울 것 △칠반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의 평양립을 벗길 것 △청춘 과부의 개가를 허용할 것 △무명잡세를 폐지할 것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 위주로 관리를 채용할 것 △외적과 내통한 자는 엄징할 것 △공사채를 막론하고 지나간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게 할 것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전주성에서 물러났으되 무장을 풀지 않은 농민군이 주체가 되어 폐정을 개혁하는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집강소의 폐정개혁 12개 조항은 백성들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 -
내 청춘의 비망록
내 청춘의 비망록
2022.06.21바람 부는 보리밭, 내 인생에 이런 출렁거림이 언제 있었던가 그해 6월,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휴전이 성립됐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지 열흘 만이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조선은 격랑에 휩싸였다.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는 청일 양군의 조선 출병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곧바로 침략군, 점령군으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기 나라 백성을 학살케 한 치욕의 역사가 이로부터 비롯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정은 당황했다. 농민군 또한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이를 조정이 받아들인다면 해산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초토사 홍계훈이 이를 수락함으로서 이른바 ‘전주화약’이 체결됐다.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으며 농민군과 조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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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봉에서 호랑이해를 맞이하다
천마봉에서 호랑이해를 맞이하다
2022.01.02먼 길 떠나기 쉽지 않았고, 여럿이 함께 하고 싶었다. 새벽 6시 반, 아직은 밤하늘, 별이 가득,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 있다. 길을 나선다. 나는 북두칠성을 좋아한다. 밤하늘을 보면 무조건 북두칠성부터 찾고 본다. 북두칠성 없는 하늘은 심심하다. 그믐을 하루 앞둔 손톱같은 달, 사자바위와 교신하고 있다. 그런 사자바위를 바라보는 천마봉은 마치 거인의 옆모습. 일출 15분 전 천마봉, 해는 방장산과 사자바위 중간 지점으로 올라올 것이다. 저 멀리 방장산과 눈앞의 사자바위 능선이 원근감 없이 하나의 능선으로 보인다. 2022 임인년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천마봉에 올라 새해를 맞은 부지런한 사람들, 산 아래에서 해장술에 거나해진 늦잠 잔 사람들 한 자리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다짐한다. 모다 승승장구하시고.. -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2021.08.04가슴 아프게.. 당신과 나 사이에 수매장이 없었다면 쓰라린 등외 노풍은 없었을 것을 해저문 공판장에서 입고하는 내 나락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경운기도 내 마음같이 탈탈거리네 당신과 나 사이에 스미치온만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않았을 것을 두메산골 신작로에서 떠나가는 저 상여를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불러보지 않았으리 송아지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테레비만 없었다면 쓰라린 이 배추만은 안 심었을 걸 이른 봄 하우스에서 떠나가는 이 배추를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온다던 장사꾼마저 오지를 않네 -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2021.03.11봄이다. 천지간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간만에 일을 맡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쟁기질하러 간다. 밭이 꽤 크다. 심어놨던 호두나무 죄다 뽑아내고 잔디를 심는다 한다. 물론 임대한 밭이다. 땅주인은 따로 있다. 저만치 쬐깐한 밭뙈기 하나, 꼬부랑 할아버지, 경운기 털털거리며 밭을 갈고 있다.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누구여? 저 만각동 대종이요~ 오~ 대종이.. 내가 눈이 잘 안븨여 그나 자네 일도 바쁠거인디 욕 보네 트랙타가 심 쓰는디요 문.. 아이고메 그나 어찌고 경운기로.. 여가 길이 없네이, 기계가 못 들와 글고 이게 투기꾼 것인디 나보고 안 벌어먹으락 헌가.. 멫 년 묵었던 밭이여. 그리서 뭇 숭구실라고요? 들깬나, 뭇나.. 春來不似春,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다.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 -
전라북도 농림수산발전기금에 대하여..
전라북도 농림수산발전기금에 대하여..
2021.02.27삼락농정 운영소위에서 이 기금 운용과 관련된 보고가 있었다. 농림수산발전기금, 그 이름만으로는 구체적인 쓰임새를 알 수 없던 차에 귀 기울여 들었다. 기금 조성액은 333억 원인데 운용 가능액은 2,000억 원대인 것으로 미뤄볼 때 융자에 대한 이자보전으로 농어민에게 금리 혜택을 제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북도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농림어업의 대내외 경쟁력 강화로 돈 버는 농어업 실현"을 목적으로 하며 "농림수산 분야 생산․유통․가공업에 종사하는 농어업인(농업법인 포함) 경영안정에 도움을 주고자" 융자금 지원 신청을 받는다고 밝히고 있다. 농어민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돈 버는 농어업 실현', 그 목적 참으로 깔끔하고 명료하다. 이 기금이 실제로 어떤 농어민들에게 무슨 도움.. -
기고만장 송하진 연하장
기고만장 송하진 연하장
2021.01.05도지사 송하진 씨가 연하장을 보냈다. 영정치원寧靜致遠, 본인이 직접 썼다는 한자가 크게 쓰여 있고 친절하게 풀이까지 달아 놓았다. 도청에 가 보니 대형 현수막으로 내걸었더라. 평안하고 안정되어야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다. 이를 두고 "2021년에는 코로나 19와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안정되고 평안한 도정을 만들고, 기후변화에 대응한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라고 도내 주요 일간지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도청이 던져준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썼을 터이니 이는 도청이 내세운 신년 도정의 지표라 보면 되겠다. 송하진 지사가 말하는 안정과 평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누구의 것일까? 그의 안중에 도민의 근간을 이루는 농민과 노동자가 있기는 한 것일까? 어제 전농 전북도연맹은 도청 앞 농성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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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가락 차차차
농민가락 차차차
2021.08.05이 노래들을 통해서 농민들이 희망과 기쁨을 얻고, 농촌사회가 인간다움을 회복하며, 정의와 통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농민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불려지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회장 배종열 1985년 농어촌 연구부, 이 책을 끼리고 살았다. 틈 날 때마다 늘 뒤적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내가 노래를 배우는 방식은 오로지 반복, 부르고 또 부르고.. 그러다 보면 똑같이 부르게 된다. 노총각 타령 일자리도 인정도 없는 도시엔 뭘 하러 가나 이내 몸은 노총각 신세 일만 한단다 금순아 갈 테면 가라 삼돌이도 갈 테면 가라 개간지 비탈에서 나만 홀로 괭이질한다 논도 밭도 없는 놈이 농사는 무얼로 짓나 이내 몸은 소작농 신세 일만 한단다 금순아 갈 테면 가라 삼돌이도 갈 테면 가.. -
일제 강점기 전주, 친일반민족행위자 5인의 기록
일제 강점기 전주, 친일반민족행위자 5인의 기록
2021.01.08이두황, 박기순, 박영철, 백남신, 백인기 전주 출신 혹은 전주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친일 반민족 행위자 다섯 놈. 귀하는 이 중에 알만한 자가 몇이나 되는가? 나는 이두황, 이 자만 알 뿐 나머지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작자들이다. 놈들은 역사의 단죄를 받았을까? 아님 최소한 죗값이라도 치렀을까? 이 자들의 후손들은 지금 어찌 살고 있을까? 날조와 왜곡, 은폐와 조작으로 덧칠된 놈들의 행적, 화려한 변신, 부와 권력의 승계.. 대다수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은 그렇게 살아남았고 그 후예들은 오늘날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을 터,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놈들의 전모를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여전히 놈들의 발아래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검증하고 파헤쳐 단죄하고 청산해야 한다. .. -
비전향 장기수 임방규 선생님
비전향 장기수 임방규 선생님
2020.01.1515척 담 안에 또 가시철망으로 둘러친 감옥 안의 감옥 이가사에서, 총살당한 동지들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펜을 들었다. 이 책은 총살당한 동지들과 죽음을 앞에 두고 주고받은 이야기, 처절했던 삶, 그리고 사형수였던 나의 회상으로 되어 있다. '글을 못 남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날마다 머릿속에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돌아가신 동지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생을 마치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내 가슴속에 나와 함께 있는 동지들, 삼가 총살당한 동지들의 명복을 빈다. (작가 서문 발췌) 책을 덮는 순간 " 아~ 나는 얼마나 막 살아왔단 말인가..", 한숨이 나왔다. 책에 써놓으신 선생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정신을 수습했다. 사람의 육체적인 성장은 이십 대에 멎지만 정신사상적.. -
시인 김남주와 전봉준 정신
시인 김남주와 전봉준 정신
2019.10.22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유신 쿠데타를 일으켰다.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전국의 모든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해남에 내려가 있던 김남주 시인은 그 이튿날 광주로 올라와 친구이자 동지인 이강과 함께 박정희의 폭거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살포하기로 합의했다. 김남주 시인과 이강은 거사를 앞두고 전봉준 유적지(황토현 일대)를 답사하며 결의를 다졌다. - 가을걷이가 끝난 초겨울 들녘 - 황토현과 백산에 올라 창의문을 소리 높여 낭송하고 생가(단소) 방문 - (비문을 손으로 쓸어보고 물끄러미 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흰 옷에 갓을 쓴 노인들 목격 - 훗날 이 날의 심경을 형상한 시, (죽창가)를 남겼다. 이들은 이후 지 사건으로 체포, 구속되어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른다.. -
전봉준 평전「봉준이, 온다」
전봉준 평전「봉준이, 온다」
2019.09.21위인전과 평전은 어떻게 다를까? 잘 알 수 없다. 위인전이건 평전이건 중요한 건 작가의 관점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대상 인물은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까지 꿰뚫을 수 있는 역사적, 구조적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면에서 '봉준이, 온다' 작가의 관점은 탁월하고 훌륭하며 치열하다. 여기에 더해 역사적 상상력(사료에 근거한 과학적 추론)과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이 주는 문학적 감동은 덤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일생을 두고 혁명을 준비한 조직가이자 혁명운동(농민전쟁)을 진두지휘한 사령관인 전봉준 장군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사상과 실천, 인간적 고뇌, 그리고 장렬한 최후까지.. 그가 건설하려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동학농민군은 무엇을 위해 끓는 피로 산하를 적셨을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
늑대가 온다.
늑대가 온다.
2019.06.28사람을 늑대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농사 지으러 내려온 초기, 그러니 30년 전(정확히 말하자면 29년) 막 창립된 성내면 농민회 총무를 맡았다. 당시 회장이 재무를 일러 '늑대'라 했다. 겪어보니 과연 그랬다. 그 후로 나는 쉽게 속을 알기 어렵고 능글맞으면서 행동도 좀 느리대한, 으멍해보이기도 하지만 악의 없이 착한 사람을 만나면 곧잘 늑대라는 별호를 붙여준다. 지금은 이사간 옆집 아짐한테 늑대라 했다가 어머니한테 그러지 말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는데 내 겪어본 바로는 충북 농민들이 이 별호에 가장 맞아떨어진다. 속 깊이 능글맞기는 그 누구도 충북 사람들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렇게 형성된 늑대에 대한 내 이미지는 실제 늑대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수도 있고 일면 비슷한 구석이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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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솨보셨소? 새끼회라고..
잡솨보셨소? 새끼회라고..
2023.01.23여기서 새끼는 아기돼지를 말한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어미돼지 태중에 든 새끼가 되겠다. 본래는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다. 요즘은 생후 한 달이 안 된 갓 태어난 녀석들이 희생된다고도 하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돼지의 운명인 게지, 슬퍼 말어라 아기돼지야. 일찍 죽어 빨리 환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매우 느린 만연체 소설 '화산도'를 읽으면서, 참으로 술 좋아하고 한 잔을 먹어도 맛나게 먹는 주인공 이방근과 함께 많이 마셨더랬다. 그이가 마시면 나도 마시고 그이가 취하면 나도 몽롱해지는 하나 됨의 경지를 맛보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머릿속 깊이 각인된 술자리가 있었으니 '새끼회' 로 속 푸는 장면이 그렇다. 어떤 맛일까? 궁금.. -
석이버섯
석이버섯
2022.10.19가을이면 능이 딴다고 온 산을 뒤지고 다니는 친구가 손질이 까다롭다는데 해먹을 수 있겠는가 물으면서 석이를 건넨다. 걱정되면 손질해서 줄 일이지.. 많다. 한 주먹 집어내 그릇에 담고 손질법을 검색한다. 음식 다루는 데는 '만 개의 레시피'가 가장 도움이 된다. 나 같은 호래비한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 따뜻한, 혹은 뜨거운 물에 10 여 분 불려 비벼 씻기를 세 차례 반복, 비로소 까실까실하던 석이가 부들부들해졌다. 물에 불린 석이는 양 손바닥으로 박박 비벼도 부스러지지 않고 잘 견딘다. 빨래하듯 박박 비볐다. 딱딱한 배꼽을 떼어내야 한다는데 그다지 제거할 것이 없다. 이제 조리법을 찾아보는데 역시 만 개의 레시피, 오늘은 볶음을 선택했다. 프라이팬에 들기름 두르고 살살 뒤적거리며 볶다 소금으로 간 맞.. -
가지너물무침
가지너물무침
2022.10.09가지를 부쳐준다더니 진짜로 보냈다. 어찌 알아낸 주소인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사흘 밤을 자고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제법 묵근해서 이걸 언제 다 먹지 했는데 가지 말고도 책 두 권, 풋고추, 애호박까지.. 이건 종합 선물 꾸러미, 복 받을지어다. 가지를 이리 가차이에서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두어 개 날로 삼켜버리고 옛 기억 더듬어 가지너물을 무쳐본다는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찜솥에 넣고 10여 분 짐이 폭폭 들게 쪄 식어라 하고 둔다. 손으로 쪽쪽 찢어 물켜지지 않게 물기를 살째기 짠다. 찬지름 아까라 말고 담뿍 치고 조선간장, 마늘, 고춧가루, 청양고추,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뒀다 먹을 놈 따로 담아두고.. 한 상 차려 맛나게 먹는다. 세상 간편하고 맛난 가지너물무침이다. 저녁은 애.. -
애기무시 얼지
애기무시 얼지
2022.09.29애기무시 한 보따리가 내게로 왔다. 영태가 돈 좀 만져볼 요량으로 숨었단디, 좌우튼.. 애기무시는 '어린 무', 아삭한 것이 생으로 막 집어먹어도 맛나다. 쌈으로 혹은 고추장 넣고 쓱쓱 밥 비벼먹어도 되겄고.. 그래도 끕이 있제, 홀애비 3년에 얼지 정도는 버물러야제~ 암만! 애기무시 한 주먹 물에 헹궈 다진 마늘, 조선간장, 고춧가루, 깨소금, 대파, 참기름.. 그냥 먹기는 맛이 째까 거시기한 비트 한 조각 썰어 넣고, 오미자청 적당량. 각각의 양념이야 입맛대로 양을 조절하면 되겠는데 홀애비 3년에 손맛은 언감생심, 손에 묻어날 양념조차 아까 젓가락으로 뙤작뙤작.. 이쁘게 접시에 담아 한 상 뒀다 먹을까 했으나 마저 다 묵어부렀네. 얼지는 얼른 묵어부러야제~ 암만! 거 참 맛나네. 어리다고 히피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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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새가 날면..
바람이 불고 새가 날면..
2023.01.01어느 날 길을 가다 만난 황새 떼, 황새 수십 마리 하늘 높이 떠서 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 가히 장관이었다. 사진기를 집어 들었으나 메모리카드가 없다. 차속을 다 뒤졌지만 한 개가 없다.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발 달렸는갑다. 아쉬운 대로 전화기를 꺼내든다. 이 억센 가슴 어디에 쓰랴.. 황새 떼 오기 전에 돌아가리라~~ https://youtu.be/j_T-QoeXEnw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챙겨 다시 황새 떼를 찾아 나선다. 황새 떼는 간 데 없고, 뜬금 없는 쇠부엉이를 만났다. 몸땡이 구석구석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고 잊힌 줄 알았던 탐조 본능이 되살아온다. 그리하여 나는 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을 새와 함께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쟁기촌 논배미 아래 온통 얼어붙은 저수지, 아직 얼지 않.. -
만돌 갯벌 도요물떼새
만돌 갯벌 도요물떼새
2022.11.23심원 만돌 갯벌은 고창에서 새가 가장 많이 모이고 거쳐가는 곳이다. 찍어만 두고 들여다보지 못한 네 개의 폴더가 있다. 속사로 난사해놓은 수많은 사진들이 부담스러워 팽개쳐두었던 것이다. 비로소 들여다본다. 싸움 속 여유, 이것은 역설이다. 올라가는 녀석들, 내려가는 녀석들, 월동하는 녀석들, 눌러사는 녀석들, 번식하는 녀석들.. 가장 많은 것은 도요물떼새. 4월 18일, 여름 깃, 겨울 깃이 혼재된 민물도요들이 날아다니고 좀도요가 드물게 보인다. 이곳에서 번식하는 쇠제비갈매기, 흰물떼새도 보이고.. 북상하는 넓적부리도요를 보는 것이 목적이었겠는데 너무 일찍 갔다. 민물도요들이 어느새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민물도요의 군무, 많은 수의 민물도요들이 여기서 겨울을 난다. 번식을 위해 잠시 북상하는 시기를 빼.. -
뾰족부전나비
뾰족부전나비
2022.09.16선운사 절 마당, 나비 한 마리 훌쩍 날아 처마 끝에 앉았다. 뾰족부전나비, 부전나비 치고는 좀 크다. 절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 나비는 과거 미접으로 분류되었으나 이제 한반도에 정착하여 산다. 나는 이 나비를 위도에서 처음 보고 광주 지산동에서 두 번째,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이따금.. 하지만 오늘처럼 한 곳에서 여러 마리를 본 적은 없다. 기후 변화의 뚜렷한 징표, 이 나비는 환경부에서 기후변화 지표종으로 삼아 서식분포를 조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이 나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19년 전남 광주에서였다 한다. 이후 오랫동안 관찰 기록이 없다가 2006년부터 거제도를 중심으로 관찰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이 녀석은 수컷이다. 암컷은 청회색을 띠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수컷만을 .. -
구레나룻제비갈매기 2
구레나룻제비갈매기 2
2022.09.09구레나룻제비갈매기를 흰죽지제비갈매기로 잘못 알아봤다. 유사하게 생긴 녀석들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대강 훑어보고 지레짐작해버리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겠다.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고 뜯어본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겨울깃) 머리는 흰색이며 정수리 뒤쪽으로 검은 줄무늬(흰색 바탕의 검은 무늬)가 뚜렷하다. 흰죽지제비갈매기보다 뚜렷하고 뒷머리까지 이어진다. 꼬리는 짧고 가운데가 약간 오목하다. 눈 뒤쪽으로 큰 검은색 반점이 있다. 겨울깃으로 깃털 갈이 중인 개체는 몸 아랫면에 검은색이 남아 있다. 날개와 등은 거의 같은 색으로 보인다. 어린 새는 일부 날개덮깃과 셋째날개깃에 검은 반점이 있으며 깃 끝에 엷은 황갈색 무늬가 있다. 날 때 꼬리 끝에 가늘고 어두운 .. -
구레나룻제비갈매기
구레나룻제비갈매기
2022.09.09동림지 뚝방을 걷는다. 대략 1km, 뚝방길 걷기에는 더없이 좋을 때다. 태풍 힌남노 조용히 지나가 들판은 무사하다. 홀연 갈매기 한 무리 나를 스치고 날아간다. 대략 20여 마리,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날갯짓이 황홀하다. 빠른 걸음으로 차로 돌아가 사진기를 챙긴다. 갈빗대가 다 낫지 않아 자세가 나올까 염려했으나 큰 지장은 없다. 얼마 만인가? 사진기가 낯설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비갈매기다. 녀석들은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나고 또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 넓은 저수지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빙 돌고 있었다. 녀석들을 잘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겠다. 도감을 뒤져보니 '흰죽지제비갈매기'라고 생각했으나 전문가에게 의뢰하니 '구레나룻제비갈매기'란다. .. -
참줄나비
참줄나비
2022.08.268월 중, 하순 무렵 나비 보러 한 번은 가고 싶었으나 결국 못 가고 만다. 올해 나비 보러 길을 나서는 일은 이제 아마 없을 게다. 내년에도 나비는 날아다닐지니 아쉬워 말지어다. 이름표를 붙이지 못한 녀석들, 순위에서 밀려 제껴젔던 녀석들 들여다보는 것도 일이다. 오늘도 투쟁전선에서 동분서주 고생하고 있을 동지들에겐 민망한 일이지만 예기치 않은 병원 생활이 가져다준 행운이라 생각하자. 참줄나비, 진짜 줄나비라는 겐가? 경기도, 충청부 일부 지역과 강원도 동. 북부 지역에 분포, 산지의 계곡 주변 잡목림 숲에 서식,먹이식물은 올괴불나무, 연 1회 6~8월 발생하며 애벌레로 월동한다. 한반도에는 중.북부지방에 국지적으로 분포하는 종이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도 관찰기록(김명희, 1996: 3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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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정선..
여기는 정선..
2022.10.10산에 오른 수달 산토끼 씨 말리고 뼝대에서 떨어진 멧돼지 물고기 밥이 된다는.. 그런 땅에다 보리농사 지어보겠다 하여 보리종자 싣고 정선으로.. 호남벌 보리농사도 깨갱맥인데 농사가 파농이라 깨갱맥인데 농사가 모험인 세상 까짓거 해보는 거다. 응원한다. 수리봉 전망대, 올 가을 단픙 들면 여기서 하룻밤 자는 걸로.. 꿈★은 이루어진다. 숲길을 거슬러 거슬러.. 수달은 보이지 않았다. 밤에 움직이는 게다. 수리봉, 소원을 빈다. 올 가을 단풍 들면 토끼 잡는 수달 보게 해 줍서. 수리봉은 생각보다 조망이 좋지 않다. 산불감시 초소에 올라도 산태극 수태극 하며 흐르는 강줄기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 나무에 뿌리내린 두터운 이끼, 마치 털옷을 입은 듯.. 기나긴 겨울을 어찌고 날까? 뜨뜻한 구들이 그리워지니.. .. -
난생처음 병원 신세
난생처음 병원 신세
2022.08.23뱀사골에는 설핏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은연중 비도 내리고.. 출발할 땐 내리지 않던 비가 굵어졌다. 세찬 빗줄기를 뚫고 우리는 단심 폭포에 도착했다. 단심 폭포에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사고는 순간에 일어났다. 나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추락했고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내 뒤에 서 있던 이의 비명 소리를 들은 듯한데 내가 내지른 비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오늘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가 생각되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으나 딸싹도 할 수 없다. 신발 한 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 몹시 불쾌했지만 역시 마음 뿐이다. 놀란 사람들이 달려오고 여기저기서 구원의 손길이 뻗어왔으나 어느 손 하나 쉬 잡을 수 없었다. 내 몸의 상태를 스스로 가늠하며 온전히 내 힘으로 일어나야 했다. 얼마.. -
울릉도, 그리고 박정희
울릉도, 그리고 박정희
2021.09.01우리는 울릉도 곳곳에서 박정희와 대면했다. 어떻게든 박정희와 엮어 '기승전 박정희'를 위해 애쓴 흔적들과 도처에서 맞닥뜨렸던 것이다. 울릉군수 옛 관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이듬해 10월 울릉도를 방문한다.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 그무슨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었던 시절이지만 대통령이나 의장이나 뭐가 달랐겠는가? 울릉도로서는 감지덕지할 일이었을 것이고, 박정희는 돌아간 후 울릉도 종합개발계획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그 후 울릉도는 70년대 초반 오징어 잡이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딱히 박정희의 공이라 할 바는 아니지만 그락저락 울릉도 근대화의 은인으로 기억될 만도 하다. 그렇다 하나 일제 강점기 식민 관료의 관사로 쓰이던 건물 그대로 일식 요정 냄새 풍겨가며 박정희 개인을 숭배하는.. -
저동 일출, 섬을 떠나다.
저동 일출, 섬을 떠나다.
2021.09.012박 3일이 4박 5일이 되었다. 울릉도에서 처음 맞는 마지막 일출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때 맞춰 일출 보겠다고 부지런히 걷고, 북저바위와 각을 맞추느라 왔다 갔다 했다. 아침을 먹는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를 두고 고민하다 찾아간 집에서 우리는 이틀 후 확진자가 될 손님하고 함께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알게 될 일이고, 밥은 잘 먹었다. 2박 3일이 4박 5일이 되고 일주일 후에 다시 일주일 휴가, 참으로 호화찬란한 여름 뒤끝이로다. 시간이 남는다. 우리는 관해정 후박나무 그늘 아래 앉아 오래도록 쉬었다. 앉아 쉬자니 흑비둘기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처음에는 안 보이던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후박나무 열매는 녀석들의 주식이나 다름없으니.. 흑비둘기만이.. -
지새지 말아다오 저동의 밤아
지새지 말아다오 저동의 밤아
2021.08.31아침이 밝았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 잦아들었다. 촤르륵 촤르륵~ 돌밭을 구르는 파도소리 차분한데 오늘도 배는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린다. 내일은 들어오겄지, 암만.. 학포는 먹을 것이 없다. 나리분지 씨겁데기술로 목을 축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석포 독도 전망대에서 독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11년 전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죽도를 봤는데 관음도로 오인했다.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거대한 와불, 관음보살을 떠올렸던 것이다. 석포 일출 일몰 전망대에서 관음도는 일찍이 '방패도'라는 이름으로 수토사의 기록에 나타난다. 관음도는 총독부가 제작한 조선지형도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본래 이름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울릉도의 지명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다양한 경로를 거치게 되는데 토속 지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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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솨보셨소? 새끼회라고..
잡솨보셨소? 새끼회라고..
2023.01.23여기서 새끼는 아기돼지를 말한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어미돼지 태중에 든 새끼가 되겠다. 본래는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다. 요즘은 생후 한 달이 안 된 갓 태어난 녀석들이 희생된다고도 하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돼지의 운명인 게지, 슬퍼 말어라 아기돼지야. 일찍 죽어 빨리 환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매우 느린 만연체 소설 '화산도'를 읽으면서, 참으로 술 좋아하고 한 잔을 먹어도 맛나게 먹는 주인공 이방근과 함께 많이 마셨더랬다. 그이가 마시면 나도 마시고 그이가 취하면 나도 몽롱해지는 하나 됨의 경지를 맛보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머릿속 깊이 각인된 술자리가 있었으니 '새끼회' 로 속 푸는 장면이 그렇다. 어떤 맛일까? 궁금.. -
고기가 먹고 싶을 땐.. 양송이 버섯구이
고기가 먹고 싶을 땐.. 양송이 버섯구이
2010.03.31현미밥 채식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찹쌀과 맵쌀 현미를 반반씩 섞어 지은 현미밥에 채소 반찬, 삭힌 홍어를 제외하고는 육식을 하지 않았고 막걸리를 제외하고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 결과 약 5kg가량 몸무게가 줄었다. 겨울 동안 불어난 몸무게가 빠진 수준이긴 하지만 육식을 하지 않을 뿐 배불리 먹고도 감량을 한 것이니 나쁘지 않다. 이제는 백미로 지은 밥은 싱겁기도 하거니와 씹는 맛이 없어서 먹기가 사납다. 다만 이따금 찾아오는 고기 생각이 떨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양송이버섯구이가 좋다. 그간 몇 차례 먹어봤지만 먹을 때마다 맛이 새롭다. 밥상이 준비되었다. 완전한 현미밥, 백여번 이상 씹어야 제 맛이 난다. 장모님이 주신 갓김치, 갓김치 좋아한다고 늘 갓김치를 주신다. 양송이 3천.. -
매콤하고 시원하게 비벼먹는 라면, 뿔면
매콤하고 시원하게 비벼먹는 라면, 뿔면
2013.08.09매콤하고 시원한 라면, 이름하여 . 알만한 사람은 아는 감방 특식 화기가 허용되지 않는 조건에서 뜨거운 물로 불린 컵라면이 주재료가 된다. 언젠가 구치소에 다녀와 선보인 것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 아이들이 찾는다. 이번에는 며칠 후 있을 학교 캠프 요리 경연대회에 출품하겠다고.. 감방 음식 괜찮겠나 했더니 지네 학교 감방 다녀온 학부모 많아 흉 될 일 없단다. 날도 덥고 하니 한번 해 보는디.. 초장, 훈제 닭 혹은 오리, 묵은지는 필수 재료. 초장은 봉지 고추장에 사이다, 레모나 등을 섞어가며 새콤달콤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는 바깥세상이니 알아서 정성껏 만들면 되겠다. 훈제오리는 뜨거운 물에 봉지째 넣어서 덥힌 후 잘게 찢으면 된다. 여기야 뭐 칼도 있고 도마도 있으니.. 묵은지도 잘게 찢.. -
최 보따리, 해월 최시형
최 보따리, 해월 최시형
2022.11.17해월 최시형, 그는 평생을 바쳐 동학 포교에 전념했다. 교조 최제우 순교 이후 그의 활동은 거의 대부분 지하에서 이뤄졌다. 그의 기나긴 잠행과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에 동학은 조선 민중의 가슴 속 깊이 뿌리내린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동학은 그 자체 교리가 품고 있는 민중성과 혁명성으로 하여 조선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관의 늑탈과 탄압 속에서 구축된 견고한 조직망은 사회변혁을 꿈꾸는 혁명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시형ㆍ이필제 영해봉기를 성공시키다. 이필제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 민란의 시대가 낳은 직업적 봉기꾼, 혁명가였다. 그는 결코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봉기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민중봉기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 그는 일단 한 고을에 잠입.. -
허리디스크 극복기
허리디스크 극복기
2022.10.04쓰다 만 글을 발견했다. 세월은 참으로 빨라 벌써 5년 묵었다. 그해 겨울 나는 갑자기 찾아온 허리디스크로 하여 무지하게 고생했다. 하지만 대략 3개월 만에 완벽하게 나았는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다 작파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해(2016년) 12월 겨울 채비를 미처 해놓지 못해 며칠간 땔나무를 했다. 다소간의 도끼질, 사흘간의 톱질 끝에 가벼운 감기가 왔으나 사나흘 만에 나갔다. 감기쯤이야.. 그런데 진짜가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 일어나 걸을라 치면 다리가 좀 당긴다 싶었다. 12월 21일이었다. 하지만 통증은 가벼웠고 그러다 말겠지 했다. 이튿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걷다 격렬한 다리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다. 왼쪽 엉벅지를 무딘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고 종아리 바깥쪽으로는 녹슨 칼로 후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