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농민, 농사/농사
고추밭에서..
고추밭에서..
2024.09.25법무부 사회봉사 마지막 날이다. 고추를 땄네, 한 나절씩이나.. 나는 꽤 오랫동안 된장 발라먹을 풋고추 딸 때 말고는 고추밭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얼마 만인가? 내 고추밭에 얼씬도 하지 않은 건 어머니 돌아가신 다음부터였다. 그러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해 여름 땡볕에서 고추를 따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어째 머리가 아프시다며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청하셨다. 그날은 내 용케 어머니 거들어 고추를 땄던지라 함께 낮잠을 잤더랬다. 이튿날 나는 서울에 갔네, 둘째 수명이 어머니에게 맡기고 범민족대회였는지 민족공동행사였는지 다녀왔다. 그러니 그날은 8월 15일이었다. 온 가족이 냉면집에 갔는데 어머니 젓가락질이 이상했다. 접시하고 거리를 가늠하지 못해 자꾸 맨바닥에 젓가락질을 하셨다. "어찌 이런다냐?" 하..
모내는 풍경
모내는 풍경
2023.05.11천왕봉 아래, 바래봉 아래 지리산 자락 높은 들 모내기 한창이더라. 실상사 옆 손바닥만 한 들판 너 말 가웃지기 반듯한 논 팔십을 바라보는 내외간 모를 내고 있다. 태국 청년을 조수로 달고 온 이앙기 논바닥을 누비고 바깥냥반은 모쟁이 안사람은 갓모를 심고 있다. 풍경은 그림인데 공연한 짜증이 몽골몽골 술기운이겄지.. 짜증이 왈칵 눈물로 솟구쳤다. 셈속 없는 이런 농사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래 따지고 저래 따져도 회기 안 닿는 농사 몇 번이나 더 지을까, 언제 그만둘까 늘어지느니 한숨인데 아흔닷 마지기 농사, 손꼽히는 살래 대농 이앙기 기사는 백 마지기 채울 요량에 꿈이 부푼다. 아짐, 모내기고 지랄이고 꽃구경이나 갑시다 바래봉 철쭉 흐드러졌단디 기다리다 지쳐 지고 있단디. 수입쌀 허벌나게 사쟁여놓고 ..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2021.03.11봄이다. 천지간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간만에 일을 맡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쟁기질하러 간다. 밭이 꽤 크다. 심어놨던 호두나무 죄다 뽑아내고 잔디를 심는다 한다. 물론 임대한 밭이다. 땅주인은 따로 있다. 저만치 쬐깐한 밭뙈기 하나, 꼬부랑 할아버지, 경운기 털털거리며 밭을 갈고 있다.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누구여? 저 만각동 대종이요~ 오~ 대종이.. 내가 눈이 잘 안븨여 그나 자네 일도 바쁠거인디 욕 보네 트랙타가 심 쓰는디요 문.. 아이고메 그나 어찌고 경운기로.. 여가 길이 없네이, 기계가 못 들와 글고 이게 투기꾼 것인디 나보고 안 벌어먹으락 헌가.. 멫 년 묵었던 밭이여. 그리서 뭇 숭구실라고요? 들깬나, 뭇나.. 春來不似春,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다.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
44억짜리 전북도청 잔디 농사
44억짜리 전북도청 잔디 농사
2020.11.17도청광장이 잔디광장으로 바뀌었다. 44억이 들었다 한다. 기존 시설 들어내고 새로 잔디 깔고 기타 조경에 그리 들었다는 것이겠다. 저짝에 보이는 정자가 3억짜리라던가, 4억짜리라던가.. 44억이면 잔디 말고 그냥 돈으로 깔아도 푹신하게 깔았겄다. 좌우튼 그리 들었다 하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청 앞 농민대회를 앞두고 냄시 나는 가축분 퇴비를 잔디광장 전면에 살포했다. 내 비록 심혈을 기울이지 못했다 하더라도 잔디 농사 20년이 넘었는데 이 시기에 이런 거름을 준 적도, 이렇게 농사짓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잔디가 휴면 상태로 들어간 지금, 그것도 이미 광장 전면에 고루 뿌리를 내린 조건에서 유기질 퇴비를 뿌리다니.. 내 그동안 농사를 잘못 지었단 말인가? 하여 장성 삼서면에서 농사짓는..
스미치온
스미치온
2018.06.18필시 드랭이 짓일 것이다. 막으면 뚫고, 다시 막으면 또 뚫고.. 초기 물관리에 실패한 논바닥, 꼬랑이 안 보이드락 피가 퍼났다. 물 방방히 잡아놓고 피 전문 제초제 '저격수'를 살포했다. 그리고 드랭이를 잡기로 맘먹었다. 벼농사 28년 만에 독하게 먹는 맘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인지 나도 늙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이라야 죽는다면서 '스미치온'을 집어준다. 스미치온.. 내 이날까지 한 번이나 써본 농약인지 기억에 없다. 하지만 노래 속 가사로는 머릿속에 콱 박혀 있다. '당신과 나아 사이이에 스미치온만 없어었다아아면~" '우리 가락 좋을시고', 85년도에 만들어진 테잎이니 노가바이기는 하나 당시 최신곡이었다. 아마도 정광훈 의장님의 솜씨가 아니겠는지.. 옛 생각에 다시 들어본다. 가슴 아프..
뙤밭 머리에 누워..
뙤밭 머리에 누워..
2018.06.17뙤 농사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농사 믿거나 말거나.. 뙤 깎아주는 일쯤이야 골프장 카트 타는 기분으로.. 재단사가 오고 재봉사가 오고 상차도 쉽다. 새 농사 채비는 로라 질로.. 죽 떠먹은 자리 메꿔지 듯 새싹이 돋는다. 비 안 오면 물 주고.. 풀 나면 약 치고.. 약 맞은 풀들 일동 묵상 세상 편한 농사가 뙤 농사라! ㅋㅋㅋ
잔디를 떠낸다.
잔디를 떠낸다.
2016.10.12작년 여름 떠내고 이르면 올 봄 다시 떠낼 수 있겠다 싶었던 잔디를 이제서야 출하한다. 일찍 차오른 밭부터 순차적으로 떠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군데 잔디밭을 일거에 비우게 되었다. 올 여름 극심한 가뭄과 폭염 속에 잔디나 나나 고생 깨나 했다. 잔디가 시커멓게 타고 베베 꼬일때면 내 가슴도 시커멓게 타들어갔고 그만큼 잔디는 더디게 차올랐다. 어느 순간 풀밭이 되었다가 다시 감쪽같이 잔디밭이 되기를 몇차례, 호맹이질도 많이 했고 제초제도 여러차례 살포했다. 그랬던 잔디밭이 휑하니 비고 나니 시원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쓸쓸해진다. 바야흐로 때는 가을이 아닌가.. 나 없는 사이 재단사가 다녀갔다. 이른 아침 마지막 머리 단장을 해주러 나왔으나 이슬이 채여 여의치 않다. 뗏장을 땅에서 분리한다. 잔디를..
모내기 전투를 마치고..
모내기 전투를 마치고..
2016.06.07북에서는 모내기를 그냥 모내기라 안하고 모내기 전투라 하는 모양이더라. 다른 건 몰라도 모내기에 전투를 붙여 부르는 것은 십분 공감이 간다. 일도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우리민족 전래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첫번째 공정이 아니던가? 제아무리 우리쌀이 천대받고 수입밥쌀이 주인행세를 한다 해도 쌀농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농업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무엇이 질기고 누가 살아남는지 두고 볼 일이다. 침종, 5월 13일 쌀농사 경력 26년차, 26번째 씨나락을 담근다. 종자 발아기에 담궈 약 48시간이면 침종 과정이 완료된다. 과거 1주일에서 열흘까지 물 갈아가면서 담그던 때에 비하면 많이 간편해졌다. 반면 각종 병해가 늘어나 못자리를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종자 소독에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최근에는 ..
잔디 이야기 2
잔디 이야기 2
2015.06.302015년 8월, 사진만 몰려놓고 팽개쳐 둔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을까? 당시 날짜대로 글을 저장하겠으나 실제 작성하는 건 2022년 7월 11월이다. 어느새 7년 세월이 훌쩍, 사진 속 상황은 아마도 6월 중하순 무렵이겠다. 소매를 하지 않는 잔디 농가에게 8월은 완전 비수기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단사가 줄을 긋고.. 재봉사가 잔디를 뜬다. 재봉사라는 표현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실제 작업하는 걸 보면 재봉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잔디 상태가 나쁘지 않은데 작은 장으로 작업하고 있다. 큰 장 작업이 보편화되기 이전인가? 평당 가격 차이가 대략 2천 원 정도나 되는데.. 작은 장은 1톤 차가 밭으로 직접 들어와서 실어낸다. 큰길에서 대기 중인 큰 차에 다시..
가뭄이 너무 길다.
가뭄이 너무 길다.
2015.06.09갈숲 지나서 산길로 접어들어가몇구비 넘으니 넓은 곳이 열린다길섶에 피인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공중의 찬바람은 잠잘 줄을 모르난다에헤야 얼라리야 얼라리난다 에헤야텅 빈 지게에 갈잎 물고 나는간다. 오랜 가뭄에 논도 밭도 다 갈라지고메마른 논두렁엔 들쥐들만 기어간다죽죽 대나무야 어찌 이리도 죽었나옛집 추녀엔 이끼마져 말라버렸네에헤야 얼라리야 얼라리 난다 에헤야텅 빈 지게에 갈잎 물고 나는 간다 이 가뭄 언제나 끝나 무슨 장마 또 지려나해야해야 무정한 놈아 잦을 줄을 모르난다걸 걸 걸음아 무심한 이내 걸음아흥 흥 흥겹다 설움에 겨워 흥겹다.에헤야 얼라리야 얼라리난다 에헤야텅 빈 지게에 갈잎 물고 나는간다. 가뭄이 너무 길다.흙먼지만 풀풀 날리고 가뭄에 오갈 들어버린 작물이 당췌 크지를 않는다. 오랜 가뭄에 농민..
잔디농사 이야기
잔디농사 이야기
2015.05.23명색이 농사꾼 블로그에 농사짓는 이야기가 통 없다. 작년 여름 콩 심어놓고 '가물에 콩 나듯 한다'는 한마디 던져놓은 것이 마지막이다. 작년 콩 농사는 완전히 망쪼나서 수확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갈아놓은 밀이 그럭저럭 잘 되었다. 농사짓는 이야기가 통 없으니 이거이 진짜 농사를 짓는 사람인가 어쩐가 의심하는 분도 계시리라. 다소 게으르고 해찰하기 좋아하지만 나는 분명 농사꾼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농사짓는 이야기를 비교적 자주 해볼까 한다. 나는 영농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손이 많이 가는 농사보다는 홀랑하게 지을 수 있는 농사를 추구해왔다. 농민회 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돌아다니기 좋아해서다. 홀랑한 농사를 짓는 탓에 돈이 영 돌질 않는다. 올 봄 찾아든 돈 기근은 지금도 가실 줄을 모..
가물에 콩 나듯..
가물에 콩 나듯..
2014.07.08어찌야 쓰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