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2025.02.10입춘이 지나자 비로소 겨울이 왔다. 최강 최장 한파와 폭설, 강추위와 눈을 겁나 좋아하는 나도 좀 징허다. 눈은 실상 길게 내릴 뿐 엄청나게 오지는 않았다. 밤사이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날, 나는 산으로 갔다.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절간 같은 집, 고양이 발자국 따라 사람 길 내고..껄막 눈 치워 찻길 내고..선운산 경수봉 아래 인적 끊긴 마을에 도착했다. 방장산, 입암산을 두고 고민이 있었으나 차 대기 좋고 돌아 나오기 쉬운 선운사를 택한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길을 택해 산을 오른다. 장송의 기세가 늠름하다. 경수봉 지나 심원 방면, 산길 거친 이 능선을 탈까 했으나 역시 차 둔 곳으로 돌아 나오는 것이 낫겠다 생각한다. 경수봉 아래 전망 바위에 서니 함박눈이 펑펑..세상이 온..
불태산
불태산
2025.01.16오래된 산행, 기억이 소실되기 전 기록을 남긴다. 때는 지난해 11월 17일이었다. 무등산에서 내려와 광주에서 하루를 머물고 집으로 간다. 영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찜찜한 마음 가득 고갤 들어 하늘을 본다. 눈앞에 불태산, 언젠가 오르게 될 거라 생각해 오던 산이 버티고 있다. 순간 결정한다, 가자~불태산 능선 끝자락을 가늠하며 차를 몰아 길가에 차를 대고 산에 붙는다. 그 옛날 어디에나 있었을 법한 고갯길을 넘는다. 11월 중순, 아직 가을빛이 고스란하다. 괴나리봇짐 둘러맨 사내라도 불쑥 튀어나올 듯, 쓰개치마 둘러쓴 낭자일 수도..별의별 쓰잘데없는 잡념에 휩싸인다. 고갯마루 전망 좋은 곳, 눈앞메 무등산, 몸을 돌리니 저 멀리 반야와 노고..손을 휘저으면 잡힐 듯하다.음.. 불태산.. 내심 흡족한 ..
지리산에서 추석을..
지리산에서 추석을..
2024.10.15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고 성묘만 하기로 한 지 석삼년, 올해는 그조차 빼먹었다. 보름 후면 어머니 기일이니 벌초를 정성스레 한 것으로 벌충한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달은 산에서 봐야 제 맛이다. 늘 혼자 가던 길, 이번에는 애들이랑 간다. 언제부턴가 혼자 산에 드는 게 껄적지근해졌다, 늙어가는 게다. 흔쾌히 따라나서는 녀석들, 좀 큰 게다. 한신계곡 따라 올라 세석에서 하룻밤 자고 천왕봉 들러 백무동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9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숲에 드니 선선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온몸이 땀으로 촉촉해진다. 비 지나간 숲도 촉촉, 가을은 아직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애들은 그럭저럭 신이 나 있다, 아직은..다소 지쳐가는 듯..험악한 오름길 막바지 조망이 터진다. 백운..
세석고원 잣까마귀
세석고원 잣까마귀
2024.06.235월 말 6월 초 약 보름, 모든 힘을 모내기에 쏟았다. 이 시기 모든 일이 뒤로 밀렸다. 모내기 마치고 다른 일 터질 새라 지리산에 댕겨왔더랬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뜀 뛰 듯 지나가고 말았으니, 그날의 감흥은 이미 희미하지만 더 잊히기 전에 기록을 남긴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 거슬러 세석으로, 하룻저녁 자고 내려올 요량이다. 첫나들이폭포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무슨 세줄일까? 귀찮아, 나비에 대한 관심이 심각히 사그라들었다. 막바지까지 청초한 함박꽃, 북에서는 목란이라 부르더라. 계곡이 쩌렁쩌렁, 목청 좋은 큰유리새나비도 보고, 새도 보고 온갖 것들 들여다보며 할랑할랑 오르다 보니.. 막판 고바위에서 다리에 쥐가 날똥말똥 힘겹게 올랐다. 능선에 오른 순간 들려온 잣까마귀 소리에 천근만근이던 다리가..
12월 21일, 구미란에서 입암산까지..
12월 21일, 구미란에서 입암산까지..
2023.12.22간밤 많은 눈이 내렸다. 헌데 서해안 쪽에 치우친 눈이었던 모양이다. 일감 취소하고 일찌감치 방장산에 오르려던 생각 접고 전주로 달린다. 칼잡이 양성 교육을 하기로 한 날이다. 서해안 쪽에 내린 눈은 보통 태인을 지나면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번에는 모악산까지 제법 하얗다. 칼갈이 교육을 마치고 원평으로 향한다. 갑오년, 그해 음력으로는 동짓달 스무닷새였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원평에 이르러 구미란에 진을 세우고 조일 연합 토벌대를 맞아 싸웠으나 패했다. 그 싸움터였던 구미란 마을 뒷산, 뻗어 들어온 대나무가 소나무를 위협하고 있다. 농민군은 산 위에 진을 치고 일본군과 관군은 원평천 건너 벌판에 포진했다. 오전 9시부터 양측은 접전을 벌였다. 산 위의 농민군이 지형상 유리한 위치를 점했음에도 일본군과..
덕유산 2(삿갓골재~육십령)
덕유산 2(삿갓골재~육십령)
2023.10.05자다가 서너 차례 깼다. 너무 일찍 자서, 더워서, 방광 비우느라, 사람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대피소의 밤은 늘 이렇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06시 30분 비 내리는 삿갓봉,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이젠 대놓고 내린다. 다시 대피소로 피신, 꿈나라로.. 비 그치길 기다리며 그야말로 꿀잠.. 얼마나 잤을까? 대피소가 텅 비고 비가 그쳤다. 사과 하나 촘 크랙카 한 봉지로 배를 채운다. 산에서 나는 탈탈 굶고 다닌다. 08시 20분 길을 나선다. 골짝마다 몽골몽골 구름이 일어난다. 구름천지, 구름바다.. 적상산이 섬처럼 솟아 오르고, 비에 젖은 풀꽃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08시 50분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환갑 지나면 지나치는 걸로.. 아직은 이런 풍경을 보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 갈 ..
덕유산 1(향적봉~삿갓골재)
덕유산 1(향적봉~삿갓골재)
2023.10.04성묘 마치고 산으로 간다. 11년 전 갔던 길, 곤돌라 타고 설천봉, 향적봉 출발해서 삿갓골재 1박 남덕유, 장수덕유 지나 육십령까지.. 그간 먹은 나이를 생각해서 최대한 짐을 줄인다.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산 아래서 뭉그적댄 시간이 너무 길었다. 가다가 날 저물겄다15시 30분 향적봉 오르는 길, 중첩된 산줄기 너머 나란히 솟은 남덕유와 장수덕유를 본다. 겹겹이 쌓인 산줄기, 패인 골짝마다 쌓여 있을 역사의 무게를 생각한다. 향적봉, 사람들이 많다. 잠시 숨 돌리고 중봉으로..저기 머얼리 구름을 인 반야봉 가슴에 담고,죽어 천 년 살고 있는 고사목 지나,15시 55분 중봉, 편안한 능선길 이어지는 덕유평전 굽어보며 숨을 돌린다. 산길은 어제나 갈之자.. 타박타박 그 길 위에 나의 걸음을 얹는다. 백암봉..
쌀쌀한 봄바람 타고, 가는 봄인지 오는 봄인지..
쌀쌀한 봄바람 타고, 가는 봄인지 오는 봄인지..
2023.04.11고창 바닷가 심원면은 부안에서 해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경계로 아래로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을 펼쳐놓고, 위로는 선운산 경수봉에서 개이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 골짜기를 파고든 깊숙한 산중 마을을 숨겨 놓았다. 그 길을 지나다 산이 당기는 힘에 이끌려 핸들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작은 골짝 적당한 지점에 차를 세우고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은 있으나마나 딱히 길이랄 것도, 그렇다고 아니랄 수도 없는 그런 길이다. 이런 길은 때론 쪼꼿하게, 때론 갈 지자로 우왕좌왕하며 걷는 맛이 좋다. 산에 접어들아마자 이미 꽃은 지고 없지만 풍성한 잎이 돋아난 변산바람꽃이 나를 반긴다. 새로운 군락지를 추가한다. 규모가 꽤 크다. 족두리풀, 노루귀가 지천이다. 내년 봄 다시 만나세~ 인사를 남기고 할랑할랑 발길을 이어간다...
눈 깊은 입암산에서..
눈 깊은 입암산에서..
2022.12.26우금티 혈전 이후 전봉준 장군은 원평, 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1년여간의 농민전쟁을 마감하고 잠행에 들어간다. 입암산 아래 천원에서 하루를 묵은 장군 일행은 산을 넘어 입암산성에 들어 하루를 머무는데 12월 25일(양력)이 그날이다. 호남벌에 큰 눈이 내렸다. 그중에서도 정읍에 눈다운 눈이 내렸으니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었던 탓이다. 12월 24일, 나는 지금 산으로 간다. 내일 오후면 많은 눈이 녹아버리게 될 것이고, 눈길은 사람들의 발길에 어지러워질 것이기에.. 나선 김에 장군님 길앞잡이도 해드리고.. 정읍 쪽에서 바라보는 입암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성채를 연상케 한다. 굳이 성벽을 쌓지 않아도 됨직한 가파른 산세지만 산성 북문 좌우로는 아직도 기나긴 성곽이 남아 있다. 정면의 갓바위가 오늘의 목적지 ..
눈 내린 방장산에서..
눈 내린 방장산에서..
2022.12.19간밤 눈이 꽤 내렸다. 날이 말짱 개여 아닌 보살 하고 있지만 눈은 분명 새벽녘에야 내렸다. 오랜만에 내린 눈다운 눈, 눈 내린 날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산에 가는 것 말고.. 하여 나는 산으로 간다. 신기 마을 지나 산으로 드는 길, 더 이상 차가 오르지 못한다. 네 바퀴가 다 헛도니 달리 도리가 없다. 차가 자동으로 뒤로 돌면서 고랑에 빠졌으나 4륜 구동의 위력으로 가볍게 빠져나왔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간다. 용추폭포 방면 들머리, 장담하건대 이 길을 거슬러 방장산을 오를 사람 아무도 없다. 눈 없는 낙엽길에서도 일보 전진, 이보 후퇴를 거듭하며 힘을 쏟아야 하는 급경사 직등길인 데다 접근이 쉽지 않은 탓이다. 오늘 방장산은 동서종주가 아니라 남북을 횡단하는 숫눈길이다. 눈길은 아무래도 전인미답의..
백운산, 한재에서 무수내까지..
백운산, 한재에서 무수내까지..
2022.11.21진달래 산천 11월 정기산행, 백운산으로 달린다. 방장산 너머 해 올라온다. 아침 노을 장하다. 남도대교에서 한재로 이동, 잠들어 계신 빨치산 영령들께 인사 드리고 산행에 나선다. 정원모 鄭源模 Ⅱ 2010년 11월 14일 10:00 그의 무덤가엔 쑥부쟁이 한아름 피어 있었습니... blog.naver.com 또아리봉 또는 똬리봉, 표지석에는 따리봉으로 되어 있다. 조망대에 서니 시야가 툭 터져 전남북 일대의 산들이 발 아래 펼쳐진다. 젊은이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산행에 나서신 88세 소년 빨치산 김영승 선생님과 함께.. 가지 앙상한 겨울산, 하루빨리 눈이 내려야.. 똬리봉 지나 밥봉 가는 길, 산길이 거칠어진다. 음.. 저건 뭔 똥이지? 아마도 담비, 뭘 먹었을까? 똥이 푸지고 찰져보인다. 해가 서산에 ..
지리산 전북도당 트(6개도당회의 트)를 찾아..
지리산 전북도당 트(6개도당회의 트)를 찾아..
2022.10.22진달래 산천 10월 역사 기행 뱀사골-단심폭포-큰얼음쐐기골-표고막터-전북도당 트(6개도당회의 트)-단심 폭포-뱀사골 지리산을 오른다. 지난 8월 가다 만 길.. 날이 매우 좋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하늘은 높고 푸르며 대기 청정하고 햇살 따스하다. 뱀사골을 거슬러 오른다. 가을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열심히 내려오는 중.. 단풍 없지 않다. 명색이 가을인데..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해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해님이 빗다 버린 면빗인가요? 다 아닌 것 같다, 달은 그냥 달이다. 큰얼음쐐기골에서 내려온 물이 뱀사골과 합수되기 직전 폭포로 떨어진다. 단심폭포, 전북 빨치산들의 비원이 서린 곳이라 했다. 지난 8월 쏟아지는 비를 뚫고 올라와 단심폭포를 바라보다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