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 하늘이 찌뿌둥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엔 소먹이로 말아놓은 짚더미들이 하얗게 뒹굴고 있다. 
너무 쓸어가 버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병풍산, 담양-고창 간 고속도로를 타고 담양 부근을 지날 때면 들판 가운데 솟아오른 당당한 풍채를 지닌 일군의 산들이 몹시 궁금했었다. 
그래 오늘은 병풍산이다. 주위는 물론 멀리 있는 산들까지 막힘 없이 조망할 수 있는 그런 산이라 했다.  
왼편 삼인산, 오른편 병풍산을 돌아 오른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산길, 삼인산은 덤으로 오른다. 

 

 
▲ 담양답게 초입은 대나무밭 사잇길로 시작된다.

근처에서 김밥이라도 사려 했는데 오늘도 실패다. 
산 입구에도, 바로 인근에 있는 수북면 소재지에도 김밥 파는 데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고 오르는 것으로 하고 소재지 식당에서 백반을 먹는다. 
이른 시각인데 각 일병씩 비우고 계시는 멋들어진 아자씨들로 식당이 시끌덤벙하다.  
배고파서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든든히 자유시간 세 개, 단감 한봉 다리, 손가락만 한 소시지 두 개, 물 한병 장만하였다. 

삼인산은 산 모양이 사람 인자 세 개를 겹쳐놓은 형상이라 붙은 이름이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지어놨을까? 사람 인자 형상을 한 해우소에 들어가 묵은 것을 밀어낸다. 해우소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다. 
해우소가 있는 주차장이 산행의 들머리가 되겠다. 

 

 

삼인산 정상까지는 약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두세 차례 정도의 짤막한 편한 오름길을 제외하고는 그저 말없이 올라야 하는 순수한 오르막길이다.
바람 한점 없어 쉴 새 없이 땀이 흐른다. 다음에 산에 올 때는 땀 닦는 수건도 잊지 말아야겠다.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위 조망이 터지고 바람도 살살 일어난다. 
정상에 서니 건너편 산이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며 솟아 있다. 고속도로에서 보면 병풍처럼 산자락을 두르고 있어 쩌 산을 병풍산으로 알았다.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불태산이다. 죽겄다고 올랐더니 쩌 산이 더 멋져 보인다. 
그렇다고 건너뛸 수도 없고.. 세상사 그런 거지. 쩌 산은 다음에..

 

 

맞은편에 솟은 병풍산 능선을 본다. 아무래도 산을 새로 오르는 기분이겠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외약짝에 병장산이 살짝 보이고 오른짝 천자봉 너머로 보이는 산은 용구산이 되겠다.  

 

 

삼인산 정상에 앉았는데 간간이 이슬비가 나린다. 슬슬 길을 나서보는디.. 정상을 벗어난 산길이 하염없이 고도를 낮춘다. 
어느 지점에서인가 가야 할 산길이 또렷이 조망된다. 
왼쪽의 불태산, 오른쪽의 병풍산 그리고 내가 갈 능선길이 만나는 곳에 만남재가 있다. 그 뒤로 살짝 보이는 봉우리가 병장산. 
내가 가야 할 능선의 중간지점에 대전면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있고 그 임도가 만남재까지 이어진다. 
나는 그곳에서 임도로 갈 것인가, 산줄기를 타고 갈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였다. 
결국 산줄기를 타고 가는 것으로 하였으나 조망이 시원치 않은 특색 없는 능선길이어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임도 따라 할랑할랑 걷는 것도 좋았겠다 싶다. 

만남재는 여러 갈래 길이 만나고 갈라지는 곳으로 차가 오를 수 있다. 
라면, 막걸리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다. 

 

 

만남재에서 투구봉(신선대)으로 오르는 길은 대략 30분 정도 소요되는 순도 100%의 꽤나 가파른 오름길이다. 
투구봉을 경유하지 않고 병풍산 정상으로 곧장 향하는 길이 있고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에서 다시 되짚어 투구봉을 오를 수도 있다. 
투구봉은 병풍산이 시작되는 봉우리이자 삼인산과 병풍산을 오르내리는 산길 가운데 가장 시원스런 조망을 허락하는 곳이니 반드시 경유하는 것이 좋겠다.  
날이 좋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오늘 같은 날씨가 주는 쓸쓸한 늦가을의 정취도 과히 나쁘지 않다. 
불태산에서 병장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볼만하다. 

 

 

걸어온 길, 삼인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를 본다. 그 너머로는 듬직한 무등산이 보여야 할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허리를 도는 임도가 보인다. 여기에서 보니 임도가 아닌 능선을 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야 할 길, 병풍산 정상이 보인다. 투구봉에서부터 정상을 지나 천자봉(옥녀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암봉으로 이어져 있어 지루하지 않고 조망이 시원하다. 

 

▲ 정상 부근에서 갈라져나간 산줄기 하나 장성 방향으로 흐른다.
▲ 병장산 그리고 그 너머 희미하게 흐르는 산줄기는 내장산에서 갈라져나온 영산지맥, 그 중에서도 방장산 능선으로 보인다.
▲ 투구봉 너머 불태산과 병장산
▲ 병풍산 정상
▲ 장성 방향으로 갈라져 나가는 산줄기, 송대봉, 홍길동 우드랜드로 간다 되어 있다.
▲ 병풍산 정상을 돌아본다.
▲ 아직 갈 길이 멀다. 능선 끝 천자봉(옥녀봉), 그 너머 용구산.
▲ 천자봉에 서서 달려온 길을 돌아본다.

 

투구봉에서 천자봉까지의 구간은 지루함이 없는 시원한 능선길이다. 이번 산행의 백미가 되는 구간이라 할만하다.  
호남정맥 추월산 부근 밀재에서 갈라져 나온 병풍지맥이라 이름 붙인 산줄기를 거꾸로 답파하는 길이기도 하다. 
병풍지맥은 밀재에서 분지 하여 용구산, 병풍산을 거쳐 불태산으로 이어지며 황룡강을 만나 맥이 다한다. 
천자봉은 옥녀봉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인데 '천자'와 '옥녀', 한 봉우리 두 이름으로 썩 잘 어울리는 듯도 하고 전혀 함께 부를 수 없는 모순된 이름으로 들리기도 한다. 
천자봉을 지나고 나면 산길은 숲 속으로 접어들게 되고 산이 끝날 때까지 줄곧 내리막길이다. 
산을 벗어나기까지 약 50분 소요되었다. 

 

▲ 대방 저수지에 오늘 밟은 산줄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해우소 주차장(10:30) - 삼인산 정산(11:30) - 만남재(13:07) - 투구봉(신선대 13:50)) - 병풍산 정상(14:50) - 천자봉(옥녀봉 15:40) - 대방 저수지(16:40)
대략 6시간 정도를 산에 머물렀다.